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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메의 문단속> 리뷰 : 사람 마음의 무게로 문을 닫으면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3. 3. 2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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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메의 문단속>

사람 마음의 무게로 문을 닫으면

 

<스즈메의 문단속><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에 이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선보이는 재난을 마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신카이 감독 스스로가 이 세 편의 작품을 두고 재난 3부작이라고 칭하지만, 필자는 재난이라는 단어가 지닌 무겁고 어두운 어감을 드러내는 대신 그 자리에 극복이나 희망과 같은 긍정의 단어를 붙이고 싶다. 갑자기 들이닥친 비극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인간의 찬란한 회복력과 재생력을 신카이 감독이 앞서 언급한 세 작품을 통해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신카이 감독은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을 통해 삶에 아로새긴 아름다운 추억이 아픈 기억에 파묻히지 않도록 과거의 슬픔을 받아들여야 함을 다시금 강조하는 듯하다. 절망과 좌절로 가득한 현대 사회와 자연의 거대한 습격 앞에 한없이 연약한 인간이지만, 그러한 인간이 지닌 회복과 재생의 힘을 감독은 확신하고 있음을 이번 작품을 통해 강렬하게 전달하고 있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규슈의 한적한 마을에 살고 있는 소녀 스즈메가 을 찾아 여행 중인 청년 소타와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시작된다. 사건의 계기는 바로 요석(要石)을 뽑아버린 스즈메라고 볼 수 있다. 요석은 재난을 야기하는 미미즈(みみず [蚯蚓], 지렁이를 뜻한다) 이세계(異世界)의 존재가 문 너머에서 현세로 들이치지 않도록 문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 것인데, 그것이 제거됨으로 인해 스즈메가 사는 마을에 절체절명의 순간이 직전까지 다다른다. 다행히 소타와 스즈메가 열린 문을 봉인하여 큰 재난은 일어나지 않았으나, 요석의 역할에서 벗어난 수수께끼의 고양이 다이진이 소타를 의자로 바꿔 버리고 일본 각지의 폐허에 재난을 부르는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영화는 요석이었던 다이진의 탈주와 부자유한 상태(다리가 세 개 달린 의자)가 되어버린 소타를 빌미로 스즈메가 재난을 막기 위한 여정에 나서게 만든다. 애초에 요석을 뽑아버린 스즈메의 실수로부터 벌어진 일이니 그녀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스즈메의 실수가 단순한 호기심은 아니라는 것을 관객은 은연중에 알아차리게 된다.

 

영화는 첫 장면에서부터 스즈메가 문 너머의 세계에 가닿기를 원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형형색색이 물든 하늘 아래, 숨을 가삐 쉬며 풀이 무성한 언덕을 헤매는 어린 스즈메. 눈물을 가득 머금은 소녀는 엄마를 애타게 찾고 있다. 스즈메를 둘러싸고 있는 무너진 건물들의 잔해들과 경관은 어딘가 모르게 현실의 것이 아닌 듯 느껴진다. 이어진 장면에서 꿈에서 깨어난 스즈메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등교를 준비하는 스즈메의 모습을 보아하니 엄마를 찾던 어린 소녀의 간절한 바람은 아마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소타를 찾아 폐허를 헤매던 스즈메 앞에 이 나타났을 때, 무너진 유리정원 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는 문에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기시감(旣視感)이 묻어난다. 그렇게 꿈에서만 그리던 문 너머의 세계가 현실로 다가왔을 때 그곳을 향한 그녀의 열망이 더욱 강해졌을 것이다. 스즈메가 그 문을 열고, 요석을 뽑은 것은 그녀의 마음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리라.

 

영화는 이후에 벌어지는 온갖 해프닝(규슈, 시코쿠, 고베, 도쿄를 동분서주하며 미미즈의 난동과 추락을 필사적으로 막아낸 일련의 사건들)을 거쳐 문을 열어버린 당사자(스즈메)에게 다시 문을 닫는 과업을 부여한다. 이는 매우 단순하지만 명료한 해결책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그려내는 문을 연다.’ 그리고 문을 닫는다.’는 행위는 스즈메에게 있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필자는 영화 속 대사 중 사람 마음의 무게로 문을 닫는다.’는 표현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려 한다. 영화에서 말하는 문 너머의 세계는 죽은 자의 공간이자 재난의 원흉인 미미즈가 날뛰고 있는 공간이다. 문을 사이에 두고 두 세계의 경계는 확고하다. 그런데 스즈메는 현실 속에 살면서 이세계를 갈망한다. 이는 과거 불의의 사고로 죽은 엄마를 떠나보내지 못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스즈메의 미련은 문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재난을 야기하는 씨앗이 된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이토록 혹독한 값을 치러야 한다니, 비정하고 잔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허나, 신카이 감독은 스즈메가 문을 여닫는 것으로 소중한 이를 떠나보낸 살아있는 자들의 마음가짐에 얼마나 큰 각오가 필요한 지 보여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말미, 스즈메는 요석이 되어버린 소타를 되찾기 위해 고향으로 향한다. 터만 남은 스즈메의 고향집에서 영화의 초반 유리정원에서 보았던 것과 유사한 문을 발견한다. 그 문을 열고 이세계로 넘어간 스즈메는 풀밭을 헤매는 어린 날의 자신을 발견한다. 현재의 스즈메는 엄마와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오열하는 어린 스즈메를 꼭 안아주며 위로한다. 지금은 너무 슬프지만 살아가다 보면 괜찮아질 거라고. 결국 스즈메가 앞서 문을 열어버린 건, 아직 어린 날의 그녀 자신이 문 너머 세계에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스즈메의 마음이 이별을 받아들임으로써 비로소 스즈메가 스스로를 사랑하는 힘이 자라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런 자신을 지탱해 준 주변 사람들을 더욱 아끼며 살아갈 이유가 생기지 않았을까?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함께 나아간다면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다는 기적에 가까운 진리를 믿게 되는 순간이었다.

 
- 관객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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