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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 리뷰 : 폭력을 정당화할 권력은 없다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3. 3. 8.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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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

폭력을 정당화할 권력은 없다

 

 여전히 보수적인 클래식음악계(여성이 들기에 가장 무거운 것이 지휘봉이라는 농담이 있을 만큼)에서도 완고하기로 소문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최초의 여성 상임지휘자를 앉히고서 굳이 그를 악마화해야 했을까. 전세계적으로 미투운동이 일어난 지 10년 남짓 되었지만, 아직도 가해자에 대한 단죄나 피해자에 대한 구제가 제대로 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게 현실인데 이렇게 여성이 가해자로 등장하는 영화라니 얼핏 수긍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최근 반 클라이번 콩쿠르 결선에서 임윤찬이 우승할 당시 협연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우리에게 익숙해진 여성 지휘자 마린 알솝은 <선데이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여성이 그 역할로 연기할 기회를 얻었는데 가해자로 만들었다”고 직접적으로 아쉬운 마음을 토로했다.

 

 한술 더 떠서 아무리 가상의 인물이라지만 현존하는 최고의 유명 연주단체 중 하나인 이 베를린 필 최초의 여성 상임지휘자 리디아 타르(케이트 블란쳇)는 동성애자이다. 성적 차별도 모자라서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까지 얹어진다면, 출중한 재능과 남다른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인정 받기는커녕 오히려 각종 불이익과 폭력의 피해를 겪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떠올리기 쉽다. 그게 아니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성공을 이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보편적인 기대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런 현실에 마치 딴지라도 걸 듯, 하필 누구라도 가장 오르기 어려운 자리에 그를 앉히고 영광의 꽃다발은커녕 오히려 폭력의 가해자라는 굴레를 씌우다니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충분히 논란과 논쟁을 유발할 수 있는 설정과 이야기 전개에 의아한 마음이 든다.

 

 그런데, 자신이 가진 힘을 이용하여 주변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타르가 전통적인 약자(또는 피해자)에 속하는 인물이기에 오히려 역설적으로 권력에 의한 폭력의 실체를 보다 선명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실제로 영화 속 그는 이미 권력의 정점에 선 전형적인 가해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가 가진 권한을 무차별적으로 활용하며 상대가 받게 될 상처 따위는 애초에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게다가 남성들이 부정적으로 이용했던 권력과 우월적 지위를 적극적으로 향유하는 태도를 보면, 그는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이나 편견을 깰 의지는커녕 그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 듯 보인다. 불평등과 불공정에 대한 문제의식과 그것을 바꾸려는 소명의식 대신 그는 자신이 가진 지휘봉의 힘을 최대한 즐길 뿐이다.

 

 타르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실로 대단하다. 그러한 열정이 노력과 결합되어 그가 최고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는 사실까지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음악을 향한 그 진심만큼 사람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가졌더라면 어땠을까연인인 소피(니나 호스)가 가진 악장의 위치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려는 거짓 사랑에 의해, 과거의 타르가 그랬듯 각자의 꿈을 간절히 소망하는 사람들을 그저 자신의 소모품처럼 쓰고 버리는 각박한 리더십에 의해 그는 스스로 파국을 부른다. 너무나 하찮아서 자신의 권력에 티끌만큼의 위해도 가할 수 없을 듯했던 사람들에게 범했던 그의 악행이 하나둘 자신을 향하는 칼날이 되어 돌아온다. 이렇듯 영화는 권력자의 폭력이 성별과 주류, 비주류를 떠나 과연 용납될 수 있는가 묻고 있다.

 

 이 영화는 케이트 블란쳇의 영화라 할 수 있을 만큼 그의 독보적인 연기력에 기대어 있다. 리디아 타르 그 자체인 배우의 존재에 더해 감독 토드 필드는 타르의 개성 있는 캐릭터를 창조하고 그가 파멸에 이르는 과정에서의 감정적 추락을 농밀하게 연출하고 있음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영화 초반 제법 길게 이어지는 대담은 타르라는 인물을 입체적이고 다층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음악적 소양이 어느 정도 필요한 내용이 길게 이어지는 것이 다소 모험적인 시도로 보일 수 있으나, 마치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에서 낭독이나 연극 리허설이 그랬듯 지휘자로서의 타르가 어떤 인물인지를 또렷하게 그려내는 데에 이 대담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덕분에 그의 악행과 몰락 과정에서 보여주는 기괴한 행동과 심리적 변화가 설득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명색이 음악 영화이니만큼 수록곡을 감상하는 것도 영화를 좀 더 풍성하게 즐기는 좋은 방법이고, ‘캔슬 컬쳐의 문제나 음악의 해석과 지휘론에 대한 견해에 관심을 가져 보기에도 인 영화이다. 과연 이 출중한 영화가 아카데미에서 얼마나 많은 상을 거머쥐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 관객 리뷰단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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