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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번 칸> 리뷰 : 한 겨울의 꿈일지도 모르지만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3. 3. 28.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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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번 칸> 

한 겨울의 꿈일지도 모르지만 

 

외로운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택해야 할까? 주인공 라우라(세이디 하를라)와 료하(유리 보리소프)는 각기 다른 방법을 택한 채 ‘6번 칸에 올라탄다.

 

라우라는 핀란드 유학생으로 원래 연인 이리나와 함께 무르만스크의 암각화를 보러 가려했지만 혼자 여행길에 오른다. 이리나가 갑자기 일정이 생겼다며 일방적으로 여행을 취소했기 때문이다. 암각화도 물론 보고 싶었지만, 그와의 추억을 더 기대했던 라우라는 결국 이리나에 대한 미련까지 함께 들고 나선다. 여행 내내 이리나와 연락을 시도하는 라우라는 연락이 닿아도, 닿지 못해도 항상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본인이 주는 사랑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이리나의 관심은 라우라로 하여금 외로움을 더했지만, 그는 외로움을 상실시키고자 끊임없이 이리나와 연락하고자 한다.

 

료하는 무르만스크의 광산에서 일하기 위해 기차에 탄다. 술과 담배를 달고 사는 그는 라우라와의 첫 만남에서 굉장히 무례하고 이상했다. 술주정과 성희롱을 서슴지 않는 그의 모습에 라우라는 자리를 바꾸려 노력했지만 결국 남는 자리를 찾지 못하고 그와 여행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료하의 행동들은 라우라보다 얕은 그의 지식과 외로움을 숨기기 위한 방어기제였다. 남들에게 버려지기 전에 먼저 본인의 가시를 세우기 바빴던 그는 자신의 무례함을 인정하고 나름의 호의와 다정함을 베풀며 경계를 푼다.

 

<올리 마키의 가장 행복한 날>에서 순수한 사랑을 논했던 유호 쿠오스마넨 감독이 들고 온 <6번 칸>은 전작과는 또 다른 사랑을 말한다. "급류를 향해 점점 더 빠른 속도로 흐르다가 둘 사이의 좁은 틈 사이를 으르렁거리며 마침내 고요한 호수 표현으로 흘러가는 강과 같다"라고 영화에 관해 설명한 감독은 사람의 감정 변화를 상영시간 내내 말 그대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라우라와 료하의 관계는 료하가 라우라에게 자신의 할머니와 오두막을 소개하는 걸 기점으로 변화한다. 라우라가 바라는 모든 게 이뤄지길 바라며 그녀를 위해 건배해 준 료하의 할머니에게 많은 걸 얻은 라우라는 최악이었던 첫인상에서 벗어나 료하의 본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극 중반부에서 이리나와 모스크바에서의 추억이 담긴 캠코더를 잃어버린 후에는 모스크바에 남은 연인보다 료하와의 일들을 더 재밌어하며 현재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료하는 더 인연을 이어 나가고 싶어 하는 라우라와 달리 연락처를 주고받지도, 정성을 들여 그린 그림을 건네지도 못한다. 그는 여전히 외로워질 것을 두려워하는 듯했다. 하지만 라우라가 그가 일하는 공사장에 연락처를 주고 나왔을 땐 거절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무사히 암각화를 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며 라우라의 곁을 지킨다. 료하의 본모습은 따뜻함으로 가득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둘이서 본 무르만스크의 암각화는 각자의 기대와 달랐다. "저게 다예요?" 료하의 어이없는 물음에 라우라는 밝게 웃으며 ", 저게 다예요." 하고 화답한다. 영화를 관통하는 라우라의 목적지는 허무하리만큼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라우라와 료하는 행복하게 여행을 마무리 짓는다. 새하얀 눈밭에서 구르며 어린아이처럼 장난을 치고, 크게 웃어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 관객 역시 공허함을 느낄 자리에 순수한 그들의 모습을 보며 함께 미소를 짓게 된다.

 

<6번 칸>은 훗날을 기약하지 않고 끝난다. 하지만 이번엔 전과 다르게 료하의 그림이 라우라의 손에 들려 있다. 자신의 온 마음을 담아 그린 정성 어린 그림이. 라우라는 이제 자기 내면의 동물을 깨웠다. 그는 새로운 여정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더 이상 연인이 필요하지도, 료하에게 매달리지도 않는다. 그에게 받은 온기가 여전히 따뜻하게 남아있으므로.

 

- 관객리뷰단 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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