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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다> 리뷰 : 어디로 흐를지 모르는 물결 속에서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3. 4. 13.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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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다>

어디로 흐를지 모르는 물결 속에서

 

 진영은 서른이 넘은 취준생이다. 그는 언젠가 좁은 집에서 벗어나 해외로 벗어나기를 꿈꾸고 있다. 하지만 진영은 할부금을 낼 능력이 없어 어머니 해수(안민영)에게 손을 벌리고, 아직도 변변찮은 직업을 구하지 못한 채 부모님이 함께 운영하는 공장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용돈벌이를 하고 있다. 취업 스터디도 빠지고 진영이 자의로 하는 일은 없다. 고여 있던 진영을 다시 흐르게 만든 건 해수의 죽음이다.

 

 김현정 감독의 첫 번째 장편영화 <흐르다>는 현실 가족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무뚝뚝하고 고집불통인 경상도 아버지 형석(박지일), 가정과 일터에서 실질적인 중심을 담당하는 어머니, 취직을 준비 중인 30대 딸 진영, 그리고 결혼해서 분가한 언니 소정(강진아)까지 전형적인 지방의 한국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진영은 해수가 죽기 전까지 그와 거의 떨어지지 않는다. 언니네 가족을 만날 때도, 출퇴근 때도, 일을 할 때도 해수의 곁에서 사무를 보았다. 변변찮은 능력 없이 지내는 진영을 못마땅히 여긴 형석과는 한없이 거리가 멀었고 그 사이를 이어주는 것은 해수였다. 해수의 존재로 인해 진영은 고여있어도 전혀 삶에 이상이 없었다. 굳이 돈을 벌지 않아도, 가족의 사업에 관여하지 않아도, 아버지와 사이가 멀어도 해수가 있기 때문에 괜찮았다. 이는 형석도 포함되는 부분이었다. 사업 확장을 위해 무리하게 대출을 써도 해수의 경영 관리로 공장은 그런대로 유지가 되었고 형석은 돈을 쓸 때도, 거래처와 면담할 때도, 하다못해 딸인 진영과 소통할 때도 해수와 함께했다. 두 부녀에게 어머니 해수는 안정적인 바다나 다름없던 것이다.

 

 해수의 죽음은 영화에서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오히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조용하고 별다른 언급 없이 넘어간다. 그러나 인물들에게는 각자 커다란 변화가 생긴다. 중간 다리가 사라진 진영과 형석은 이제 직접 소통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인물들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다른 것이 영화의 가장 큰 변화의 기점이다.

 

 진영은 스터디 모임 후배가 해외로 워킹홀리데이(이하 워홀)을 나간다는 말에 자극받아 본인도 캐나다 워홀 자격 연령 상한에 턱걸이로 합격해 출국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공장 경영을 책임졌던 해수의 부재로 진영은 처음으로 공장 일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다. 직원의 도움을 받아 해수의 일을 간단히 인수·인계받고 현안 해결에도 일조하는 등 꽤 좋은 수완을 보였고, 형석 역시 처음으로 진영을 칭찬하는 등 둘의 사이가 조금씩 붙기도 했다.

 

 반면 형석은 거래처 업무로 만난 적이 있는 젊고 총명해 보이던 호진을 공장장으로 스카우트해 온다. 호진의 사업 확장 계획은 형석의 야망과 일치했고,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음에도 무리하게 계획을 진행하다 결국 파산하고 해수의 마지막 손길이 남았던 공장은 문을 닫는다. 형석은 공장이 문을 닫으며 빚을 변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계를 버리지 않는 등 헛된 희망을 버리지 못한다. 속절없이 흐르는 물살 속에서도 그는 바닥 깊이 가라앉아 고이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앞으로 진영과 형석은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바뀜에 따라 변하는 인물들의 사소한 행동이나 캐릭터들이 위치한 공간의 속성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좇는 카메라에 담긴 스크린은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 속 인물들과 그들이 처한 상황을 마치 우리 곁의 이웃을 보는 것과 같은 사실감을 느끼게 한다. 그들이 일상이 이제는 평온하게 흐르길 바라게 되는 이유다.

 

-관객리뷰단 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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