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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야 바른 말이지> 리뷰 : 바른 말, 그 씁쓸함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3. 6. 6.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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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야 바른 말이지>

바른 말, 그 씁쓸함

 

 한 신, 한 장소,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하되 두 명만 대화에 참여할 수 있는 점, 6시간의 촬영 시간, 제한된 스태프 등의 제한 조건 아래에서 6편의 단편 영화가 옴니버스로 제작되었다. 그런데 6명의 감독들은 이 제한을 걸림돌이 아닌, 오히려 대놓고 말들의 잔치를 만들어낼 좋은 기회로 활용했다. 각 영화에서 두 인물 간에 주고받는 대사들은 경쾌하고 재미있지만 결코 우습게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의 무게를 만들어낸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부조리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잡아채어 재치 있게 풀어나가는 이야기의 힘이 단편영화의 매력을 뿜어낸다.

 

 <프롤로그>에서는 갑과 을의 관계에서 흔히 벌어지는 부조리한 일들, 다시 그 을이 병을 향해 품고 있는 비인간적인 사고가 두 사람의 대화와 독백 속에 고스란히 담긴다. 마치 시트콤처럼 웃음소리가 곳곳에 배경처럼 깔리지만 음악은 긴장감 넘친다. 가볍게 내뱉는 말들 속에 풍기는 그들의 근본 없는 우월감과 그것에서 기인하는 타인을 도구화하고 혐오하며, 자신의 이익에 소모하는 몰염치한 사고는 바라보는 관객들에게 씁쓸한 웃음과 함께 서늘한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그야말로 이 영화의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잘 보여주는 오프닝이라 할 만하다.

 

 <하리보>에서는 헤어지는 동거 커플이 고양이 양육권을 놓고 다툰다. 처음엔 양육을 떠넘기기 위해, 그다음엔 다시 양육권을 차지하기 위해 다툰다. 한때는 서로 사랑했을 두 사람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자신이 손해 보고 싶지 않은 마음뿐, 두 사람의 이름을 모아 하리보라 불러왔던 고양이에 대한 걱정은 읽히지 않는다. 또 하나의 커플이 만들어내는 <손에 손잡고>에는 각자 연인을 위한 프러포즈를 준비했지만 진심은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고 끊임없이 쓰레기만 만들어내는 모습이 등장한다. 두 영화 속 커플들의 대화를 들으며 사람 간의 사랑은 물론이고, 반려동물과의 사랑그리고 사랑 그 이후에 대해 곱씹게 된다.

 

 <당신이 사는 곳은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에서는 지역주의와 편견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날아든다. 태어날 아이에게도 지역주의를 물려줄 것인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부녀의 대화는 짐짓 심각하다. 아버지가 숱하게 겪어왔던 지역주의와 차별에 대한 우려에 대해 단호한 결별을 주장하던 딸이 임대 아파트 거주자와 섞일 수 없다는 태도를 드러내는 이중성은 허탈함을 넘어 배신감을 안겨준다. 지역주의의 폐해가 채 끝나기도 전에 경제적 수준으로 사람들을 나누는 새로운 계급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슬픈 현실을 실감하게 되는 장면이다.

 

 <진정성 실전편>은 남성혐오 표현에 대한 고객들의 항의로 이에 대한 회사 SNS 사과문을 작성하며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소재로 한다. 팀장과 팀원은 진정성 있는 사과문을 만들려고 단어 선택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하지만 그럴수록 모든 어휘가 마음에 걸린다. 말의 수렁에 빠진 두 사람의 마음은 점점 흩어져 가고 결국 사건의 본질은 사라지고 만다. 사소한 내용 하나에도 히스테릭한 반응을 쏟아내는 현 사회의 삭막함 속에 갈 길을 잃어버린 소통은 이미 우리 사회의 주된 소통 수단이 되어 있는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문자들의 대화가 가야 할 길을 묻는 듯하다.

 

 <새로운 마음>은 휴직 권고를 두고 벌어지는 남성 팀장과 여성 팀원의 대화를 지켜본다. 휴직 대상자 선정과 관련해 벌어진 두 사람의 마찰은 과거의 성폭력 사건을 소환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고, 죄짓기 전으로 되돌리고 싶다고 독백하는 팀장은 통렬한 자기반성과 진정성 있는 사과부터 해야 할 듯하다. 팀원의 입장에서는 부당함을 참고 지내는 것이 결국은 또 다른 부당함을 부르고 자신은 영원한 피해자로 머물게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전해준다. 때론 팀장의 머리를 물리적으로 가격할 수 있을 정도의 단호함이 필요해 보인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모순적인 행태, 가까이 있지만 서로 대립하는 대화 속에서 본질은 사라지고 공허만 말들 만이 이리저리 흩어지는 이야기는 오늘도 우리 곁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들이라 현실감 넘친다. 인물들은 때로는 논리적으로, 때로는 합리적이고 그럴싸한그리고 인간적인 척하는 말들을 쏟아낸다.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은 쉴 틈 없이 주고받는 배우들의 입담에 연신 웃음을 머금게 되는데, 그 말들 속에 모래라도 흩뿌린 듯 입안은 영 꺼끌꺼끌한 게 도무지 그냥 삼킬 수가 없다.

 

- 관객리뷰단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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