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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소희> 리뷰 : 우리가 들어야 하는 목소리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3. 3. 8.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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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소희> 

우리가 들어야 하는 목소리

 

고등학생이 죽었다. 어른들의 욕심으로. <다음 소희>는 우리가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이름의 아이를 주인공 삼아 현재 우리 사회의 취약점을 낱낱이 고발한다.

 

주인공 소희(김시은)는 춤을 좋아하는 고등학생이었다. 영화의 첫머리부터 열심히 춤 연습으로 땀 흘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그가 얼마나 춤에 진심인지 알 수 있도록 만든다. 하지만 소희는 졸업하기 위해 현장 실습을 나가야 했고, 담임 선생님은 그런 소희를 위해 대기업 실습 자리를 확보했다며 소희를 콜센터로 실습을 보낸다. 선생님은 콜센터가 고객의 민원을 접수하고 문의 사항을 해결하는 곳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소희가 들어간 콜센터는 해지를 위해 전화를 건 고객을 다른 상품을 사도록 유도하면서 해지 신청을 막도록 만드는 이른바 해지 방어 부서였던 것이다.

 

소희는 굉장히 자기 주관이 뚜렷한 아이였다. 인터넷 방송을 하는 친구를 보며 욕을 하는 남자 어른을 보고도 당당히 가서 한 마디 던지고 하고, 인센티브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거나 실적에 비해 월급이 적을 때엔 제 권리를 요구할 줄 아는 아이였다. 그런 소희가 변하기 시작한 건 자신의 목소리가 상대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였다.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은 소희가 의 입장에 번번이 가로막혔다. 근로계약서와 달리 월급이 적어도 소희는 실습 나온 학생이라서, 근무 중에 성희롱 혹은 욕설을 들어도 고객을 응대하는 서비스직 근로자라서. 부모조차 자신에게 큰 관심이 없었으며 친구들은 각자 실습을 나가거나 하는 이유로 바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목소리를 잃은 소희는 시린 바람이 부는 겨울 저수지에 빠져 죽는다.

 

영화를 이루는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력이 너무 뛰어나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보는 내내 정말 실제로 있었던 일을 보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만큼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묘사를 관람하면서 숨이 턱턱 막히는 장면이 많았다. 모두 다 현실을 기반으로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과장돼서 표현되지도 않았다. 감독은 자칫 평범해 보일 수 있는 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비극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소희의 죽음을 기점으로 <다음 소희>1부와 2부로 나눌 수 있다. 그가 죽은 후에는 지방 경찰서에서 경위를 맡고 있는 유진(배두나)이 주인공이 되어 극을 이끈다. 소희가 다니던 학원에서 한 번 마주친 적이 있었던 유진은 소희의 자살 사건을 맡아 수사하면서 이 엄청난 비극의 이면을 마주하게 된다. 소희가 단순 자살이 아닌 산업재해의 피해자라는 것을 안 유진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가해자 기업, 학교, 교육청 등을 전전하며 애쓴다. 종래엔 유진이 소희가 죽기 전 들렀던 곳들을 한 번씩 들르며 그가 먹었던 안주와 술, 앉았던 자리, 보았던 풍경까지 똑같이 따라 해 본다.. 해당 장면은 유진의 표정과 어스름히 비치는 햇볕, 그리고 고요한 배경 음악이 깔리는데 다른 웅장한 무언가가 들어가지 않아도 충분히 감정이 북받칠 정도로 울컥하게 만든다.

 

정주리 감독은 다음 소희는 없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인터뷰에서 언급한 바 있다. 소희와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생기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는 소희에게 관심을 끊어서는 안 된다며 계속 암묵적으로 말한다.

 

소희의 주검 앞에서 아이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며 고백하는 부모, 원래 문제아였다며 자신들의 잘못은 회피하는 회사, 개개인의 일보다 학교 혹은 교육청의 존속이 중요하다는 어른들, 그리고 나아가 취업률 수치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정부까지 어느 하나도 아이들에게 관심을 주는 어른이 없었다. 유진이 그렇게 사건을 해결하려 이곳저곳을 들러도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의 미래를 쥐고 있는 청소년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나라에 앞으로의 시간이 남아있을 수 있을까? 당장 내 주변의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눈길을 주고, 애정을 준다면 우리는 다음 소희를 막을 수 있다. 자기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물밑에서 외치는 소희들이 많다는 걸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 관객 리뷰단 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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