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여섯 개의 밤> 리뷰 : 하나라고 믿었던 밤에 틈새가 생기면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3. 4. 13. 21:56

본문

<여섯 개의 밤>

하나라고 믿었던 밤에 틈새가 생기면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떠난 뉴욕행 비행기가 엔진 고장으로 예정에 없던 목적지에 불시착한다. 레이오버 호텔에 하룻밤을 체류하게 된 여섯 명의 여행객들은 저마다의 사정으로 쉽게 잠들 수 없는 밤과 마주한다. 낯섦과 설렘, 비밀과 진실, 폭로와 고백 등 관계로부터 비롯되는 다양한 감정이 교차하는 순간에 마르틴 부버의 문장이 등장한다. ‘모든 여행은 여행자가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목적지가 있다.’ 우연히 도착한 비밀스러운 목적지 앞에서 관계의 균열이 발생한다. 그런 균열은 하나라고 믿었던 밤을 여섯 개로 쪼갠다.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이렇게나 서로를 몰랐나 싶을 만큼 멀리. <여섯 개의 밤>은 균열된 하룻밤을 보낸 여섯 명의 여행객들을 세밀하게 관찰한다.

 

  선우(이한주)는 비행기 안에서 수정(정수지)에게 눈길이 자꾸만 간다. 비흡연자 선우는 수정과 한 마디라도 더 하고 싶어서 담배를 산다. 그리고 흡연하고 있는 수정에게 간다. 쭈뼛대는 선우는 용기 내서 수정에게 와인을 마시자고 한다.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선우에게 수정은 건배할 때 상대방 눈을 보는 게 예의라고 말한다. 시선이 마주하자 둘의 관계는 낯섦에서 설렘으로 바뀌고 사랑을 나누기도 하지만 그들의 최종 목적지는 연인이 아니다. 잘 아는 사이라서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고, 잘 모르는 사이라서 말할 수 있는 것들도 있다. 수정은 선우에게 돌아가신 아빠와 겪었던 갈등에 대해서 터놓는다. 그들은 서로를 껴안으며 위로한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식당에서 마주친 둘은 만난 적 없던 사람처럼 모른 척하며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른다.

 

  규형(강길우)과 지원(김시은)은 예비부부다. 규형은 가고 싶어 하던 외국 기업에서 면접 요청이 들어왔고, 이민 변호사와 상담 약속을 하러 뉴욕행 비행기에 오른다. 지원은 예비 시부모를 만나러 가는 줄 알았지만, 상의한 적도 없던 취업 인터뷰나 이민 변호사 얘기 때문에 당혹스럽기만 하다. 결혼이 미래라는 시간을 함께 공유하는 약속이기도 하지만 서로 다른 가치관이 충돌하거나 혼합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규형과 지원은 숙소에서 좀처럼 좁혀질 수 없고 타협할 수도 없는 가치관의 차이만을 확인한다. 자녀 계획에 대해 천천히 생각해 보자는 지원의 말을 천천히 낳자는 말로 받아들인 규형. 상황이 어떤지 체크한 뒤에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힌 뒤에야 상의하려고 하는 규형과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상의하기를 원하는 지원. 지원은 호텔을 떠난다. 규형은 혼자 남게 되어 뉴욕에 혼자 가게 된다.

 

  은실(변중희)는 암 수술을 앞두고 엔진 고장이 난 비행기가 불안하기만 하다. 수술도 걱정되고 비행기 고장도 걱정돼서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는 은실을 유진(강진아)이 위로한다. 유진은 엄마 옆에서 수발드는 자신은 안중에도 없고 아들밖에 모르는 엄마가 야속하기만 하다. 은실은 그런 유진이 아픈 자신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것 같아서 너 내가 빨리 죽었으면 좋겠지라고 말한다. 서로에게 상처되는 말을 퍼붓고 난 뒤 유진이 여태껏 말하지 못했던 것을 엄마에게 털어놓는다. 은실은 엄마한테 말도 못 하고 혼자 속앓이 한 딸이 안쓰럽다. 앞서 나온 두 커플은 가족 이전의 관계다. 하지만 은실과 유진은 피로 연결되어 있는 모녀다. 모녀는 관계의 양상이 쉽게 달라질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모른 체하거나 떠나버릴 수 없다.

 

  하지만 레이오버 호텔에 불시착하지 않았다면 서로의 마음에 대해서 끝끝내 헤아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던 게 맞을까? 서로를 불렀으나 응답할 수 없는 관계. 속마음을 감추거나 지레짐작하거나. 마르틴 부버의 문장에서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목적지는 목적지로 가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일들을 마주할 수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최창환 감독은 레이오버 호텔에서의 예상치 못한 하루는 마치 인생의 한 단면과도 같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계획한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건축 도면처럼 제품 설계도처럼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삶은 여행이라는 은유처럼, 여행은 삶에 비유되곤 한다. 삶을 살다 보면 예기치 못한 순간을 마주치게 된다. 그런 순간 이후에 관계의 양상이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모른 척 남남으로 살아갈 수도 있고, 결혼 직전이라고 하더라도 결혼을 다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혹은 서로에게 무지했던 지난날을 탓할 수도 있다. 비가 온 뒤에라야 땅이 더 단단하게 굳듯이 모른 척 덮어두기보다 직면하는 쪽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면서 하나라고 믿었던 밤에 틈새가 생긴다. 여섯 개의 밤으로 쪼개진다. 이제라도 서로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으니 다행이다.

 

- 프로그램팀 장병섭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