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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원 감독 단편선ㅣ송주원 감독ㆍ안무가 초청

CINE TALK 씨네 토크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3. 6. 1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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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 감독 단편선> 씨네토크

23.05.21

 

초청 : 송주원 감독ㆍ안무가

진행 : 정지혜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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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영화평론가 정지혜입니다. 송주원 감독님, 안녕하세요. 저는 사실 송주원 감독님과 영화를 통해서 맺게 된 친분이 있는데요. 신영 극장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게 돼서 반갑습니다. 인사 말씀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송주원 : 안녕하세요. 안무가이자 댄스 필름 감독 송주원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정지혜 : 제가 알기로는 신영 극장을 처음 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극장에서 같이 영화를 보셨는데 어떠세요? 오랜만에 보셨죠?

 

송주원 : 사실 이 영화가 2016년부터 2022년까지 제작된 영화들인데요. 해마다 어떤 일이 있었나 떠오르더라고요. 당연히 서툰 부분들이 많이 보여서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런 용감한 선택을 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수많은 생각들이 많이 들면서 영화 감상을 했습니다. 강릉역에 내리자마자 따뜻한 바람이 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정말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실 거라고 전혀 예상을 못 했는데 많이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정지혜 : 굉장히 궁금한 점들이 많으실 것 같아요. 제가 아까 감독님과 친분이 있다고 했는데 그 첫 번째 인연이 감독님의 영화를 관객의 입장에서 보고 너무 놀랍고 반해서 이 영화를 어떻게든 사랑하고 싶다는 욕심에 감독님께 청탁을 드려서 상영회를 계기로 처음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이후로 계속해서 더 많은 분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댄스 필름 연출가시잖아요. 굉장히 좀 궁금했어요. 안무를 하시다가 영화를 매체로 안무에 대한 작업을 이어가고 확장하게 된 계기가 있으실까? 영화 작업을 통해서 오히려 기존에 갖고 있던 안무에 대한 생각도 달라지거나 확장된 부분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먼저 부탁드리고 싶은데요.

 

송주원 : 저는 이제 춤을 만들고 전형적인 블랙박스 공연장에서 안무도 하고 연출도 하고 그런 작업들을 계속 해오다가 공연장을 벗어나서 도시의 장소에서 일어나는 춤들을 만드는 작업을 하게 됐어요. 근데 무대라는 곳은 무대와 객석이 굉장히 중요하고 공연을 잘 볼 수 있도록 객석의 시야 확보가 중요해요. 근데 제가 도시의 장소에서 공연을 하다 보면 관객분들이 이걸 볼 수 있는 시야 확보가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관객들이 현장에서 못 봤던 장면을 언제든지 볼 수 있게 하자라는 계획을 갖고 온라인상에 공연을 보여주고 기록하기 위한 목적으로 영상 작업을 시작하게 했고요. 그러다가 댄스 필름 워크숍을 수강하게 되면서 댄스 필름이란 걸 처음 경험을 하게 됐어요. 또 제가 그때 마침 창동레지던시에서 영상 작업을 하는 작가로 입주하게 됐는데 주변에 영화감독님들이 제 작업을 보시면서 영화제에 출품해 보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제 작업물로 영화관에 갈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어요. 마침 또 정지혜 평론가님께서 연락이 오셔서 인디 포럼 월례비행 상영작으로 제안을 주셨어요. 처음에 작업물 만들 때는 이건 댄스 필름이라는 장르 카테고리 안에서 생각하고 만든 것이 아니라 실제 공연을 기록하는 목적으로 시작을 했어요. 근데 단편영화제에 상영하게 되니까 여러 영화들 속에 제 영화가 있고 제가 갖고 있는 면면들을 보게 되더라고요. 작업물을 어떤 식으로 만들어야 되는지 고민하게 됐어요. 카메라로 바라본 신체의 움직임들을 어떻게 안무로 만들 것인가, 어떻게 동선을 짜고 어떻게 프레임 안에서 움직임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을 하게 됐어요. 대부분의 영화들은 대사나 내레이션처럼 언어적인 것으로 전달하고 중요한 역할을 하잖아요. 무용이라는 매체는 비언어가 갖고 있는 수많은 상징들, 수많은 표현들이 신체어로 전달되는 것들이기 때문에 무용 영화를 한 시간씩 보는 것은 굉장히 힘들겠다고 생각했어요. 제 단편을 묶은 상영회가 오늘로 네 번째인데요. 한 시간 정도 영화관에 다 같이 모여서 춤을 보는 경험을 하게 됐는데 저한테는 특별한 또 다른 종류의 공연을 보여드린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정지혜 : 관객분들이 어떻게 보셨을지는 조금 이따가 여쭤보도록 하고요. 하나만 더 제가 질문드리고 객석으로 마이크를 넘기겠습니다. 감독님께서 공간이라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오늘 보신 작품들도 보시면 공간이 굉장히 특이하기도 하고 낯이 익은 공간이지만 영화를 통해서 공간이 낯설게 보이기도 하는 그런 경험을 하셨을 것 같은데요. 특히 공간에 대한 관심이 크신 것 같아요. 작업을 하시는 안무에 있어서 공간과 안무가 관계를 맺는 방식에 대해 고민이 많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주시면 어떨까요?

 

송주원 : 실제적으로 처음에 이 작업을 시작할 때 제 몸이 갖고 있는 언어가 있고, 내 몸을 담는 그릇이 장소가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집이나 도시의 장소들을 기반으로 한 작업을 했어요. 장소에는 이야기가 있어요. 장소가 이미 가지고 있는 층층이 쌓여 있는 역사가 있잖아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통해 발견한 것도 있고 또 실제로 장소에 가보면 새롭게 발견한 것들도 있어요. 장소가 품은 이야기들을 추적해 보면서 제가 발견한 질문을 가지고 무용수들과 만나서 춤을 만들어요. 그것이 하나의 카메라라는 공간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 공간이 스크린이라는 또 다른 공간 안에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장소적인 이야기는 영상 안의 시나리오나 내러티브의 역할을 하고 공간의 개념은 안무로 구성하는 구조 안에서의 어떤 위치 또는 이 영상 안에서의 리듬과 같은 것으로 공간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정지혜 : 조금 더 공감각적이고 신체 역시도 하나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 보면 되겠죠. 감독님은 영화를 정말 잘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계속하셨고 정말 엄청난 열정을 갖고 계신 걸로 알고 있어요. <반성이 반성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2017년도 작품이고 마지막에 본 작품 <1270>2022년에 만들어진 최근 작품인데 감독님께서 작업을 거듭해 오면서 작업자로서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거나 몰두해 나가고 있는 지점들이 조금씩 조금씩 달라지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혹시 그것에 대해서 조금 들어볼 수 있을까요?

 

송주원 : 영화를 잘 만들고 싶고 당연히 영화를 항상 잘 만들고 싶습니다. 동시에 안무를 잘하고 싶습니다. 이게 저는 같이 붙어 있어요. 영화를 만들기 위한 재료가 되는 언어가 저한테는 제일 중요한데 춤이라는 매체는 기본적으로 이념과 힘을 가지고 있어요. 그것들을 카메라 안에서 드러내거나 흘러나오게 하거나 이어지게 하거나 또는 어딘가로 이동하게 할 것인가가 되게 중요해요. 그래서 신체가 갖고 있는 언어를 어떻게 카메라에 담을 것인가가 저한테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고요. 실제적으로 그런 실험들이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무용수가 움직이고 동시에 공간도 움직이잖아요. 공간의 어떤 것들을 다시 환기하고, 공간 속으로 관객들이 들어가기도 하고, 공간 밖으로 나와서 관찰자가 되기도 하고 그러면서 그 안에 행위자가 되기도 하지 않을까라는 상상들을 해요. 제가 하고자 하는 그 장소의 이야기, 작품마다의 이야기 안으로 관객들을 어떻게 초대할 것인가? 이 안에서 움직임을 통해 몸으로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 어떻게 이들을 상상하고 이 안으로 같이 초대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제일 많이 해요. 그래서 영상의 리듬감이라든지, 화면 이동이나 호흡을 기다리거나 멈추는 것들을 좀 더 시도하고 있고요. 아까도 보면서 이때는 호흡이 좀 더 길었어야 됐는데, 이때는 호흡을 끊고 다음 공간으로 이동했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들이 좀 들더라고요. 계속 몸을 움직인다는 것은 숨과 함께 움직여지는 것인데요. , 호흡, 리듬 같은 몸의 시간들을 이 공간 안에서 어떻게 이야기로 이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생각들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정지혜 : 시나리오가 기존의 내러티브 중심의 시나리오와는 다를 것 같아요. 어떻게 쓰여 있을지도 궁금한데요. 작업을 같이 하는 무용수분들과는 어떤 방식으로 소통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송주원 : 이제 작품이 여러 개가 만들어졌고, 여러 편의 제작 과정이 다 다르기도 하고, 그리고 저도 되게 많은 변화들을 겪었기 때문에 일단 보편적으로 제가 작업하는 방식을 말씀드릴게요. 우선 제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장소에서 찾아낸 질문들과 이야기를 가지고 저만의 시나리오를 우선 쓰고요. 그것을 무용수들에게 공유를 해요. 또 그 과정에서 찾아낸 레퍼런스나 리서치 자료들을 무용수들과 나누면서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프로세스 자체를 최대한 충분히 설명하려고 해요. 그런 과정이 중요해요. 이후에는 기초 단위의 움직임들을 찾아내요. 질문들을 통해서 키워드를 뽑아내고 그 키워드를 출발점으로 해서 움직임들을 5, 8, 10개를 만들어서 그걸 점점 변형하고 확장시켜 나가요. 무용수 개개인의 솔로가 있고요. 그러면서 듀엣으로 트리오로 또는 군무가 되는 거죠. 보시기에 이 행위들이 즉흥적이거나 장난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저희들은 행위에 대해 납득할 만한 합의를 하고 충분히 동의를 한 상태에서 전체적인 이야기들을 만들어나가요. 그다음에 우선 연습실에서 보통은 저희가 6주 정도는 리허설을 하고요. 그전에 제가 필드트립한 공간들은 무용수들이랑 같이 자주 가봐요. 연습실에서 만들어진 춤들은 다시 현장에 가서 리허설을 하고 본 촬영에 들어가죠. 생각해 보면 처음에는 제가 시나리오와 콘티와 스토리보드가 어떻게 다른지도 몰랐어요. 처음에는 공연을 만드는 것처럼 영화를 만들었어요. 공연의 테마나 공연을 만들 수 있는 구조와 내용들만 가지고 만들었던 거죠. 그렇게 하다가 카메라의 앵글이나 샷 사이즈에 대한 것들을 알게 되면서 촬영 감독님한테 요구하게 됐어요. 이때는 전체적인 것들을 다 담을 수 있게 와이드샷으로 촬영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때는 무빙이 들어가서 신체가 더 클로즈업 됐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사자다> 같은 경우는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미묘한 표정들이 굉장히 중요하니까 카메라가 더 들어갔으면 좋겠고, 바닥에 있는 주름들이나 깨지고 갈라진 흔적들이 잘 담겼으면 좋겠다고 조금씩 요구하기 시작했어요. 마지막에 보신 <1270> 같은 경우는 22년도 작품인데, 100년 전의 영화들이 궁금했어요. 현대 무용에서도 표현주의 시대가 현대무용에서 굉장히 중요했었는데 그 시대의 레퍼런스들을 보면서 빛과 그림자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예전에 댄스 필름을 만들 때는 안무가 어떤지만 바라봤었는데 지금은 빛이 어떻게 들어가서 인물의 감정선이나 이야기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현장에서 발생하는 감정들을 이어가는 멜로디가 어때야 되는지 이런 것들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랑 같이 작업하는 무용수들이 직업 안무가나 무용수이기도 하지만 무용 비전공자나 안무에 대해 전혀 경험이 없는 친구들도 많이 있거든요. 그런 친구들과 작업을 하다 보니 무용이 뭔지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을 해요. 인간의 생각과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는 게 무용이고, 그래서 춤으로 어떻게 표현해야 되는지에 대해서요.  그래서 감정이 어떻냐고 물어보고, 어떤 감정으로 이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고 싶은지 여기에 계속 머무르고 싶은지 아니면 숨고 싶은지 그런 표현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눠요. 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맺어가는 걸 되게 중요하게 생각해요. 어떤 면에서 뜨개질하는 기분으로 씨실과 날실을 계속 엮어나가는 기분으로 실제 그 장소의 이야기와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 그리고 무용수의 삶에서 전달되는 이야기 이것들을 계속 엮어나가면서 움직임으로 그 공간을 채워나가는 거죠. 그게 저한테는 안무고 그게 저한테 댄스 필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지혜 : 특히나 감독님 영화는 흑백도 있지만 컬러 영화들은 알록달록하면서도 눈길을 사로잡는 그런 요소들이 굉장히 많아요. 공간도 특이하기도 하지만 그 안에 색상을 배치하는 것이나 소품을 활용하는 것이 흔히 우리가 레트로라고 이야기하는 스타일이 굉장히 많은데 그게 무용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해주는 것일까? 감독님이 좀 더 표현하고 싶은 것과 어떻게 이어지는 것일까? 궁금해요. 단지 그냥 눈요기가 아니라 어떤 요소로서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데요. 그리고 감독님이 오래전부터 그런 것들을 좀 쭉 모아오셨고 또 워낙 좋아하고 관심이 많으시잖아요.

송주원 : 사실은 제작비 때문이죠. 빈티지 옷이 싸요. 고속터미널 지하상가나 동묘에 가면 싼 옷들이 많아요. 또 베를린이나 유럽에 가면 빈티지 숍에서 싼 옷들을 파니까 항상 트렁크를 준비해 가요. 그래서 빈티지 옷을 사서 가져오는 거죠. 언제 쓸지 모를 것들을 늘 준비하는 마음으로. 지금도 저희 집에는 빈티지 옷 박스가 몇 개가 있어요. 그래서 오늘 본 영화 안에 제 옷을 입은 무용수들이 굉장히 많이 출연하고 있어요. 저희가 되게 적은 예산으로 작업들을 진행하다 보니 그게 되게 중요했고요. 그리고 또 예산의 문제이긴 한데 저희는 야외 촬영에서 조명을 쓴 게 <1270> 말고는 없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눈에 띄는 색감의 옷을 입어야 카메라에서 무용수의 움직임이 그나마 보이는 거예요. 연습실에서는 손 하나 이렇게 딱 올렸다가 내리는 것도 굉장히 크게 마음을 울리는데 실제로 촬영할 도시의 장소에서는 더 엄청난 에너지들이 있기 때문에 무용수가 주먹을 꽉 쥐었다가 내리는 게 모니터에서 잘 보이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무용수들이 촬영하는 장소의 시멘트 위에서 잘 보이게 하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점점 컬러풀한 옷을 입게 됐어요. 하다 보니까 제가 컬러를 좋아하더라고요. 사실 제가 되게 모던한 여자인 줄 알았거든요. 옛날에는 20대 때는 블랙 앤 화이트를 좋아했어요. 30대를 지나 40대가 된 송주원은 컬러가 그냥 삶이라고 느껴지더라고요. 이 세상에 반짝이는 수많은 무지개 같은 유령들과 함께 어떻게 보면 되게 달콤하지만 또 엄청나게 쓰디쓴 눈물을 품고 있는 게 도시고, 그 도시의 이야기들을 담으면서 그렇게 생각되더라고요. 우리는 정말 블랙 앤 화이트의 삶을 사는 게 아니라 그렇게 파랗고 빨갛고 보라색으로 멍들고 파란색으로 흐르고 노랗게 반짝이고 핑크색으로 팡 터지고 그런 삶을 살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몸으로 마주하면 어떤 논리가 아니라 이런 게 삶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컬러풀한 의상들을 계속 선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지혜 : 질문이 있으신 분 계실까요? 감사합니다. 첫 번째 질문의 문을 열어주셨네요.

관객 1 : 저는 영화를 보면서 굉장히 뭐랄까 감독님이 시인의 눈을 가지신 것 같아요. 생각하시는 것들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과정이 너무 궁금합니다.

 

정지혜 : 혹시 오늘 보신 작품 중에서 특히나 조금 더 설명을 들어보고 싶은 작품이 있을까요?

 

관객 1 : 느낌이나 생각이 신체로 어떻게 표현되는 것인지 전반적으로 좀 궁금합니다.

정지혜 : 그렇죠. 대부분의 경우는 생각에서 그칠 텐데 감독님은 여기서 나아가 몸의 언어로 전환을 시켜서 표현해 내시는 거잖아요. 감정이 몸으로 가는 과정이나 경로라고 해야 할까요?

 

송주원 : 제가 시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여러 작품 안에 시들이 많이 들어가 있는데 <반성이 반성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은 김수영 시인의 절망이라는 시가 모티브가 됐어요. 그때가 2016년 겨울이었고 광화문에 매주 나가서 피켓을 들 때였거든요. 정말 평생 볼까 말까 한 온갖 풍경들을 보게 됐어요. 그 당시의 광화문 풍경들은 어마어마했어요. 어느 날 광화문을 지나가고 있는데 라디오에서 절망이 나왔어요.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라는 문구를 들었어요. 매주 광화문에 나가긴 했지만 그때 박근혜 정권이 절대 하야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 시를 모티브로 해서 반성이 없는 나라에 대해서 그리고 나를 보호해줄 나라가 없다는 것에 대해 얘기하려고 했어요. 삶은 계속되고 있었지만 그런 어려운 시기를 살아내고 있다는 얘기들을 해나가면서 세월호 참사의 이야기들도 담았어요.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이라는 문장 자체가 반성을 안 한다는 의미 같더라고요. 무용수들이랑 그런 얘기를 했어요.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반성이라는 걸 한 적이 있던가? 진짜 반성을 했다면 그게 달라지거나 나아졌을 텐데 계속 같은 모습을 우리는 반복하면서 살고 있지 않나? 저한테는 그 시가 몸으로 자연스럽게 품어지는 얘기였어요. 바람이 계속 불고 있었고 보이지 않는 구원을 기다리면서 삶을 이어나가던 시기에 그 시가 몸으로 들어온 거죠. 우리의 일상으로 그 시의 문장들이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를 무용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집어내고 포착했어요. 그리고 그것들을 퍼포먼스와 시나리오로 만들어낸 방식이 <반성이 반성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였죠. <나는 사자다> 같은 경우는 내레이션을 제가 썼는데요. 출연한 친구가 실제로 어릴 때 태평동이라는 마을에 살았던 거예요. 그 친구가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살았던 시간들의 이야기들을 텍스트로 정리하고 내레이션으로 사용했어요. 시간들의 이야기가 춤으로 남겨지게 된 거죠. 그녀와 저의 대화에서 만들어진 것들이 하나의 시이기도 하고 춤이기도 하고 또 그것이 말씀하신 구상화되는 과정이 아닌가라고 생각이 듭니다.

 

관객 2 : 요즘 감독님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송주원 : 제가 올해 딱 50살이 됐는데 100년의 시간을 생각해 보면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거기서 거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살고 어떻게 욕망하고 또 그 욕망과 싸우고 어떻게 그 안에서 잠시 숨을 쉬고 또 잠시 웃고 즐기고 살아가는가에 대한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있고요. 50년이나 살았다는 것이 참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고 그러면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저는 춤을 되게 좋아하는 사람이거든요. 50대로서 좋아하는 춤과 함께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가. 제가 삶에서 발견한 고민들과 질문들 그리고 제가 찾아낸 시선이 모두 들어가 있는 춤을 통해서 사람들과 어떻게 만나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을 하고 있습니다.

 

정지혜 : 감사합니다. 또 질문이 있으실까요?

 

관객 3 : 영화 잘 봤습니다. 특히 <풍정.(風精.) 푸른고개가 있는 동네> 작품이 인상 깊었습니다. 아까 말씀하실 때 장소에 가서 탐사를 하시면서 수집한 이야기, 그 이야기들을 통해 감독님께서 하고 싶으신 이야기, 그리고 안무가들과 공유하면서 생긴 이야기들 이렇게 세 개가 뜨개질하듯이 엮이면서 작품을 만드신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풍정.(風精.) 푸른고개가 있는 동네>에서는 표현하고 싶었던 생각이나 하고 싶으셨던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송주원 : 풍정.바람 풍자에 뜻 정자가 합쳐진 풍정과 점을 찍고 새길 각자를 쓰고 있어요. 저는 바람이라는 게 삶을 움직이게 한 좌표 같다고 생각해요. 제가 어떤 동네에 어떻게 태어나서 살기까지는 수많은 경로가 있거든요. 그래서 제 삶에 좌표 같은 시간들 때문에 무대 바깥의 도시의 어떤 장소에서 안무를 하게 되었고, 바람이 흐르듯 제가 움직여 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누구나의 삶 속에는 바람과 같은 시간이 있다고 생각해요. 역풍이 부는 시간도 있고 순풍이 부는 시간도 있어요. 바람이 어딘가에서 계속 불어오고 있고 그 흐름에 따라 삶의 좌표도 이어져 나간다고 생각하거든요. ‘뜻 정’자는 사람들의 감정이에요. 저는 인간의 감정 그리고 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언제부터인가 쿨한 남자와 쿨한 여자라고 해서 감정을 과잉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것 같아요. 저는 감정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 장소의 이야기들을 몸을 매개로 듣고 그 감정들을 표현하는 것, 그리고 감정들이 흐르는 것을 포착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새길 각자를 써요. 감정을 새기는 것. 풍정과 각 사이에 점을 찍은 것은 그 마을에 흘렀던 바람과 감정들을 무용수들을 통해 지금의 나로 해석하고 변역해 이야기를 담느냐가 중요했기 때문이에요. 그런 여정을 담아 풍정.이라는 제목을 지었고요. 15개의 장소를 찾아가 카메라로 춤을 기록했어요. 제가 장소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데 무대 밖 장소에서의 춤을 제안해 주신 분이 박지성 피디님이세요. 공연 예술계 피디님이신데 그때 서울로 7017 다리가 들어온다고 했어요. 그 다리에서 공연을 만들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주셔서 그 장소에 같이 갔어요. 국립극단 뒤에 피디님이 좋아하시는 길들을 보여주시면서 새로 아파트가 지어질 공간과 만리동 청파동 일대의 동네들을 보게 된 거죠. 청파 언덕에 올랐고, 순흥 슈퍼 앞에 딱 섰더니 슈퍼 앞 할아버지께서 마을의 변화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어요. 새로 생긴 빌딩이 세워지면서 남산이 보이지 않게 됐고 도시의 조명이 마을에 비치고 있고 아파트 불빛도 반짝이고 있더라고요. 마을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그런 변화의 시간 속에 계신 거죠. 재개발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요. 재개발이 필요하지만 어떤 방식이어야 하는지 자본의 논리로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라 삶을 나아지게 하는 방법이 없는지에 대해서요. 그렇게 청파동의 시간들을 따라가게 됐어요. 마을에 있는 마흔두 개의 계단에서 수많은 병사들이 죽었대요. 왜 죽어야 되는지도 모르고 죽임을 당한 병사들이 거기에 계속 누워있었던 거죠. 300년 된 은행나무에서도 어떤 흔적과 역사, 그리고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고 그것들을 추적하고 무용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오히려 저희가 그 마을의 시간이 되어가는 것 같다고 느껴요. 그렇게 마을에 새겨진 시간들을 따라가는 과정을 춤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관객 4 : 영화관에서 집중해서 감독님 작품을 연달아 볼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질문이 몇 가지가 있는데요. <1270>70일이라는 숫자의 의미가 궁금해지더라고요. 달력에 없는 숫자인데 혹시 노파가 계단을 올라가면서 회상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과 관련이 있는지 궁금했고요. 그리고 <반성이 반성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에서의 장소를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송주원 : 70일의 의미는 노파의 시간이에요. 노파로 나오신 분이 안무가이신데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라는 작품을 만드셨어요. 경쟁 사회의 생존과 투쟁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셨는데 그걸 되게 유희적으로 풀어내셨어요. 12월은 31일로 끝이잖아요. 근데 그들의 생존과 투쟁은 32, 32, 33일에도 계속되고 70일이 돼도 끝나지 않는 거죠. 그리고 노파분의 나이가 70세셨어요. 근데도 그분은 여전히 투쟁하고, 여전히 다음 계단을 올라 벤치를 향해 가고 계신거죠. 실제로 그 집에 있는 계단이 70개였어요. 삶이라는 것이 끝나지 않는 한 항해는 끝난 게 아니고 생존을 위한 시간은 끝나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1270>이라는 제목을 달았고요.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의 남정호 안무가에게 동의를 얻고 저만의 해석으로 시나리오를 만들어서 <1270>이라는 작품이 나오게 됐어요. 두 번째 말씀하신 <반성이 반성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에 등장하는 한옥의 지붕이 저는 척추라고 생각했어요. 지붕 가운데 서까래가 척추고 그 집이 마치 몸통 같았어요. 무용에서 호흡을 하기 위해서는 몸통이 되게 중요하거든요. 몸통이 어떻게 숨을 쉬느냐에 따라서 호흡을 멈추거나 호흡이 이어질 수 있어요. 집은 그녀의 몸통이기도 하고, 과거에 있었던 시간들과 그녀를 지켜줬던 시간들인 거죠. 세 번째 장소는 언젠가는 정말 엄청나게 큰 집에서 엄청나게 잘 살거야라고 상상하는 집을 상징해요. 그렇게 세 개의 집이 배치되어 있고 촬영 하는 게 쉽지가 않았는데 퍼포머 분께서 다행히 허락을 해주셔서 작업을 할 수 있었어요.

 

정지혜 : 저는 감독님이 작품에서 퍼포머로 출연해서 춤을 추는 영화를 아직 못 본 것 같아요. 앞으로 춤을 어떻게 더 춰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다고 하셨는데 혹시 감독님의 춤을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요?

 

송주원 : <풍정.> 시리즈에서 출연하기로 한 무용수가 갑자기 부상을 당해서 제가 대신 출연한 적이 있고, 베를린에서 작업할 때는 무용수를 구할 수 있는 예산이 안 돼서 제가 출연을 하긴 했어요. 제가 연출 겸 어시스트 겸 모든 일을 도맡아 해야 되기 때문에 영상에 제가 퍼포머로까지 출연하는 게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스텝 구성이 된다면 해볼 수 있을 것 같고요. 제가 몸을 사용하는 퍼포머로서의 가능성은 계속 가져갈 거고, 언제든 기회가 되고 제가 꼭 해야 되는 상황이라면 춤을 춰야죠. 그리고 제가 직접 춤을 추는 것보다 사람들을 춤추게 하고, 장소가 춤을 추게 하고, 실제 스크린이 춤을 추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어요. 춤이라는 것 자체가 그냥 단순히 신체의 운동성이고 어떤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되고 변형될 수 있기 때문에 춤이라는 매체에 대한 실험과 고민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보고 싶습니다.

 

정지혜 : 사실 춤이라고 하면 우리가 좀 낯설기도 하고 제 경험에서는 일상에서 춤출 일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근데 감독님 작업들을 보면서 몸이 움직인다는 것이 그냥 낯설고 나에게 아주 먼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 같은데요. 몸의 움직임을 영상으로 작업하고 계시지만 몸을 움직이는 워크숍 계획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송주원 : 제가 일일댄스 프로젝트를 7년 동안 운영하면서 무용 워크숍을 계속했었어요. 제 작업에 출연했던 무용을 전공하지 않은 친구들도 워크숍을 들었어요. 코로나가 시작하면서 워크숍을 멈췄거든요. 그리고 중간중간에 이제 팝업처럼 워크숍을 만들기도 하고 <일일댄스 일**일상> 이라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워크숍을 운영하고 있고요. 비전공자도 참여할 수 있는 워크숍은 앞으로도 계속 열어볼 생각이에요. 그냥 막연한 상상이긴 한데 영화 보다가 다 같이 스트레칭도 하는 영화를 한번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방금 막 들었어요. 얘기 듣느라고 지금 다들 힘드실 것 같은데 저의 이야기가 끝나면 팔도 쭉 뻗으시고 다리도 뻗으시고 집에 돌아가셔서 오늘 보셨던 장면들이 혹시 생각나신다면 막춤도 추시고 춤의 장르들이 생각나신다면 영감을 받으셔서 움직임으로 확장되면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정지혜 :인사를 거의 해주신 것 같은데요. (웃음) 신영에서 관객분들 만난 소감 듣고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송주원 : 개관 11주년이라는 뜻깊은 자리로 신영 극장에 실제로 처음 와보게 됐는데 너무 아름답네요. 너무 아름다운 자리에 제가 초대돼서 너무 영광이고요. 너무 감사하고 저도 여기에 그냥 영화 보러 한번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청량리역에서 기차 타고 왔는데 생각보다 되게 가깝더라고요. 사실 댄스 필름이라는 것이 아직 명명되지 않은 장르이기도 하고 댄스 필름이라는 용어가 낯설기도 한 것 같아요. 아직 댄스 필름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지만, 조금씩 계속해서 만들어가고 있는 안무가들과 감독님이 계시니까 몸의 이야기들과 몸이 카메라 담기면서 만들어지는 삶의 풍경들에 관심 기울여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유튜브에서 소비되는 신체나 춤 영상도 굉장히 중요하고, 유튜브라는 매체가 갖고 있는 맥락도 되게 중요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마주하는 춤과 이것이 어떻게 카메라로 기억되고 있는지 찾아주시면 너무 기쁠 것 같습니다. 오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지혜 : 함께해 주신 관객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 역시도 굉장히 좋아하는 공간에서 관객분들과 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서 기쁜 마음입니다. 조심히 돌아가시고요. 또 신영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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