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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자랑> 리뷰 : 다시 피어나는 엄마들의 봄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3. 4. 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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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자랑>

다시 피어나는 엄마들의 봄

 

 가눌 수 없는 슬픔에 세상을 피해 칩거하고 있는 엄마들을 집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시작한 바리스타 수업이 어쩌다 연극으로 이어졌다. 무어라도 하지 않으면 슬픔에 침몰해버릴 것 같았던 그들이 얼떨결에 발을 들인 무대에서 그들은 예상하지 못했던 자신의 놀라운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희생자 누구의 엄마라는 호칭 속에 오로지 피해자다움에 갇혀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의식조차 잊고 지냈을 그들에게 연기로 인해 처음으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강렬한 의욕이 샘솟는다. 심지어 더 좋은 연기를 위해 체중 감량을 하고, 주연을 차지하기 위한 욕망에 휩싸인 나머지 치열한 다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어두운 감정 속에 허우적거리다가 어쩌면 세상과 영영 이별했을 지 모를 세월호 유가족들의 연극에 얽힌 이 엉뚱한 이야기가 9번째를 맞는 기념일 즈음에 개봉하여 의외의 청량한 웃음을 만들어 우리에게 내민다. 물론, 그 웃음 끝에 눈물 몇 방울 맺히지 않을 수야 없겠지만 세월호 얘기를 보며 웃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일이다.

 

  9년이라는 시간 속에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수많은 영화가 만들어졌지만, 대부분은 유가족이 겪는 아픔이나 사건에 대한 사실 보도 성격의 다큐멘터리가 주를 이뤘다. 때문에 그 영화들은 슬픔과 분노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고, 여전히 명확한 진상 규명이나 책임자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다 보니 유가족과 관객이 위로를 받는 영화는 존재할 수가 없었다. 이렇듯 지난한 상황 속에서 세월호 이야기는 어느새 또 그 얘기, ‘이제 그만 좀 하라는 시선들 사이를 표류하는 난파선의 신세가 되어 버렸다. 지금은 도무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는 참사와 관련한 문제에 대해 느끼는 대중의 부채의식이 차라리 그것을 회피하고 망각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와중에 아이들을 앞세운 엄마들이 그 아이들 얘기로 연극을 한다더니 배역에 욕심을 부리며 서로 다투고 등을 돌리는 모습은 너무도 낯설어서 일견 어처구니없어 보이고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들의 다툼이 오히려 반가운 것은, 이제 그들이 슬픔과 비참한 감정만 지닌 채 어두운 심해에 침몰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 욕망과 시기를 느낄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의 성정을 되찾았다는 것이다. 뭔가 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비로소 앞을 향해  발을 내디딜 수 있는 힘을 얻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냥 나는 더 멋지게 살고 싶을 때도 있어요.”라고 말하는 이미경씨의 말 대로 참사는 기억하고 되새길지라도 유가족의 삶은 그것대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처음엔, 상처는 기억하되 치유하고 결국엔 슬픔을 딛고 일어서서 새로운 움직임을 만드는 일이 도무지 가능할 것 같지 않았지만, 그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해내는 길 중 하나를 바로 연극이 열어주게 되었다. 유쾌하지만 가볍지 않게 사실을 전달하고 대중의 공감을 얻어내면서도 당사자

들이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점에서 연극은 그 자체만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극단 해체까지 걱정해야 했던 숱한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다행이 연극은 막이 오르고 회를 거듭하면서 엄마 배우들은 다양한 무대에 서게 된다. 그 많은 무대 중에 아이들은 결국 살아서 도착할 수 없었던 제주도그리고 아이들이 생활했던 바로 그 단원고 체육관도 포함된다. 아이들이 설레며 준비했던 장기자랑을 연기하는 엄마들의 모습을 스크린으로 바라보는 관객들의 심정은 자연스레 9년 전 아이들의 얼굴을 마주보는 듯한 느낌에 빠져든다. “엄마, 아빠, 3일만 참아!”라고 말하며 수학여행 후의 당연한 재회를 약속했던 아이들, 그 아이들이 결국은 지키지 못한 잘 다녀오겠다던 약속의 말을 덤덤하고 밝게 연기하는 엄마들의 모습은 관객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그들이 아파하는 모습을 이젠 더 이상 보고 싶지 않고 잊고 싶었던, 이제는 내가 마음을 쓰지 않아도 될 일이라 애써 합리화했던 그 마음의 빈곤함이 부끄러워진다.

 

 벌써 9번째 봄을 맞았다. 아름다운 계절에 제주로 향했던 꽃 같은 아이들의 돌아오지 못한 여행이 10년을 향해 가고 있다. 하지만, 명확한 진상 규명이나 책임자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은 여전히 요원하고 현 정권은 이제 거리두기와 기억 지우기의 퇴행적 행위를 노골화하고 있다. 그 와중에 2022년 이태원에서 또 하나의 사회적 참사가 발생했고, 이 역시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우리는 또다시 많은 젊은이의 죽음과 마주해야 했다. 그리고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부 여당의 대응은 세월호 참사 때와 소름이 끼칠만큼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제대로 처리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행동을 하지 않은 사회적 참사는 결국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냉정한 현실을 우리 사회는 다시 한번 수많은 죽음을 통해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를 잃은 슬픔을 딛고 일어서 그 아이들을 추억하고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세월호 유가족의 노력이 우리 모두의 노력이 되어야 한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다지게 되는 시간이다.

 

- 관객리뷰단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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