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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썬ㅣ전여빈 배우 초청

CINE TALK 씨네 토크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3. 3. 17.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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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썬> 씨네토크 

2023. 3. 11.

 

초청 : 전여빈 배우

진행 : 이화정 영화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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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정 : 안녕하세요. 영화 저널리스트 이화정입니다.

 

전여빈 : 안녕하세요. 저는 배우 전여빈입니다. 반갑습니다.


이화정 : 제가 신영극장에 씨네토크하러 많이 오는데 오늘이 제가 온 날 중에 가장 많은 관객분들이 계신 것 같아요. 신영극장에서 이렇게 많은 관객분들과 만나게 됐는데 먼저 배우님 소감을 좀 들어볼까요.

 

전여빈 : 제가 <죄 많은 소녀> 씨네토크 이후로 신영극장에 오랜만에 온 것 같은데요. 3년 정도 됐을까요. 제가 3년 만에 관객분들을 만나러 온 것은 사실 이유가 있었어요.

 

이화정 :  전도사입니까? (웃음)

 

전여빈 : 그 이유는 무엇인고 하면. 지금 신영극장에서 캠페인을 벌이고 있어요. 혹시 그 캠페인의 문구가 뭘까요?

 

관객들 : 신영극장을 부탁해!


전여빈 : 신영극장은 강원도에서 유일무이한 독립예술영화 극장입니다. 강릉씨네마떼끄가 지자체 보조금이 전액 삭감되면서 운영이 좀 힘들어졌다는 되게 슬픈 소식을 들었어요. 그래서 뭔가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는 마음에 이화정 기자님과 함께 오늘 자리를 마련하게 됐습니다.

이화정 : 제가 이렇게 많은 관객분들을 봐서 너무 기분이 좋다고 했는데 평소에는 신영극장에 관객이 많지 않아요. 신영극장이 시민들과 독립예술영화를 가깝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예산이 삭감되다 보니 더 이상 관객들에게 좋은 영화를 소개해 줄 수 있는 창구가 없어질 위기에 처하는 거죠. 그래서 전여빈 배우님이 그 소식을 듣고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고, 극장에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시민들에게 어떻게 알려야 될까라고 생각을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강릉이 배출한 우주대스타 전여빈 배우님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전여빈 : 저는 강릉 토박이였어요. 19살 때까지 나고 자란 저희 동네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놀랍게도 여기 송은지 강릉씨네마떼끄 사무처장님과 제가 고등학교 시절 짝꿍이었대요. 신영극장은 독립예술영화를 위해서 아주 힘써서 일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또 강릉씨네마떼끄가 정동진독립영화제를 운영하고 있거든요. 정동진독립영화제는 저한테 추억이 되게 많은 곳이기도 해요. 그래서 뭐라도 좀 힘을 보태고 싶었어요. 그리고 강릉 사는 분들은 아마 알 거예요. 신영 앞에서 만나자.

 

이화정 : 홍대 앞에서 만나자고 하는 것과 비슷한 건가요?

 

전여빈 : 맞아요. 친구들하고 약속을 하면 거의 신영 앞에서 보자고 했던 것 같아요. 근데 사실 신영극장의 이름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데 장소는 몇 번의 변화가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아마 어렸을 때 왔던 신영극장이 지금 모습은 아닐 거예요. 저도 그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여기로 옮기기 전에는 롯데리아 자리에 있었을 거예요. 거기서 고등학생 때 혼자서 영화를 보고. 그때는 영화를 보면 그다음 회차에 똑같은 영화가 상영이 돼요. 근데 나가라고 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똑같은 영화를 계속 같은 자리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던 게 생각나요. 그게 한편으로는 저한테 현실을 도피하는, 아주 안전하게 도피하는 좋은 수단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이화정 : 수단이자 공간을 제공해 준 장소였네요.

 

전여빈 : , 그렇죠.

 

이화정 : 정말 토박이가 맞네요. 강릉씨네마떼끄가 운영하기 이전에 어린 시절 신영극장의 기억들도 있었을 테고 이제 독립예술영화를 소개하는 신영극장이 되고 나서는 배우님이 출연한 작품들을 소개해 주는 창구로도 굉장히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는 공간이었을 것 같아요.

전여빈 : 네 맞습니다. 우선 여기서 제가 출연한 영화가 처음 상영된 기억은 문소리 선배님께서 연출한 <여배우는 오늘도>로 관객분들을 만나서 너무 기뻤던 기억이 나고요. 그리고 두 번째는 <여자들>로 그다음에는<죄 많은 소녀>로 신영에서 씨네토크를 아주 신나게 했었던 기억이 나고요. 그리고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도 상영을 했을 텐데 아마 다른 걸 촬영하고 있어서 오지 못했던 것 같아요. 또 이제 뭐가 있을까요. 없나 봐요. 열심히 일을 해야겠어요. (웃음)

이화정 : 그간에 출연한 독립영화 작품들을 알리는 공간으로서 전여빈 배우한테는 신영극장이 너무 소중한 거죠. <죄 많은 소녀>를 제외하고는 말씀하신 작품들이 대부분 흥행작이 아니잖아요. 만약에 독립예술극장이 없었다면 여러분들이 그런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오늘날 우주대스타가 된 전여빈 배우 덕에 관객이 신영극장을 인지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에서 봤던 전여빈 배우 너무 인상적이고 좋은데 다음에 전여빈 배우 나오는 영화를 또 보러 신영극장에 갈까. 이런 마음이 생기게 해주는 곳이 극장이라는 공간인 것 같아요. 그래서 아마 지금 독립영화의 신인 배우들이나 신인 감독의 작품들도 그런 식으로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연결되고 꿰어 맞춰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독립예술극장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여빈 : 영화라는 게 소통의 예술이잖아요. 사실은 영화를 만들기만 해서는 그 자체로만 빛나는 게 아니고 이걸 목격해 주시는 분이 있어야 된단 말이에요. 관객분들이 목격해 주시는 순간부터 영화의 가능성이 무한해져요. 그런 순간이 저한테는 되게 큰 기회의 순간이었어요. 저는 극장 그리고 독립예술영화라는 것에 대한 굉장히 큰 애착이 있어요. 상업 진영에서는 쉽게 말할 수 없는 것들을 굉장히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좋은 이야깃거리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저는 아직도 독립예술영화들을 너무나 사랑하고 갈구하기 때문에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장소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크게 있어요. 그래서 어떻게든 좀 지키고 싶고 지키는 것에서 나아가서 더 확장시키고 싶거든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과의 시간이 아주 소중하고 또 여러모로 각각의 장소에서부터 이곳에 와주신 여러분들께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이화정 : 박수 한번 부탁드려요. 오늘 본인 참여 작품이 아니라 다른 작품으로 신영극장에 방문해 주셨어요.. 굉장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계시죠? 지금 극장에서 상영하는 배우님의 작품은 없지만 다른 작품을 열심히 준비 중인 걸로 알고 있어요.

전여빈 : <너의 시간 속으로>라는 넷플릭스 시리즈를 한 10개월간 촬영했어요. 촬영하는 동시에 <거미집>이라는 영화 촬영을 했고 두 프로젝트는 무사히 잘 마쳤고요. 최근에는 <하얼빈>이라는 영화에 합류해서 몽골도 다녀왔고 라트비아라는 국가도 한 5주 정도 머물다가 왔어요. 한국에 들어온 지 이제 일주일 정도 되었고요. 이게 시차 적응 중인 건지 뭔지 모르겠는데 아침에 잘 일어날 수가 없어요. 너무 졸리고요. 네 그렇습니다. 근데 아직 <하얼빈>은 끝나지 않았어요.

 

이화정 : 앞으로 배우님이 출연한 많은 작품들을 플랫폼이나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겠네요. <애프터썬>을 보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열심히 영화 찍고 바쁜 와중에도 신작들을 놓치지 않고 보고 있었네요.


전여빈 : 작년에 <애프터썬>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이 됐을 거예요. 그때 관객들 반응이 아주 좋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더불어 제가 촬영하는 <거미집> 현장에서 B팀 촬영 감독님께 제가 <애프터 양>이라는 영화가 너무 좋고 아름다운 영화인데 그걸 꼭 보셨으면 좋겠다고 제안을 하니까 애프터 양? 여빈씨 <애프터썬>이라는 영화가 정말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메모하고 기억해 뒀는데 이후에 신영극장이랑 연락을 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제가 출연했던 영화들을 재상영하자는 얘기도 나왔는데 요새 상영 중인 좋은 영화로 관객분들을 만나고 싶은 거예요. 극장에서 상영할 수 있는 기간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으니까 지금 상영하는 작품으로 관객분들을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았어요. 근데 또 막상 정하고 나니까 시간이 지나서 새로운 개봉작들이 많아지더라고요.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프터썬>은 절대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저한테 올해의 영화예요.

 

이화정 : 그래서 이제 본인 작품보다는 지금 막 개봉한 따끈따끈한 작품을 여러분들과 같이 얘기하면 좋겠다고 하셨고. 여러분들도 어떻게 보셨을지 너무 궁금하네요. 그래서 일단 영화 얘기도 좀 하죠. 이 작품 진짜 놀라운 거는 신인 감독이에요.

전여빈 : 샬롯 웰스라는 1987년생 감독이에요. 제가 너무 궁금해서 찾아봤어요. 장편데뷔작이라고 하길래 너무나 놀라웠어요.

 

이화정 : 굉장히 독립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구상하고 실제로 프로덕션 과정 자체도 얘기를 들어보니까 거의 독립영화 규모로 제작한 영화더라고요. <문라이트>를 연출했던 배리 젠킨스 감독이 샬롯 웰스 감독의 단편을 보고 싹수가 있다 해서 제안을 했고 제작자로 참여하면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하더라고요. 선수가 선수를 알아본 거죠.


전여빈 : <애프터썬>20년 전에 아버지와 여행을 다녀왔던 튀르키예에서의 며칠 동안의 기록을 돌아보면서 파생되는 자기의 감정이나 회고를 재기록한 영화 같아요. 사실 줄거리만 봤을 때는 굉장히 감상적이어서 영화를 보는 내내 감정을 억지로 강요받지는 않을까 약간 섣부른 판단을 갖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어요. 왜냐하면 저 또한 아버지라는 대상에 대한 아직도 해결할 수 없는 뭐라고 해야 될까요. 그리움 같은 게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영화가 되게 궁금했어요. 어떻게 아버지를 떠올렸을지. 근데 영화를 보면서 제가 느꼈던 건 끝내 닿을 수 없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이 너무나 사려 깊게 느껴졌어요. 끝내는 받지 못하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나 헤아림. 그게 ABBC다 이렇게 논리적으로 딱 떨어지지 않는 공식으로 정답처럼 풀어내지 않았어요. 제가 봤을 때는 이 모든 시퀀스들이 정말 많은 계산을 하고 편집을 한 것 같거든요. 저는 정말 그렇게 느꼈어요. 감독이 즉흥적으로 만든 건 절대 아닐 것 같아요. 닿을 수 없는 그날에 먹었던 음식들, 향기들, 온도들, 소리들을 영화 안에 넣고 싶어 하는 감독의 회고가 저한테는 너무 확 와닿는 거예요. 이야기는 간결한 것에 비해서 관객이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그 여백이 상당해서 저의 감상이 그 안에서 함께 춤출 수 있는 영화였어요.

이화정 : 너무 좋은 표현인데요. 나의 감상이 그 안에서 함께 춤출 수 있게 해 준다는 게.

 

전여빈 : 저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과연 이 영화를 볼 때 다가오는 슬픔이 아버지에게 닿을 수 없고, 헤아릴 수 없었던 어린 소피가 나오는 이야기 자체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잃어버렸던 기억이 자꾸 투영돼서 사실은 나를 들여다보게 하기 때문에 혹은 그 시간이 너무나 길고 깊기 때문일까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어떻게 보셨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너무 제 감상만 풀어놨는데요. 관객분들은 어떤 장면에서 좋으셨는지 어떤 감상을 갖고 계신지 이야기를 되게 듣고 싶기도 했어요. , 그리고 이거 제가 되게 흥미로운 지점 하나만 또 말씀드릴 게 있어요. 혹시 <멜로가 체질> 보신 분 있으세요.

 

이화정 : 너무 화제작이잖아요.

 

전여빈 : <멜로가 체질>에서 제가 은정이라는 역할을 했는데 다큐멘터리 감독이에요. 그때 제가 그 인물을 만나면서 저에게 질문을 던지고 제 안에 가지고 있던 화두 중에 하나가 내가 만약에 진짜 은정이라면 다큐를 뭘 찍고 싶을까라는 생각을 해봤던 적이 있어요. 그냥 아주 평범한 사람의 하루를 따라가 보고 싶다. 따라간 하루들을 열거해보고 싶다. 그러면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삶의 평범성에서 혹은 그 비어 있는 시간들에서 인간이 아예 태초부터 갖고 있는 외로움을 살펴보고 싶다. 그런 얘기를 인터뷰에서 했거든요. 근데 제가 정말 깜짝 놀랐어요. 제가 은정이라는 인물을 연구하고 탐구하면서 느꼈던 감정이 있어요. 은정이라는 친구가 처음으로 상담을 받으러 가게 되는 날이 있어요. 그때 어머니와 있었던 일화를 털어놓게 돼요. 그 장면에 대해서 시청자분들은 그날의 진실이 알고 싶다고 하는 분도 계세요. 저는 인간의 우울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인간이 너무나 소울풀한 존재라 심장 안에 뜨거운 것이 있어서 그 공간 안에 되게 많은 색깔이 들어갈 수 있기도 하고 그 안에 많은 것이 채워질 수 있다고 믿거든요. 근데 그게 비워지는 날들도 있을 거예요. 혹은 너무 뜨거워서 다 소진돼서 재가 돼버리는 날도 있을 거고. 혹은 너무 차가워져서 굳어져버리는 날들도 있을 거고. 아니면 어떤 온도와 습도가 알맞아서 씨를 뿌리면 그 씨가 잘 자랄 수 있는 땅의 상태와 같은 심장을 갖고 있을 수도 있고요. 근데 제가 그 당시에 은정을 해석할 때는 은정이 비단 어머니와의 불화로 어머니 때문에 슬퍼한다고 판단 내리지 않았어요. 감독님한테도 그런 얘기를 했었거든요. 은정이라는 친구는 엄마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지만 모르겠다는 말로 그 상담을 마무리 지어요. 그러다가 모르겠어요라는 말을 반복을 하다가 펑펑 울어버리거든요. 근데 자기가 왜 우는지도 몰라요. 우는 건 꼭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에요. 뭔가 <애프터썬>을 보는데 은정이가 생각나더라고요. 그래서 그 이야기를 관객분들께 나눠주고 싶었어요.

 

이화정 : 배우님들이 자기 캐릭터에 대해서 어떻게 연구를 하고 접근을 할까 궁금했는데 오늘 처음 알게 됐네요. 근데 진짜 이 작품은 아까 얘기한 것처럼 각자의 영화로 남게 해주는 것에 힘이 있는 것 같아요. 그니까 너무나 보편적이라고 하는 모든 재료들을 가지고 있거든요. 튀르키예 여행이라는 것 자체도 사실은 특별하다기보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숙소에 묵고 똑같은 동선으로 관광지들을 가게 되고 관광지 안에서 먹는 것도 다 똑같잖아요. 감독도 그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이렇게 보편적인 것들을 집어넣어서 재료로 삼아야지 그 안에서 내 기억을 좀 길어 올릴 수 있겠다고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실제로 감독이 어릴 때 아버지랑 같이 튀르키예 여행을 간 적이 있었고 거기서 착안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이예요. 조금 사춘기가 빨리 온 여자 아이와 너무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된 청년. 그 둘이 같이 여행을 떠난 게 핵심적인 상황이거든요. 아이는 내가 이미 어른이 되었고 남들과는 다르다고 생각은 하지만 아직은 아버지를 잘 모르겠고 좀 이상하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아버지는 너무 일찍 아버지가 됐고 고민이 많은 시기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 싶어 하는 변환기에 둘이 만나 같이 여행을 가고 이상한 감정들을 감지하는 일이 계속되는 거죠. 우리도 그런 시기들 있잖아요. 뭔가가 바뀌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좀 바꾸고 싶기도 하고. 이런 상황과 감정들을 아까 말한 것처럼 영화가 너무 잘 잡아냈어요. 되게 구조적이고 정교하게 계산된 어떤 연출과 연기가 있더라고요. 감독은 이 영화의 구조가 기억이라는 얘기를 했어요. 기억이 이 영화의 어떤 구조를 만들어냈고 그 안에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얘기를 했어요. 그리고 기억은 관객들에게 향하고, 자신들의 기억을 하나하나 좀 되살려내기를 바랐던 것 같아요.

 

전여빈 : 인간의 기억이라는 게 공장에서 찍어낸 것처럼 완벽하게 온전하지 않고 왜곡됐을 때가 많잖아요. 그런 지점에서 영화의 제목을 돌아보게 되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애프터썬을 잘 안 바르는 걸로 알아요. 햇볕에 다 탄 살 위에 바르는 크림이 애프터썬인데요. 피부를 다시 재생시키고 보호하기 위해서 바른다고 하더라고요.

 

이화정 : 휴양지 같은 데서 많이 발라요, 그쵸?

전여빈 : 네. 애프터썬은 이미 햇볕에 다 그을려버리고 화상을 입어버린 피부 위에 바르는 크림인 거예요. 어떻게 보면 소피가 아빠를 어루만져주지 못하고 크림을 발라주지 못했던 어떤 마음이 이입된 제목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좀 들었어요.

 

이화정 : 그러네요. 기억이 이 영화의 구조라고 감독이 얘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재미있는 점은 플래시백이 없어요. 여느 영화처럼 회상하고 다시 돌아오고 이런 게 아니라 그냥 그 당시에 기억만 가지고 아버지의 모습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잖아요. 결국 마지막에는 아버지가 소피를 바라보는 시각을 줘서 관객을 한 순간에 무너지게 만드는 거죠. 그래서 되게 정교하게 감정을 잘 쌓아가면서 무너뜨리기도 하고 이런 것들을 잘 해내는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전여빈 : 저는 침대에서 일어난 성인이 된 소피 얼굴을 클로즈업 하는 것으로 이 영화가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영화의 문을 닫는 얼굴은 아버지의 얼굴이에요. 마지막에 Queen<Under Pressure> 노래가 나올 때 클럽 안에서의 춤추는 아버지의 모습은 몸부림치는 어떤 사투나 절규 같아 보여요. 그리고 음악에 정신없이 몸을 맡기는 아빠를 어떻게든 찾아내서 소피가 끌어안으려고 하는 게 보였거든요. 감독의 인터뷰를 찾아봤어요. 감독이 원래는 그 장면에 Queen<Under Pressure>를 넣을 생각이 없었대요. 처음에는 <Under Pressure> 가사 내용을 모르고 넣어봤다가 가사 내용을 보고 자기가 너무 깜짝 놀랐다는 거예요. 모든 것이 맞아떨어진 그 순간이 너무나 절묘하면서도 영화적이면서 운명처럼 느껴졌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그 장면을 너무 사랑하거든요. 아버지이면서 내가 사랑했던 존재이지만 지난날에 안아주지 못했던 그 존재에 대해서 뭔가를 크게 외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화정 : , 맞아요. 어릴 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 아버지를 그 당시 아버지의 나이가 돼서야 다시 바라보게 되는 그런 구조를 가진 영화인 것 같아요. 우리는 엄마, 아빠를 대명사로만 항상 불렀잖아요. 엄마나 아빠의 이름으로 불렀던 적이 없는데, 그 사람들이 알고 보니까 각자의 이름으로 존재해 왔던 거죠. 내가 그들의 나이가 되어보니까 그들이 겪었던 감정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근데 우리가 영화를 볼 때와 다르게 배우님은 영화의 제작 환경이나 연출 방식 안에서 배우들이 어떻게 연기했을지 되게 유심하게 봤을 것 같거든요. 극 중 맡은 역할 중에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전여빈 : 저는 폴 메스칼의 아버지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폴 메스칼은 정말 놀라운 배우인 것 같아요. 평상시의 모습이랑 작중 인물이 됐을 때와 그 온도 차이가 되게 선명하게 달라요. 저는 영어권의 사람이 아닌지라 그 사람이 화술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런 건 잘 몰라요. 그렇지만 같은 인간으로서 느껴지는 건 있잖아요. 그 사람의 눈빛을 느끼고 어떤 몸짓을 느끼는 것처럼. 이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는 모호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미지 위주의 나열들이 너무 많으니까. 근데 찾아보니까 인터뷰인지 글귀에서인 폴 메스칼이 <애프터썬> 대본을 받자마자 너무 하고 싶었다고, 이 영화는 무조건 꼭 해야 된다라는 확신을 가졌다고 하는데 그 부분에 있어서도 놀라웠어요. 볼 수만 있다면 대본을 너무 보고 싶고. 궁금해요. 어떻게 쓰여 있었을지. 왜냐면 글이 영상으로 옮겨지는 건 너무나 다른 작업이거든요. 배역을 어떤 배우가 맡았느냐에 따라서도 너무 많이 달라져요. 어떤 상대방을 만났느냐에 따라서도. 그래서 그게 좀 궁금했고. 만약 샬롯 웰스 감독님이 이 한국에 계셨다? 그러면 바로 찾아갑니다. (웃음) 이제 아까 저희가 말했던 것처럼 관객분들도 영화를 어떻게 보셨는지 좀 들어보고 싶기도 해요. 어떤 장면이 좋았는지, 감상평도 좋고요.


이화정 : , 질문도 하셔도 돼요.. 그러면 마이크를 넘겨 드릴게요.

 

관객 1 : 안녕하세요. 일단 저도 신영극장을 굉장히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 자리에 있다는 게 너무나도 기쁜 일이라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소원 중에 하나였는데 전여빈 배우님과 이렇게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는 말씀 전달드리고 싶었고요. (웃음) 저도 이 영화가 저희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였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초반에 소피가 침대에 누워서 자는데 손이 다친 캘럼이 아이의 신발을 풀어주고 편안하게 잘 수 있도록 해주는 장면인데요. 제가 어렸을 때 안경을 쓰고 잘 때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안경을 벗겨주셨거든요. 그게 되게 겹쳐지는 거예요. 그래서 배우님도 자신을 보듬어주었던 어른들의 기억이 혹시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전여빈 : 너무 많죠. 제가 여지껏 잘 자랄 수 있었던 건 그런 어른들의 보호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중에서 가장 떠오르는 기억은 할머니. 제가 어렸을 때 과자를 너무 좋아했어요. 지금도 좋아하지만. 아침에 눈 뜨자마자 과자를 먹고 싶다고 할머니한테 말을 해요. 그럼 할머니가 아침부터 과자를 사러 슈퍼에 가셨어요. 어떤 특정한 순간이나 구체적인 행동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냥 느껴졌어요. 할머니가 나를 온몸으로 지켜주고 있다는 걸. 이건 갑자기 불현듯 떠오른 건데 제가 어렸을 적에 몸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게 되었어요. 그걸 먹고 거의 졸도하기 직전이었고 열이 엄청 심하게 올랐어요. 병원에 가려고 엄마는 운전을 하고 아빠가 저를 안고 물수건을 계속 얹어주면서 괜찮다고 했던 게 생각이 나네요. 사실 그 음식은 아버지가 주셨거든요. (웃음) 굉장히 미안해하시면서 열을 계속 내려주시고 달래주셨던 게 생각이 나네요.

 

이화정 : 어른이라고 해도 모든 것들에 대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니까. 얼마나 놀라셨겠어요. 관객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아버지와의 기억들도 떠오르고 좀 미숙했던 우리 엄마 아빠 모습들도 떠오르는 것 같아요. 또 손 들어주시면 또 마이크 드릴게요

관객 2 : 저는 질문은 아니고 그냥 제가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을 말씀드리려고 하는데요. 영화를 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아빠가 화면에 나올 때마다 왜 저렇게 슬퍼 보이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아빠와 함께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아빠가 잘 받아주지 않거나 거절할 때 느끼는 소피의 감정이 와닿은 것 같아요. 아빠는 왜 저럴까? 아빠의 감정이 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빠의 표정을 볼 때마다 슬퍼 보인다고 느꼈을 것 같아요. 저도 어렸을 적에 가족들이랑 되게 즐겁게 보내고 있었어요. 제가 신나게 아빠한테 무슨 말을 했는데 아빠의 얼굴은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았거든요. 근데 아빠한테는 웃지 않고 왜 슬퍼 보이냐고 물어볼 수는 없었어요. 지금도 그 기억이 선명하게 나요. 그런 기억들을 감독이 떠올려 보라고 이 영화를 만든 게 아닌가 싶었어요.

이화정 : 모든 이들에게 각자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기억의 입구를 열어주는 영화이기도 하죠. <애프터썬>의 아버지는 확실하게 우울증 진단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TV 근처에 명상 책이 올려져 있잖아요. 그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지금 막 노력 중인 것 같아요. 그리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고 스코틀랜드에서 런던으로 가려는 의지도 보이고요. 그런 복합적인 상황으로 인해 아이의 입장에서 아버지라는 인물이 조금 혼란스럽게 보였을 것 같아요.

전여빈 : <애프터썬>은 아버지가 우울증이라고 느낄 수 있는 구조의 영화이긴 해요. 영화 후기를 찾아봐도 아빠의 상태를 우울증이라고 많이 얘기하더라고요. 근데 저는 그게 너무 조심스러운 거예요. 영화 속 아버지의 상태를 우울증이라고 단언하기가 싫더라고요. 왜냐하면 사람은 너무나 다양한 레이어의 감정을 갖고 있고, 기질도 다양하고 또 극복해 내는 방법도 다 달라요. 즐거움을 표현하는 방식도 다르고. 저는 스크린 안에서 사는 사람이라 그런지, 아직까지도 캘럼을 이해하고 싶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그 사람이 가진 고유한 템포와 에너지를 저는 인정해주고 싶은 거예요. 어떤 상태에 처했다고 강요를 하고 싶지 않고, 그냥 그 사람이 처한 상태 그대로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 들더라고요.

 

이화정 : 제가 좀 섣불리 단언을 했네요. (웃음) 확실히 아빠는 남 앞에서 무대에 서서 노래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군중에 섞여서 춤을 출 수는 있지만 나서는 것에는 좀 익숙지 않은 사람인 것은 분명한 것 같아요.

 

전여빈 : 소피가 혼자 무대에 나가서 부르는 노래가 R.E.M<Losing my Religion>라는 곡인데 그 노래가 소피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해 주는 것 같아요. 아빠한테 하고 싶은 말이었나 봐요.

 

이화정 : 음악을 잘 쓰는 감독들이 영화도 잘 만들더라고요. 노래의 가사를 곱씹을수록 인물의 감정이 잘 전달되는 영화인 것 같아요. 그러면 또 다른 분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관객 3 : 마지막 장면에서 아버지가 까만 문으로 들어갈 때 돌아가신 건가? 아버지를 영영 볼 수 없게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캘럼과 소피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건지 아니면 정말 생사가 갈린 건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뭔가 같이 하고 있을 때를 기록한 테이프가 있고, 저장된 기억이라고 할지라도 다른 곳에 떨어져 있지만 같은 태양을 바라보면서 그 기억을 떠올리며 살아간다면 계속해서 함께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화정 : 관객분 말씀하신 것처럼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이 영화를 오래 기억에 남게 해주는 장치인 것 같아요. 보통은 캠코더에 담긴 아버지의 옛날 모습이 나온다면 현재의 아버지 모습도 나오기 마련이거든요. 현재의 아버지를 등장시키지 않은 게 이 영화의 좋은 장치로 활용된 것 같아요. 관객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더 많이 남겨준 영리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버지가 어떻게 됐을지는 모르지만 같은 태양 아래서 잘 살고 있기만을 바라게 되는 것 같아요. 질문을 하나 더 받을까요. 그러면 마지막 질문을 받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관객 4 : 안녕하세요, 전여빈 선배님. 저는 강릉여고 재학 중인 학생인데요. 소피가 아버지랑 단둘이 여행을 떠나는 내용의 영화잖아요. 저희 가족 엄마 아빠 동생 이렇게 넷이서 여행을 갔을 때 화기애애하다가 저와 아빠만 단둘이 있었던 적이 있거든요. 그때 아빠랑 한마디도 안 하고 밥만 먹고 나왔는데. (웃음) 아버지랑 둘이서 여행을 가는 소피가 되게 용감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아빠랑 단 둘이 여행을 다닐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전여빈 : 본인 마음속에 이제부터 퀘스쳔이 생긴 거잖아요. 그러면 앞으로 시행만 하시면 될 것 같은데요. 근데 꼭 단둘이 안 해도 되지 않을까요. 4명이서 시작해 봐도 되고 일단은 어디 멀리 여행을 간다기보다는 아빠랑 카페를 가신다든가 같이 신영극장에 영화를 보러 가는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까요. 가족이라는 게 같이 보낸 시간이 세월이 쌓인다고 해서 저절로 친해지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가족이 너무 당연한 관계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노력을 잘 안 해요. 우리는 가족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데 시간을 많이 할애한단 말이에요.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너무 애쓰고 집에 온단 말이에요. 그럼 집에 왔을 때는 에너지가 모두 다 소진되어 있어요.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자녀들은 자녀대로. 저도 그런 거에 너무 서툰 사람이었어요. 근데 어느 순간부터는 모든 관계가 노력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가족도 그렇고 친구도 그렇고 연인도 그렇고 동료도 그렇고. 당연한 관계라는 건 없는 것 같아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내가 알지 못한 사이에 관계의 균열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관계에 집착하거나 모든 걸 애쓰라는 건 아니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노력 정도는 있잖아요. 그걸 정말 공유하고 싶은 사람과 함께 노력하는 건 의미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이화정 : 너무 좋은 얘기인 것 같은데요. 저희 엄마한테 제일 잘하는 사람은 제 친구고 그 친구 엄마한테 잘하는 사람은 저거든요. 왜 우리는 우리 엄마, 아빠한테는 잘 못하게 될까? 관계에 있어 유독 가족한테는 그 노력을 전혀 안 해요. 늘 옆에 있다고 생각을 하고 그냥 존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별다르게 소중하다는 걸 서로 일깨우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애프터썬>이 이렇게나 가족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영화였네요.

 

전여빈 : 오늘 신영극장을 부탁해라는 캠페인으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요. 후원도 너무나 감사하지만 저희가 가장 바라는 것은 신영극장에 자주 오셔서 영화를 즐겨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른 극장도 많지만 우리 신영극장을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얘기 또 한 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박수)

 

이화정 : 오늘 <애프터썬> 전여빈 배우랑 보면서 이 공간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이었고요. 전여빈 배우의 작품을 신영극장에서 상영할 때 여러분들 다시 찾아주셔서 만석 채워주세요. <신영극장을 부탁해> 캠페인은 계속 진행됩니다. 다른 기획전도 관심 가져주시고 찾아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남은 주말 즐거운 시간이 되기를 바라면서 저희는 마치도록 할게요. 너무 감사합니다.

 

전여빈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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