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컨버세이션> 리뷰 : 그 날의 만남, 우리의 대화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3. 3. 8. 15:39

본문

 

<컨버세이션>

그 날의 만남, 우리의 대화 

 

 정말이지 요상한 영화이다. 도대체, , 무슨 연유로 내가 저들이 나누는 대화에 빠져들고 있는 거지? 영화 <컨버세이션>에 담긴 인물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두런두런 모여 시시콜콜한 인생에 대하여 대화만 나눈다. 그들의 이야기는 필요와 효용이라는 기준에 비추어볼 때 한참 아래 순위에 위치할 것이다. 그들 사이에서 오고 가는 잡담에 가까운, 도무지 알맹이가 무엇인지 알다가도 모를 대화에 어느새 심취하여 화면이 뚫어져라 집중하고 있는 필자 자신을 발견한다. 은영(조은지)과 승진(박종환)을 중심으로 두 사람의 곁가지에 자리한 지인들과의 대화는 시간의 순서와 인과 관계에 구애받지 않고 뒤죽박죽 섞여 있다. 이러한 의미심장한 편집에서 사건의 실마리를 숨겨두려는 의도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당황스러움으로 다가오나, 이런 감정의 요동은 이내 곧 사그라든다. 다만, 스크린에 펼쳐지는 무심하게 툭툭 던져지는 어느 날 어느 장소에서 벌어지는 그들의 대화 자체에 빠져들어갈 뿐이다. 어쩌면 영화는 제목에서부터 대화(혹은 소통)를 경험하고 그것의 본질을 파고들게 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맥락 없이 분절된 서사만큼이나 <컨버세이션>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특징은 바로 카메라의 시선이다. 인물들의 대화를 담아내는 카메라의 시선은 고정되어 있다. 인물을 클로즈업하거나 인물의 동선을 따라가는 카메라 샷은 이 영화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고정된 화면에서 인물들은 화면 안팎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대화를 이어나간다. 이러한 장면에서 화면에는 보이지 않는 인물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공간을 상상하는 묘한 재미가 있다. 위와 같은 연유료 대명(곽진무)의 집 전등 스위치를 고치는 필재(곽민규)와 그의 등 뒤에서 승진과 대명이 이리저리 이동하며 나누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세 남자의 대화에서 필재를 화면 정중앙에 남겨둔 승진과 대명은 도대체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에 대한 호기심은 이들의 대화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만든다. 더불어 동선의 변화나 초점의 전환 없이 한 곳에 우두커니 서 있는 카메라의 시선에서는 어떠한 온도(따뜻하다 혹은 냉정하다와 같은)도 느껴지지 않는다. 카메라의 무관심은 관객으로 하여금 대화가 벌어지는 상황에 보다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승진과 필재가 공원에서 유모차를 끌며 돌아다닐 때 카메라는 멀찍이 떨어져 두 사람의 이동을 지켜본다. 카메라가 동행하지 않기에 관객은 승진과 필재의 이동을 눈으로 좇으며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자 애를 쓰게 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컨버세이션>의 인물들이 시종일관 나누는 대화는 소소하다. 하지만 소소함이라는 것이 중요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지만 인생은 쓸데없지만 귀한 것들로 인해 그 의미의 깊이를 더해간다. 세상이 필요와 효용으로만 가치를 매기고 있지만은 않음을 <컨버세이션>의 대화들 덕분에 새삼 깨닫는다. <컨버세이션>이 별 거 아닌 것으로 치부될 수 있는 일상의 대화들로만 가득 채운 이유는 대화를 나눈다는 행위 자체를 부각하기 위함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덧붙여 대화는 결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과정임을 공고히 보여주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 어느 곳에서 어느 누군가와 함께 나눈 말들은 오묘하고도 쌉싸레한 기억으로 자리 잡아 우리가 지나 보낸 나날들 사이사이에 켜켜이 쌓여간다. 그리고 너와 내가 모여 만든 우리사이에서 오가는 별 볼 일 없는 대화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다행스럽게 적어도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대화가 이어질 것이다. 너와 나의 만남만으로도 삶의 진리와도 비슷한 무언가를 깨닫는 존재들이 바로 인간이기에 거창할 것 없는 대화의 순간들이 이전과는 다르게 느껴지고 있다.

- 관객 리뷰단 박유나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