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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 리뷰 : 선명한 통증의 공포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3. 5. 26.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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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

선명한 통증의 공포

 

 생각해 보면 공포영화를 즐기는 사람들의 심리는 참으로 묘한 구석이 있다. 설마 무섭거나 충격적인 장면을 보며 유쾌한 기분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심장이 쫀득해지는’ 그런 긴장감과 압박감의 폭풍이 한바탕 휘몰아치고 난 후, 감정적 갈등이 일거에 해소되는 것에서 일종의 쾌감을 느끼는 것 같다. 특히, 우리의 영원한 고전 <전설의 고향>이나 리우드식 공포영화의 미덕에는 일종의 공식 같은 것이 거론될 정도로 보는 이의 심리가 허용하는 적당한 범위 내에서의 타협이 있었다. 마음을 옥죄다가도 어쨌든 결말은 대개가 권선징악으로, 악은 결국 소멸하고 선이 살아남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보편적이었기에 뒷맛까지 씁쓸하지는 않았다. 오래전 뒷간으로 불리던 호젓한 화장실이 없는 지금으로서는 홀로 밤거리를 걷는데 뒤통수가 서늘한 느낌 정도만 감수하면 될 정도였던 것이다. 그만큼 단순한 무서움은 영화의 기억이 흐릿해짐에 따라 금방 잊게 마련이니까.

 

 영화 <오디션>이 주는 공포가 충격적이고 고통스럽게 다가오는 것은, 위에 언급한 기존의 공포영화들이 지녀왔던 문법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때문이다. 시작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을 딛고 일어서는 가족영화 같고 중반의 아오야마(이시바시 료)와 아사미(시이나 에이히)의 데이트는 마치 로맨스물로 넘어가는 듯하다. 그런데 공포는 도대체 어디에 존재하는가 슬슬 지루해지려던 영화가 일순간에 폭력과 잔혹함으로 물드는 급작스러운 전환을 맞게 된다. 이는 무방비 상태이던 관객에게 일격을 가하며 극심한 고통 속으로 지독하게 몰아붙인다. 매우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가학과 신체 절단의 표현에서 기인하는 통증의 선명함, 그리고 절대로 치유되거나 회복될 수 없을 듯한 불가역적인 상흔은 그냥 가공의 이야기로 보아 넘기기엔 너무도 끔찍하다. 심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폭력의 선을 훌쩍 넘어선 장면들은 공포의 상황이 종료되어도 오래도록 잔상을 남긴다.

 

 영화의 내용 또한 선악의 선명한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도 관객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아사미가 어릴 때부터 여러 어른들로부터 끊임없이 겪어야 했던 잔인한 괴롭힘이 결과적으로 그녀를 폭력의 그늘에 가둬버렸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면, 그녀가 과연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불분명해진다. 아오야마 또한 마찬가지다. 아내를 잃고 홀로 아들을 키우며 단란한 가정을 지키고 자신의 일도 성실히 해왔으니 얼핏 아사미의 폭력에 쓰러지는 피해자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연기자의 꿈을 가지고 오디션에 찾아온 여자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이상형을 고르려는 발상 자체부터 기만적이다 보니 그에 대해 무조건적인 온정을 가질 수도 없다. 아오야마의 잘못에 대해 너무 과하고 잔인하게 되갚는 아사미의 모습에 경악을 할 수밖에 없지만, 자신을 온전하게 사랑해 주길 바던 아사미에게 배신감을 안겼던 아오야마의 거짓된 행위 역시 그녀의 마음에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가하는 잔인한 행위였는지 모른다.

 

 23년 전 처음 이 영화를 접한 관객들이 열광했던 이유는 아마도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공포영화를 만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적당히 괴롭히다 적당히 수습하는 영화가 아닌,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식의 반전, 가학과 고통의 끝을 보여주기라도 할 듯 지독하게 몰아가는 장면들은 지금 보아도 가히 충격적이다. 게다가 그 가학의 주체가 나약하고 순종적으로 보이는 여성이고 가학의 대상이 건장한 남성이라는 점, 그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그 고통받는 모습을 진정으로 즐기는 듯한 표정의 섬뜩함은 꽤나 낯설다. 특히 한 사람을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빈틈 없이 괴롭히는 장면은 너무나 집요하고 생생해서 쉽게 잊지 않을 긴 여운을 남긴다. 원작 자체도 충격적이고 독특하다지만 감독 미이케 다카시가 치열하고 지독한 모습으로 만들어낸 모험적인 공포영화는 세월이 흘러도 늘 거론될 만한, 뒷맛까지 개운치 않은 공포를 만들어냈다.

 

- 관객리뷰단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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