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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 리뷰 : 네가 없는 세상에서 난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3. 5. 16.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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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

네가 없는 세상에서 난 

 

<클로즈>는 함께 있는 것이 당연했던 두 소년 사이의 육체적, 정서적 유대(紐帶)가 세상의 눈초리로 인해 점차 끊어져가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눈에 보이지 않은 적군들을 피해 무너진 건물 안으로 숨어든 레오(에덴 담브린)와 레미(구스타브 드 와엘). 두 소년의 전쟁놀이는 긴박감은커녕 싱그러움으로 가득하다. 만개한 꽃밭 사이를 질주하는 레오와 레미는 서로를 보며 웃음 짓고 있다. 레오는 꽃잎을 따는 작업에 열중인 가족들을 뒤로하고 레미의 집으로 향한다. 이어진 장면에서 레오는 레미의 엄마 소피(에밀리 드켄)와 함께 레미의 집 앞마당에서 레미의 배에 머리를 베고 누워 담소를 나눈다. 너무도 익숙하게 같은 식탁에 앉아 저녁 식사를 나누고 한 침대에 누운 레오와 레미. 생각이 멈추지 않아 잠들기 힘들다는 레미의 등 뒤로 레오가 바짝 다가와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느 상상 속의 세계에서 레미는 새끼 오리로 태어난다. 그 세계에서 레오는 레미와 함께 모험을 떠나는 도마뱀이다. 새끼 오리와 도마뱀이 함께 여행을 떠난다니, 세상의 눈에는 너무도 이상한 존재들이다. 하지만 레오는 세상이 무어라 말하더라도 새끼 오리와 도마뱀은 특별하기에 아름답다고 말한다. 레오의 확신에 불안이 사그라들었는지, 아니며 레오가 흉내 내는 도마뱀의 호흡에 마음이 편안해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윽고 레미는 편안한 표정으로 잠에 빠져든다.

 

즐거운 여름방학을 마친 레오와 레미는 중학교에 입학한다. 새로운 학교, 새로운 교실, 새로운 동급생들 사이에서 레오와 레미는 언제나 그랬듯이 함께 있다. 두 소년의 친밀함은 추궁과 공격의 씨앗이 되어 주변으로 퍼져간다. 시시덕거리는 여학생들 무리가 레오와 레미에게 너희 두 사람 사귀는 사이니?”라는 질문을 던진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레미와 달리 레오는 발끈하며 우리는 어릴 적부터 함께 지낸 형제와 같은 사이라고 항변한다. 하나의 질문에 서로 다른 반응. 이 순간을 기점으로 레오와 레미의 관계에 이전에 없던 틈이 벌어진다. 틈 사이로 삐져나오는 세간의 힐난(계집애 같은, 호모, 게이 등), 의심으로 가득한 시선, 남자 청소년 무리의 다소 거친 우정 표현들에 휩싸인 레오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활하기 시작한다. 이제 레오는 레미와 함께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상상하며 남들이 모르는 세계를 공유하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레오는 레미와 같은 책상에 앉지 않고, 레미가 아닌 다른 남자 동급생들과 어울린다. 레오는 레미와 기대고 맞대며 서로의 존재를 부드럽게 인식하던 접촉에서 벗어나 헬멧과 보호대를 착용하고 거칠게 충돌하는 아이스하키의 세계로 스스로를 밀어 넣는다. 레오는 그렇게 악착같이 레미를 외면한 채 또래 남자아이들과 비슷하게 보이려고 부단히도 애를 쓰고 있다.

 

너무도 갑작스레 레오에게 밀려나고 있는 레미는 그럼에도 레오와의 관계를 이어가려 한다. 이전처럼 함께 침대에 누워 잠이 들려 하고, 레오가 시작한 아이스하키부도 함께 해보면 어떨까 고민을 한다. 하지만 레오는 레미가 건네는 손길에 응답하지 않는다. 레오는 같은 침대에 누워 있는 것으로 레미와 아침부터 몸싸움을 벌이고, 레미에게 함께 아이스하키를 해보자고 화답하지 않는다. 두 사람 사이의 간극은 시간이 지날수록 넓어져 메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야 만다. 더 이상 레오는 레미와 함께 등교하기 위해 기다리지 않는다. 먼저 학교에 와서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레오에게 분노와 설움으로 가득 찬 레미가 달려든다. 레미의 울분은 레오와 함께 쌓아 올린 자신들의 세계가 부정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느껴진다. 레오와 레미, 두 사람이 구축한 세계는 두 사람이 함께 존재해야 본래의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서로가 공유하는 시간과 규칙과 비밀들로 섬세하고 조밀하게 축조한 자신들의 세상이 레오의 이탈로 무너지고 있음에 레미는 슬픔과 절망으로 고통받았으리라. 그날 이후, 레오와 레미는 함께하지 않는다. 레오의 시선이 이따금 레미를 찾지만 그렇다고 하여 레오가 지금의 무리에서 벗어나 레미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서로로부터 벗어나 있는 상태에 익숙해졌다고 느껴질 무렵, 레오의 세상에서 레미가 사라진다. 학교에서 야외학습을 떠나는 날, 레미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야 만 것이다.

 

남들처럼 보이기 위해 했던 온갖 노력들이 레오에게 거대한 상실이 되어 돌아왔다. 남들과는 다른 특별함이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학습한 소년이 선택한 생존 전략이 아이러니하게도 소년의 세계에 커다란 상처를 입힌 것이다. 레미가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다. 레미의 죽음을 부정하고 싶지만, 이미 벌어진 그의 죽음을 되돌릴 수 없다. 레미의 죽음을 앞에 두고 그를 추억하는 동급생들의 말 한마디, 한 마디가 레오에게 고깝게 들린다. 레오의 눈빛은 마치 너희들이 레미에 대해 뭘 안다고 함부로 떠들어대느냐고 분개하는 듯 느껴진다. 그렇다고 하여 레오가 레미에 대해 무어라 말하는 것도 아니다. 레오는 그저 괜찮다는 말로 레미의 부재를 버텨내고 있다. 레오에게 있어 레미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던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였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런데 영화는 처음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레오와 레미의 관계가 지닌 특별함에 관해 해석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세간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려는 한 소년의 고군분투와 그로 인해 상처받은 다른 소년의 안타까운 선택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있다. 다만, 영화의 담백한 화법으로부터 보통평범으로 무장한 대다수라 불리는 사람들이 포용인정의 가치를 새겨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스며 나오는 듯 느껴진다.

 

 

- 관객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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