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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웨일> 리뷰 : 무엇이 우리를 구원하는가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3. 3. 25.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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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웨일>

무엇이 우리를 구원하는가

 

찰리(브렌든 프레이저)의 모습을 보기 전, 매일 출석부를 찍듯 피자를 놓고 가는 배달부는 정말 살가운 사람으로 여겨졌다. 매일 배달을 하면서도 주문하는 이의 모습은 좀처럼 볼 수 없으니 찰리의 안부가 진심으로 걱정되는 듯 그에게 괜찮은가를 묻는 목소리에서 온기를 느끼기까지 했다. 그러나 찰리의 거대한 모습을 확인하고 놀라는 그의 눈에서 감지되는 혐오의 빛은, 혹시나 했던 일말의 기대에 대한 실망으로 인해 오히려 더욱 서늘한 바람을 가슴에 훅 불어넣는다.

 

그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도 찰리의 모습을 볼 수 없는 상태로 온라인 수업을 들을 때에 보여주던 공감과 호의는 그가 웹캠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순간, 역시나 경악하는 표정으로 바뀌고 만다. 그가 그토록 열정을 쏟아왔던 강의가 한순간에 무의미한 것이 된 듯한 허탈함이 밀려오는 순간이다. 피자를 주문하는 사람이, 글쓰기 강의를 하는 사람이 마치 고래와 같은 외모를 가졌다 한들 도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어떤 존재에 대해 눈앞에 보이지 않을 때 갖던 신뢰와 믿음은 그것이 눈앞에 실제로 보였을 때 한층 더 강화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신기루처럼 사라지기도 한다. 소위 고등 종교라 하는 종교들이 대체로 신앙의 대상으로 섬기는 신을 가장 완벽한 외모를 가진 인간의 형상(그것도 남성)으로 표현하는 것이 혹시라도 그러한 이유는 아닐지 의심을 품는다면 불손한 상상일까? 애니미즘이나 토테미즘은 그 믿음의 대상 자체만으로도 하등 종교로 취급받지만, 신이 실제로 곰이나 호랑이, 바위나 태양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사람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믿음과 신념은 인간이 살아가는 힘의 원천과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때론 그것 때문에 스스로를 파괴하기도 한다. 찰리와 그의 연인은 사랑을 따라갔지만 오래지 않아 낭떠러지 끝에 도달했다. 찰리의 연인은 신으로부터 버림받자 그 상처를 인간의 사랑으로 치유하지 못해 음식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함으로써 결국 죽음으로 나아갔고, 찰리 역시 사랑을 잃고 난 후 채워지지 않는 상실을 대신하기라도 하듯 음식을 과다하게 섭취함으로써 죽음으로 향하고 있다. 신에 대한, 연인에 대한 믿음과 사랑은 그들의 몸과 마음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파멸로 이끌고 말았다.

 

젊은 전도사 토마스(타이 심킨스) 역시 자신의 신념을 좇으며 찰리를 구원하겠다고 집요하게 방문을 하지만, 찰리에게 내미는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이미 찰리와 그의 연인을 버렸던 종교에 대한 믿음을 강요하는 것이다. 사실 찰리가 비록 육체적 구속은 벗어나지 못했을지언정 죽음의 두려움에 있어서는 이미 자유로운데 도대체 토마스는 찰리의 무엇을 구원하겠다는 것인지 의아하기만 하다. 오히려 자신의 신념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그리하여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한 수단으로 찰리를 찾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만 갖게 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신과 종교가 과연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까? 회의만 가득한 이 영화의 분위기는 현실의 종교가 딱히 부정할 방법이 없기에 더욱 우울하고 암울하게 다가온다. 필자는 유한하고 불확실한 삶을 살아내야 하는 인간에게 마음의 평온을 주고 사랑으로 보다 아름답게 살도록 인도하는 것이 신과 종교의 존재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날 나만이 옳고 유일하다는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종교의 편협성을 보고, 혐오와 저주를 퍼붓는 신의 모습을 보면 구원은커녕 세상을 더이상 망치지나 말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물론 종교와 신을 믿고 해석하는 인간의 탐욕과 일그러진 시선이 잘못이겠지만 말이다.

 

이 영화가 서글픈 것은 어쩌면 종교와 신이 인간을 구원할 수 없을 것이라는 실망보다, 적어도 사랑만큼은 세상을 구원하리라는 양보할 수 없는 믿음이 도전을 받는다는 것이다. 찰리 커플은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한계를 보였고(새로운 사랑을 위해 또 다른 사랑을 무참히 버렸다는 사실도 포함해서), 찰리와 딸 엘리(세이디 싱크) 사이에 소위 천륜의 사랑도 이미 깊어진 상처를 치유하기엔 역부족일 정도로 증오가 가득했다. 여기에서 더 큰 문제는 찰리의 태도인데, 그가 구원받는 것은 사랑의 확인이나 회복 그 자체보다는 딸을 통해 도달하는 궁극의 글쓰기가 아니었나 하는 의심을 거둘 수가 없기 때문이다.

 

찰리는 평소 꿈꾸고 소망했던 죽음을 맞이한다. 엘리의 목소리로 직접 낭독되는 소설 <모비 딕>에 대한 그녀의 에세이를 들으며 마지막 온 힘을 다해 무거운 자신의 몸을 일으키고 이내 환희에 찬 표정으로 마치 바다를 유영하는 고래처럼 떠오른다. 오직 그만이 구원을 받는 순간이다. 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홀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처럼.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으나 누구든 예상할 수 있는 찰리의 구원 그 후를 생각하면 입맛이 쓰다. 딸 엘리는 8살에 버림받았던 아빠 찰리와의 짧은 만남 며칠 만에 그의 죽음을 눈앞에서 바라봐야 하고, 문밖에 서있던 리즈(홍 차우)는 사랑하던 오빠에 이어 그의 연인인 찰리의 죽음까지 수습해야 하는 기구한 운명을 맞이한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구원하는가.

 

- 관객리뷰단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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