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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스보이 슬립스> 리뷰 : 내가 존재하는 곳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3. 5. 16.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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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스보이 슬립스> 

내가 존재하는 곳

 

 사람은 모두 고향이 있다. 좋든 싫든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추억을 쌓고, 가치관을 만든다. 그렇다면 그 고향이 정말로 끔찍한 사람은?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은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할까.

 

 아들 동현은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 학교에는 자신의 이름이 동훈인지, 동현인지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선생님과 엄마가 싸준 김밥 도시락이 냄새난다며 괴롭히는 아이들이 있다. 엄마 소영은 동현에게 떳떳한 엄마가 되고 싶다. 남편이 없어도 동현이 외로움을 느끼지 못하게, 여느 아이와 다를 바 없이 자라길 바란다.

 

 그러나 이들의 바람과 달리 낯선 이국 사람들은 그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동현은 학교에서 라이스보이로 불리며 집단 따돌림을 당했고, 소영은 공장에서 성추행당하는 등 두 사람은 각기 다른 곳에서 이민자의 설움을 견뎌야 했다. 그럴 때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의지했고, 오히려 당당하게 그들과 맞서며 제 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9년이 지난 후 두 사람의 모습은 많이 변했다. 동현은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컬러 렌즈를 끼며 그들의 모습에 녹아들어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소영 역시 공장 근로자들 사이에 껴서 함께 도시락을 먹으며 하하 호호 즐겁게 떠드는 모습을 보인다. 시간이 흘러 각자의 주변 관계가 변화한 만큼 두 사람의 관계 또한 균열이 생겼다. 동현은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물을 때마다 입을 다무는 소영이 답답했고, 엄마의 남자친구 사이먼을 불편해했다. 소영 역시 사이먼과 동현이 사이가 좋아지길 바라지만 그렇지 못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그러던 중 사이먼에게 프러포즈와 같은 제안을 받게 되고, 그의 마음은 더욱 심란해진다.

 

 <라이스 보이 슬립스>1990년대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16mm 필름을 촬영하여 옛날 영화처럼 화면 비율을 1.33:1로 맞추어 더욱 그때의 향수를 풍긴다. 하지만 동현과 소영의 이야기는 예전에 있었던 이야기로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받았던 차별의 시선은 아직도 국제 사회 곳곳에 만연하게 보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영화를 관람하며 아슬아슬한 두 모자 관계에 불안해하고, 그들을 둘러싼 환경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술과 마약에 손을 대며 위태로운 일상을 보내던 동현은 소영이 췌장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불안정한 상태에서 학교에 간 그는 평소에는 듣고 넘기던 한국 학생을 괴롭히는 행동에 참지 못하고 가해자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소영 역시 자신이 암에 걸린 것을 안 후 사이먼에게 관리를 정리하기 위해 말을 꺼내지만, 곁에 남아있을 거라는 강력한 그의 의사에 결국 곁을 내어준다.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느끼는 동현의 장면과 달리 사랑하는 이와 왈츠를 추며 잠시나마 평화를 느끼는 소영의 장면은 동현과 소영의 관계가 너무나도 멀어진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대화가 단절된 둘 사이를 다시 이어주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대화였다. 괴롭히던 남학생과 싸우고 피투성이가 된 채 돌아온 동현을 소영은 달래주며 상처를 치료해 준다. 그러고는 동현이 그토록 궁금해하던 가족의 뿌리를 찾으러 한국으로 향한다.

 

 한국으로 배경이 넘어갈 땐 1.78:1의 비율로 화면이 커지며 시야가 탁 트인다. 덕분에 관객들은 한국의 산과 계곡, 자연환경을 소영과 동현의 시선으로 함께 느낄 수 있다. 소영과 동현은 죽은 남편의 가족, 즉 동현의 친가를 찾아가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비록 시어머니는 아들을 잊지 못해 소영과 동현을 적대시했지만, 남편의 동생과 아버지는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준다. 동현은 상영 시간 내내 늦추지 않았던 경계를 풀고 그들에게 마음을 연다. 그리고 한국의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후 마지막에 죽은 남편의 묘를 찾아가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라이스 보이 슬립스'는 전체적으로 잔잔하게 시간이 흘러가는 모습을 묵묵히 담은 영화다. 다툼과 감정이 고조되는 장면도 분명 존재했지만 억지로 연출한 게 아닌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을 자연스럽게 연출하여 정말 실제 이들이 존재하는 것만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편안하게 영화를 감상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스며들어 간다. 어쩌면 아직도 어딘가에서 비슷하게 펼쳐질 이야기들을 말이다.

 

- 관객리뷰단 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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