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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턴 | 정관조 감독 초청

CINE TALK 씨네 토크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11. 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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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턴> 씨네토크

/2022.09.04.

 

진행: 김영우 프로그래머

초청: 정관조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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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우 : 폭풍을 앞두고 굉장히 많은 분들이 오셨어요. 감독님도 강릉에서 처음 관객분들 만나는 걸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감독님 모셔볼까요. (박수) 감독님, 오랜만에 봬요. 제가 방금 말씀드렸던 것처럼 감독님이 강릉 극장에서 관객들 만나는 거는 처음이신가요?

 

정관조 : , 처음입니다.

 

김영우 : 관객분들에게 인사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정관조 : 비도 오는데 와주셔서 감사하고, 영화가 괜찮았나요?

 

(관객 박수)

 

김영우 : 제가 감독님하고 영화에 관한 얘기를 하고 나서 중간중간, 저희 이야기하는 뒷부분에 제가 질문할 수 있는 시간도 따로 마련해 드릴게요. 오늘 처음 보시는 분도 계시겠고 아니면 예전에 국내에서도 그렇고 해외에서도 영화제에서는 공개가 좀 되었어요. 영화 촬영도 오래 하셨고 제작도 오래 하셨지만, 영화제 공개되고 나서 실제 극장 개봉까지도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요즘 극장을 통해서 관객들을 만나고 있는데 이렇게 본인의 작업들이 TV나 다른 플랫폼을 통해서 공개되어 관객들을 만나는 것과 이렇게 극장을 통해서 관객들을 만나는 게 어떤 차이들이 있는지는 개인적으로 좀 궁금해요. 요즘 이렇게 개봉 때문에 예전보다 많이 바쁘게 여러분들 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나고 계시는데요.

 

정관조 :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이제 이런 길이의 작품을 TV에서 소비하기는 좀 어렵고, 그래서 이제 극장 개봉을 같이 하게 됐는데 아무래도 음악이 많이 들어있다 보니 사운드나 이렇게 커다란 화면에서 느낄 수 있는 현실감 같은 것들이 가정에서 상영됐을 때보다 조금 더 장점이 있지 않나 싶어요.

 

김영우 : 영화 보면 영화 속에 담겨 있는 시간이 굉장히 길어요. 2007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굉장히 오랫동안 이 가족을 따라다니면서 카메라에 담아 왔구나. 가족들 그러니까 성호 씨, 어머니 민서 님을 만나게 된, 최초로 좀 돌아가 보면 작업의 시작은 SBS 스페셜 방송 때문에 시작된 건가요?

 

정관조 : 처음에 이 가족들을 만나게 된 건 다른 방송이었고요. 2008년에 시작을 했습니다. 방송사의 다른 다큐를 하면서 처음에 가족을 만났고요. 그다음에 촬영을 안 하고 있다가 2013년에 다시 만나서 둘째 건기 씨가 좀 어려운 생활을 겪고 있었고. 성호 씨랑 엄마는 똑같이 계속 음악을 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그런 모습이 있었기 때문에, 그 준비하는 과정을 조금 더 찍어보자 이런 생각을 해서... 그렇다고 해서 11년까지 갈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 했는데요. 아마 2~3년 하면 끝나겠지 했는데, 그게 내 마음대로 안 되더라고요. 저는 방송을 하던 방송PD였기 때문에, 영화 쪽에서 받을 수 있는 펀드가 없었어요. 방송 쪽에서 하는 펀드들은 조건이 있었습니다. 방송을 꼭 해야 한다. 그래서 1, 2부 내용을 TV에 공개한 게 SBS 스페셜이었습니다.

 

김영우 : 감독님이 내 마음대로 안 되더라고요하는 이런 지점들이 개인적으로는 좀 궁금한 점이 있어요. 이게 이렇게 오랫동안 가족의 이야기를 계속 자꾸 생각나게 하고, 그리고 어떻게 좀 이어가볼까 생각하게 만드는 어떤 그런 지점들. 그래서 이 가족과 감독님이 이렇게 10년 넘게 계속 연락이 되고 계속 촬영을 하고 만들어나가는 어떤 힘? 단어가 저도 생각이 좀 안 나는데,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요.

 

정관조 : 저는 이제 방송에서 휴먼 다큐멘터리, 사람 이야기를 쭉 하던 사람이고요. 그러다 보니까 아무래도 그동안에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근데 제가 성호 씨를 만나기 전에 하던 휴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들은 조금 더 어려운 분들의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사례를 가진 분이 있었어요. 22살의 장애인이신데 말도 어눌하고 이제 다리도 한쪽을 절고. 항상 무언가를 물어보면 대답이 나오기까지 한 5분 이상 걸리는 분이 있었는데, 그 분의 사연이 조금 기구해요.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아버지가 어머니가 바람을 피운다는 의심을 해서 어머니를 살해하고, 딸을 벽에다가 던져서 2년 동안 혼수상태에 있다가 깨어났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아버지가 교도소에 가서 살인에 방화에 상해에 그런 여러 죄목으로 처음에 아마 사형을 받았을 거예요. 그다음에 무기징역, 그러다가 이제 17년형으로 감형을 받고. 이제 퇴소가 한 1년인가 2년인가 남았을 시점에 이 분 기사가 났어요. 아버지를 용서한다고 하면서 해마다 아버지를 찾아가고 편지를 써요. 그런 마음이 너무나 뭐라고 할까. 복잡하다고 해야 할까. 이 분을 굉장히 어려운 과정 끝에 섭외해서 촬영을 하게 됐는데, 촬영하면서 많이 친해졌습니다. 제가 그런 걸 뭐라고 했어요. 왜 아버지를 용서하냐. 나 같으면 도저히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다. 그런데 아버지가 그다음 해에 나오면 아버지랑 같이 살 거래요.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인 거죠. 누가 시켜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랬더니 말하기를, 피디님은 평생을 고아로 살아본 적이 있냐고. 내 곁에 아무도 없다는 게 무엇인지 아냐고. 그런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아버지는 교도소에서 살다가 출소를 몇 개월 앞두고 심장마비로 사망을 해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 따님이 아버지를 화장해서 삼천포 앞바다에 뿌리고 왔다고 해요. 그런 생각을 했어요. 약간 세상에 용서받을 수 없는 영혼이라는 게 있을 수 있을까. 그런 험악한 이야기를 거의 두 달에 한 번씩 매번 촬영하다 보니까 많이 힘들었습니다. 마음속으로 지치고 매일 술을 안 먹으면 잠을 잘 수 없을 지경으로. 그걸 또 일이라고 해야 하니까. 거기다 카메라를 대고 물어보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하는 과정이 있었는데, 성호 씨를 만났어요. 음악을 듣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성호 씨는 감정이 없어요. 자기 감정을 음악에 표현을 잘 안 합니다. 그런 감정이 없는 상태라는 게 그렇게 위안을 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영화에서도 슈만의 트로이메라이가 나오는데 이라는 곡이고요. 본인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까 여기 앉아서 봤는데 편안하고 되게 좋았습니다. 성호 씨 가족을 촬영할 수 있었던 거는 바로 그런 거 아닐까요. 음악이 이 가족을 하나로 묶어줬듯이 저도 성호 씨가 가지고 있는 음악의 힘에 많이 끌려서 오랫동안 촬영을 했던 거 같습니다.

 

김영우 : 조금 비슷한 질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지만 이 세 명의 가족. 그러니까 성호, 건기, 엄마 이렇게 3명의 주인공을 두고 어떤 입장에 서냐에 따라서 서사가 좀 달라지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영화의 중심 자체는 우리 성호 씨이기는 하지만, 감독님이 말씀하셨던 그런 지점에서 감독님이 성호라는 인물에 공감 이런 것들을 좀 하셨는지. 실제 영화 속에서 그런 순간도 좀 있었던 것 같긴 한데, 감독님이 성호라는 인물과 오랫동안 쌓아온 관계들로 실제 두 사람 사이에서 소통이 일어나는 가능성이 있었을까요?

 

정관조 : 소통은 전혀 안 됩니다. 제가 성호 씨의 음악의 힘에 대해서 많이 알고 싶었지만 단 0.1%도 알게 된 건 없는 것 같아요. 알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불가능했습니다. 소통이라는 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어제도 일을 하면서 만났는데, 역시 저는 그냥 길가에 있는 나무 한 그루와 똑같이 취급당하는 그런 느낌? 제가 생각했을 때 음악을 하는 건기 씨랑만 했을 것 같고. 엄마랑도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게 슬픈 부분이에요. 그게 엄마를 운명적인 소외의 길로 이끌어가는 절망적인 모습이거든요. 아마 그래서 관객 여러분들도 결코 성호 씨와는 소통할 수가 없습니다. 그 마음속이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 가족의 운명적인 소외라는 것에 접근을 하기 위해서는 건기 씨가 있어야 하는 거죠. 건기 씨를 통해서 우리가 그것이 뭔지, 그걸 우리가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관객 여러분 대부분 아마 건기 씨의 마음에 동조하면서 보셨을 거예요.

 

김영우 : 건기 씨한테 감정이 좀 많이 이입되기는 하더라고요. 근데 또 다른 주인공인 엄마, 민서 님의 입장에서. 사실 제목이 이제 우리가 녹턴-야상곡 이렇게 이야기된 게 결국은 엄마의 어떤 느낌을 좀 많이 받아서요. 실제 대사로도 나오고. 그래서 녹턴이라는 음악이 엄마에게 가지는 어떤 특별한 어떤 그런 지점들이 좀 있을 것 같긴 한데요. 그 부분에 대한 설명들은 영화에 배경으로 좀 깔리기는 하지만, 굉장히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아들 둘 다 음악을 시켜요. 건기 씨는 자연스럽게 (음악을) 포기하는 과정으로 가게 되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두 아들을 음악을 계속 시키고, 그리고 성호에게 계속 음악을 하도록 하는 어떤 엄마만의 특별한 이유 동기 같은 게 좀 있었을까요.

 

정관조 : (엄마는) 건기 씨가 음악을 하기를 바라지는 않았죠. 엄마는 웬만하면 그만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하고 계셨고. 건기 씨는 본인이 좋아서 음악을 한 거고, 음악을 붙들고 가족에게로 계속 온 거죠, 건기 씨 입장에서는. 왜냐하면 엄마는 건기는 일찍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하고, 네 앞가림을 네가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음악으로 해서는, 그 실력으로는 앞가림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봤습니다. 엄마가 성호 씨에게 음악을 시키는 거는 성호 씨가 잘 한다고 (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어떤 사람이 무언가를 잘한다고 하는 거가 단 한 가지라도 있다면, 과연 어느 엄마가 그걸 포기를 할 것인가. 그리고 그 음악이라고 하는 것이 사람들한테 인정을 받고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고. 성호 씨는 이제 화면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여기에 장애인분들도 많이 와 계신데, 사실 길거리를 다니고 이러면 그전에는, 특히 2008년 이전에는 안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어요. 엄마한테 왜 애를 저렇게 키웠냐. 그리고 이제 어르신들이 이제 붙잡아놓고 혼내죠. 왜 이렇게 돌아다녀. 엄마가 애를 어떻게 키웠어. 그러니까 저도 다니면서 그런 걸 많이 봤는데, 엄마는 그거를 어려서부터 저렇게 데리고 다녔으니 오죽했겠습니까. 근데 끝까지 음악을 할 수 있었던 동기는 그걸 했을 때는 박수를 받을 수가 있거든요. 인간적으로 어떤 존엄성을 얻을 수가 있었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게 아마 엄마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김영우 : 이 영화 동생인 건기 씨 입장에서 보면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이 풍부해지고 서사가 풍부해지죠. 건기 씨가 사실은 굉장히 많은 말을 하고 싶어 했을 것 같기도 하고, 관객들에게 다양한 어떤 감정의 폭을 많이 보여줘서 감독님이 이 영화를 계속 이어나가는 데 있어서 건기 씨가 굉장히 많은 역할을 했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좀 하는데, 감독님이 보실 때 건기 씨는 어떤 인물이었고 감독님은 건기와 어떤 관계까지 나아갈 수 있었는지.

 

정관조 : 힘들었습니다. 일단 뭐 누구 말을 듣는 친구는 절대 아니고요. 영화를 보면 계속 반말하잖아요. 그래서 쥐어박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주인공을 제가 때리거나 할 수는... (일동 웃음) 쉽지는 않았지만, 건기가 가지고 있는 감정이라고 하는 게 굉장히 크기 때문에 그 감정을 잘 담고 싶었고요. 그리고 건기 씨... 건기 놈이라고 해야 되는데... (일동 웃음) 항상 촬영하러 가면 없고, 또 밀라노도 그냥 간신히 쫓아가서 버스 좀 타자고 그랬는데, 타려면 타라, 그러면 어디 있는 알려줘야 하는데, 어디 있는지 알려 줘야 해? 그러고 많이 어려웠는데. (웃음) 건기 씨는 엄마를 너무너무 사랑했습니다. 늘 가족의 일원이지만 항상 가족을 그리워했어요. 그걸 느낄 수 있었으면, 엄마가 건기 씨가 가족을 그리워한다는 걸. 그런 리뷰가 있더라고요. ‘건기는 항상 가족과 함께 있었지만 한 번도 가족을 가져보지 못했다. 그런 마음이 좀 안타까웠습니다. 엄마는 본인의 인생을 그냥 성호 씨한테 다 쏟아부었기 때문에, 저는 그냥 휴머니즘이라고 판단을 했어요. 인간적인 존엄성을 찾고자 하는 어머니의 몸부림. 그 와중에서도 건기 씨가 많이 소외가 됐는데. 사실은 성호 씨는 성호 씨 스스로를 소외시켰고, 엄마는 성호 씨를 챙기면서 엄마(자신)를 소외시켰죠. 그러면서 건기 씨까지 소외가 되는. 그런 상황에 처해 있지만 절대 헤어지지 않잖아요. 저는 그게 가장 큰 부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건기 씨한테 제가 항상 그런 얘기를 해요. 엄마한테 그렇게 지랄하지 말고 좀 그냥 나가서 살아라, 안 보면 되지 않느냐 해도 기어코 (집에) 들어가서 엄마랑 싸우고 그래요. 저는 그 모습이 너무 좋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고. 많이 생각을 할 수 있다면 그런 부분이 아닐까.

 

김영우 : 사실 이렇게 감정이 드러나는 관객의 입장에서도 감정을 이렇게 느낄 수 있는 어떤 포인트들은 사실 건기 씨가 다 만들어내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방금 말씀하셨지만, 엄마랑 싸우는 상황에서 갑자기 제발 카메라 앞에서 오바 좀 하지 마이렇게 소리를 지르거나 감독님이 질문을 하시거나 이렇게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들 때문에, 그렇지 카메라가 안에 이렇게 있구나 하고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반대로 (카메라가) 가족의 일상이나 내면 가까이까지 다가가 있는 느낌이 있어요. 물론 오랫동안 촬영을 같이 하고 관계를 맺어서 만들어지는 영역도 있겠지만 사실 이게 보통 노력으로 되는 건 아닐 텐데. 그 가족들의 안쪽까지 들어가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감독님이 가족과 맺는 관계가 좀 다른 지점이 좀 있지 않았을까. 그만큼 가족들의 깊숙한 부분까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 관계는 어떻게 쭉 쌓아오고, 서로 신뢰를 쌓아왔는지.

 

정관조 : 보통의 관계는 노력을 하면 그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부분들은 있겠지만 의도적으로 그 관계를 쌓으려고 노력을 하지는 않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왜냐하면 저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이 저의 직업이니까, 제가 갈 수 있는 한계점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느 선 이상을 넘어서면 그것은 제가 개입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런 한계선이 있다고 판단을 하고. 촬영하는 데 있어서 어떤 필요한 부분들이 분명히 있겠죠. 제가 카메라를 들고 뭔가를 찍어야 하는 상황에서 찍지 마, 찍지 마세요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미리 미리 준비를 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어떠한 일이 있든지 간에 저는 카메라를 든다는 걸 항상 보여주죠. 무슨 일이 있어도 카메라를 들고 있어야 되는 것이고. 그래야지 어떤 무슨 상황이 닥쳤을 때 그것이 진실성을 갖게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꾸며져 있는 것들을 이분들이 보여주기 시작을 하면 영화가 진실성을 잃게 되잖아요. 그래서 늘 옆에 있으려고 그랬습니다. 카메라가 있다는 걸 이분들이 알아야 돼요. 그래서 카메라를 매달아 놓거나 숨겨놓거나 하지 않고. 그래서 싸우고 있는 장면에서 일부러 어머니 옆으로 갔습니다. 왜냐하면 알고도 어떤 모습을, 그런 행동을 할 수가 있어야 되니까요. 그래서 카메라 옆에 있기 때문에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분들은 보여주시지 않으면 돼요. 제가 무언의 약속을 하는 거죠. 그래서 건기 씨가 그 부분을 아주 잘 표현을 했죠. 카메라 앞에서 오버하지 말라고. 그건 일종의 테크닉도 아니고 철학도 아니고. 하지만 이거는 저의 일이니까. 이 무슨 일이 벌어졌는데 제가 촬영을 하지 않는다면 저는 프로가 아니잖아요. 무슨 일이 있을 때 저는 촬영을 해야 되는 사람입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김영우 : 영화 중간쯤 가다가 갑자기 주변을 배회하던 건기 씨가 영화의 한 가운데로 들어오면서 건기 씨와 선호 씨의 여정으로 영화가 방향을 틀게 돼요. 러시아를 가게 되면서. 제가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지점들이 몇 가지가 있는데, 좀 편하게 여쭤보면, 건기 씨가 코인 이야기를 해요. 금화 10개를 넣었는데~와 같이 투자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이 부분이 두 번 반복되고 갑자기 (건기 씨가) 러시아를 따라가게 되는 장면인데, 이 장면은 설명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갑자기 주변을 돌던 건기 씨가 두 번의 인터뷰 대사를 찍고 러시아를 다시 따라가게 되는 과정이 있어요.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갑자기 이 둘의 관계가 영화의 중심 관계로 바뀌게 되고, 이 관계가 형에 대해서 어떤 가능성을, 그러니까 정말 투자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 건지 아니면 어떤 계기들을 통해서 이 두 명이 같이 러시아 공연을 하게 되는 건지.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개인적으로는 궁금했어요. 그 장면은 되게 좀 특이하게 구성을 좀 하셨거든요.

 

정관조 : 그 사이에는 이제 성호 씨의 첫 번째 연주회가 있었죠. 첫 번째 연주회를 통해서 가능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긴 세월이 지나갔잖아요. 건기가 이제 어렸을 때부터 봐왔기 때문에 건기 씨한테 가장 중요한 부분이 은성호가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였거든요. 코인이라고 하는 게 비트코인이 아니라 카지노 배팅할 때 넣는 건데, 엄마가 이미 넣을 만큼 넣었고. 그래서 엄마가 넣을 만큼 넣었을 때 어떤 결과물이 조금 보이기 시작을 한다고 생각을 했어요. 건기 씨가 그 전에도 계속 해외 출장을 다니면서 가이드로 일하지 않습니까. 형을 데리고 다니면서 그런 연주회 같은 걸 할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부수입을 얻으려고 했죠. 자기가 하는 일 말고 성당 앞에서 버스킹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성호 씨의 첫 번째 연주회를 보고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똑같은 인터뷰에 뒤에 자기가 하겠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그래서 앞뒤로 배치가 된 거죠. 건기 씨가 가장 크게 성호 씨가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 건 뭐였을까요. 바로 저죠. (웃음) 제가 계속 투자하고 있지 않습니까. 영화에 계속 투자하고 있고, 그리고 TV에 나왔잖아요. TV에 성호 씨가 나오게 되고, 뭔가 되겠구나.

 

김영우 : 본인이 내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구나 느낀 지점이 있었을 거 같아요.

 

정관조 : 본인이 주인공이라고 느낀 점이 아니라 성호 씨한테 계속 엄마도 투자를 하는데, 저도 같이 투자하고 있잖아요. 계속 가고 있으니까 이건 되는 건가 (하고).

 

김영우 : 제가 궁금해서 질문 한 가지만 좀 더 드리고, 여러분들에게도 질문 기회 드릴게요. 러시아를 갔을 때 제가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봤던 장면이 이제 둘이 버스를 타고 들어갈 때? 건호 씨가 무시하고 혼자서 성호 씨가 이렇게 버스에서 이렇게 하는데 감독님만 따라가시고. 이제 성호 씨가 혼자서 앞에 있는 카메라를 보면서 불안해하는 눈빛이 좀 느껴지는데, 그 장면을 되게 오래 찍으셨어요. 버스 안 장면. 혹시 기억나세요. 둘이 같이 있고, “까불지 마대사하고. 건기 씨는 음악을 듣고 무시하고 있고. 성호 씨가 카메라를 계속 이렇게 바라보는 상호 씨의 되게 불안해하는 장면이 있어요.

 

정관조 : 카메라를 보지는 않아요.

 

김영우 : 카메라를 보지는 않지만, 성호 씨의 모습을 되게 오랫동안 담아내거든요. 보는 제가 불안해 했겠지만 그 장면이 굉장히 좀 생각보다 길어서 그 순간은 감독님이 어떤 의도로 가셨는지가 되게 궁금했어요. 버스 안에서의 장면.

 

정관조 : 무슨 의도라는 건 사실 없고, 저는 그것을 찍고 의미는 나중에 발견해요. 모든 장면이 그렇게 찍혀 있어요. 2008년도에 지하철에서 성호 씨가 여성분들 쳐다보고 게임기 쳐다보고 그러고 나중에는 책도 뺏으려다가 엄마한테 혼나고 경찰 안 잡히겠습니다하고. 그날은 테이프가 9시간 분량이 찍혀 있어요. 제가 일을 15시간을 했더라고요. 그러면서 테이프를 9개를 건졌는데 정말 나중에는 너무 어깨가 아파서 진짜 죽는 줄 알았어요. 허리가 아프고 어깨가 아프고. 어떤 관객분이 지난주에 여쭤보시더라구요. 더치 앵글을 쓰신 이유가 뭡니까? 더치 앵글이 뭔가요? 이렇게 인물의 불안 표현하려고 이렇게 카메라를 흔들고... 제가 어깨가 아파서 그렇게 촬영이 됩니다. (일동 웃음) 그날도 아마 테이프가 한 6시간 분량이 찍혔을 건데 어떤 의도를 가지고 개입을 하게 되면, 촬영을 하게 되면, 그게 의도적으로 편집이 되고, 그러다 보면 출연자가 어떤 의도를 알게 되고, 바로 관객이 그 의도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전부 다 피할 수는 없지만 다큐를 하면서는 항상 그런 부분들을 피하려고 노력을 해요. 그래서 사실은 인터뷰도 많이 하지를 않았어요. 제가 인터뷰를 하게 되면 질문한 사람의 의도를 알게 됩니다. 인터뷰라는 걸 늘 하다 보니까 어떤 의도로 질문을 하는지를 그분들이 다 아시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잘 안 물어보려고 해요. 특히 이런 휴먼 다큐에서는. 그거는 제가 의도를 가지고 길게 찍으려고 했다기보다는 그 부분이 굉장히 은성호 씨를 보여줄 수 있는, 은성호라는 사람을 알릴 수 있는, 이 영화 자체를 통해서 알릴 수 있는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장면이 아니었을까 판단을 합니다.

 

김영우 : 질문을 좀 받아볼게요. 사실 궁금한 게 많은데 제가 계속 물어볼 수 없을 것 같고요. 영화에 대한 질문도 좋고요. 질문해 주시면 저희가 선물 드립니다.

 

정관조 : 두빛나래라는 곳에서 만든 건데요. 포켓 누룽지입니다. 정말 맛있습니다. (웃음) 정말 이게 누룽지가 세상에 이렇게 맛있을 수가 없어요. 두빛나래는 발달장애인들의 공동체예요. 그래서 그분들이 만드신 겁니다. 그래서 이런 포스터도 있고 발달장애인들이 직접 만드시는 거예요. 질문을 하시면 선착분 다섯 분에게.

 

김영우 : 그러면 질문을 빨리 받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질문 있으시면 코멘트도 좋고요 고 결정은 감독님이 해주세요.

 

관객1 : 안녕하세요. 저는 삼척에서 왔고요. 저도 이렇게 이름이 민서입니다. 제가 궁금했던 건 저도 딸 둘을 저렇게 비슷하게 키웠거든요. 하나 다른 거는 이제 장애를 가졌느냐 안 가졌느냐인데. 제가 궁금한 건 저걸 보면서 장애을 가진 아이가 한 번도 행복하게 웃는 걸 못 봤어요. 그리고 건기가 얼마나 음악을 하고 싶었을까, 그 생각을 한번 해봤거든요. 그러니까 자기는 너무너무 음악을 하고 싶고, 집에 가서도 피아노 건반 건들고, 또 엄마를 너무 사랑하지만 원망할 수 없었던 그 이유를 알고 싶고요. 그리고 마지막에 형이 너무나 하나가 되는 느낌이 났다고 하셨고, 형의 표정과 동생의 표정은 정말 가장 행복한 표정이었거든요. 그래서 형과 동생이 음악으로 인해서 행복할 수 있었는지, 저는 그 점이 좀 궁금합니다.

 

정관조 : 감사합니다. 제가 대답할 수 없는... (웃음) 그거는 글쎄요. 성호 엄마가 오셨으면 대답을 하셨을 텐데. 건기 씨는 음악을 그 정도 하면 제 생각에는, 개인적인 생각에는 됐다고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음악을 전공으로 한다는 게 너무 어려운 일이고. 누구네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짜 성호 씨가 장애가 없다 하더라도 집안에서 두 명이 음악을 한다고 그러면 진짜 기둥뿌리 뽑히죠. 건기 씨는 음악을 하고 싶었겠지만, 실력이나 이런 부분에서 안 한 게 개인적으로는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들고. 안 아픈 손가락이 없죠. 딸을 둘을 키우시고, 또 아들 둘을 키우시고 그런 고백들을 상당히 많이 하셔요. 자식이 있으시면, 내가 누구한테 소홀했구나. 저도 며칠 전에 한 60이 넘어 보이는 어머님이셨는데 아버지가 너무 생각이 많이 났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아버지가 나보다 언니를 더 예뻐하셔가지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소환을 다 해내시고 그러시는데. 어쩔 수 없구나, 그런 생각을 많이 들었어요. 근데 오히려 그분은 되게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히려 원망하시는 그런 말씀이 아니더라고요. 또 아버님을 생각해내셔서... 이게 가족에게는 그런 부분들이 항상 있구나. 내가 좀 덜 받은 것, 또는 내가 좀 덜 해줘서 미안한 거. 그런 부분들이 있는데... 그래서 그런 말씀들을 상당히 많이 들었어요. 가서 집에 가서 엄마랑 이야기를 많이 했다. 집에 가서 우리 아들과 이야기를 많이 했다. 이런 말씀들을 많이 하셔서 가족끼리 서로 이렇게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건 좋은 기회가 아니지 않나 좋은 기회이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어쨌든 그분들의 마음은 제가 감히 추측해서 설명을 해드릴 수가 없어서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관객2 : 장애인인데요. 장애인들 있어요. 감사합니다. 화이팅!

 

정관조 : 감사합니다.

 

관객3 : 안녕하세요. 오늘 너무 좋은 영화 보면서 울면서 웃으면서 함께 봤고요. 저는 가톨릭 수녀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믿음이라는 것은 어떤 확신이나 어떤 신념을 믿는 것이 아니고 진리에 대해서 믿는 것이라고 우리는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 진리라는 것은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라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영화가 정말 세 가족의 연민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저는 보았습니다. 그리고 엄마와 건기가 서로 위로받고 싶고 서로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은데 소통의 방법을 몰라서, 소통의 때를 놓쳐버려서 끊임없이 서로가 주위를 돌면서 그 외로움과 그 소외가 걸리는 거예요. 서로 계속해서 다른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들이 참 크게 보여서 저한테는 굉장히 큰 울림으로 와 닿았는데요. 이 영화가 감독님이 10년이 넘는 이 긴 시간 동안 이 가족에게 화해와 치유를 주었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독님 자이신데, 정말 오랫동안 이 영화를 인내하시고 찍으셨는데 이 영화를 통해서 감독님도 어떤 삶의 성장이나 가족에 대한 새로운 성찰 같은 것들이 아마 생겼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혹시 그런 것이 있으면 나눠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관조 : 많죠. 부끄럽죠. 우리 엄마가 혼자 계신데 나는 왜 이렇게 밖에 돌아다니면서 남의 가족을 찍고 돌아다니는가. 성호 씨가 엄마만 믿고 저한테 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까불면 나도 엄마 데리고 다닌다고 했는데. 수녀님이 하시는 말씀이 사실은 제가 보여드리는 부분들이 아니고 성호 씨 가족이 보여주시는 거죠. 어떻게든 어떠한 상황이든 또는 어떠한 일이 있든 어두운 상황에서도 저 멀리 빛나는 별 하나를 보고 꿋꿋이 살아나가시지 않습니까? 저는 그 부분에서 되게 좀 이분들의 삶에서 되게 감명을 많이 받았어요. 우리가 태어난 이유도 그다음에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도 그런 게 아닌가. 우리가 그 힘 하나를 가지고 또 뚜벅뚜벅 밖에 나가서 앞으로의 삶을 더 살아나갈 수 있지 않을까. 성호 어머니는 오늘도 아마 레슨을 가셨을 거고, 내일도 연주를 할 거고, 그렇게 살아나가고 계십니다. 그래서 나도 기왕 시작을 했으니 끝까지 나가야겠다. 그런 부분들이 저한테 좀 많이 감화가 됐던 것 같고요. 굉장히 저는 존경합니다. 성호 씨 어머니, 성호 씨. 건기만 빼고요.

 

관객4 : 저는 제가 감동받았고 깨달았던 거를 두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의 배경도 역시 성호 엄마처럼 저는 엄마가 계속 음악을 하기를 원했고 저는 도망 다녔고 제 동생은 하고 싶어도 안 시켰어요. 그런 경험이 있고. 현재는 제가 카톨릭관동대학교 서비스 대학 언어재활학과의 삼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그러면서 제가 처음으로 자폐아들과 지적장애 아동들을 가르치고 있거든요. 그러면서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나는 이 아이들의 마음으로 들어가서 그 아이의 마음을 좀 읽어주고 싶고, 그 빛을 좀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성호한테서 그거 발견 못 하셨다고 그랬잖아요. 그럼 안 되는 부분인가 하면서도 저는 계속 도전을 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함께 만들어 가시는 감독님께 존경과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제가 가는 봉사의 길에, 저는 앞으로 계속해서 이 아이들과 함께 걸어갈 거거든요. 언어재활을 통해서. 언어재활뿐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활동들과 아이들과의 만남을. 그래서 저는 오늘 정말 오고 싶었었고 또 학생들한테 전체적으로 꼭 이걸 볼 수 있도록 권할 겁니다. 정말 너무나 좋은 시간, 오랜 시간 동안에 열심히 저희들에게 희망이 되고 또 우리 아이들에게. 항상 얘네들은 아이들이잖아요. 너무 순수한 아이들에게 하나의 희망의 빛이 이 세상에 이렇게 번져나가고 있다는 이런 생각이 들어서 꼭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일동 박수)

 

정관조 : 감사합니다. 가장 감동 깊은 말씀은 다 같이 보시겠다고 하는 부분. (일동 웃음)

 

김영우 :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해 주시면 계속 상영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관객5 : 궁금한 게 있는데요. 제가 처음에 영화를 봤는데요. 장애인 친구가, 성호가 어떻게 해서 처음에 악기를 연주하게 됐나요.

 

정관조 : 성호 씨는 아주 어려서부터 음악을 했고요. 일단 동네에서 피아노 학원을 다니는데 굉장히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피아노 학원에서 배운 거 집에 와서 치고 그러면서 그리고 이렇게 한 번 들은 음악이 있으면 그거를 또 잘 따라서 (쳤다고 합니다). TV에서 무슨 음악이 나왔으면 그것도 치고 그래서 음악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았죠. 그리고 암기력도 굉장히 좋아요. 그래서 악보를 찾고 막 그러는데 그거는 실수할까 봐 그런 거고. 웬만한 곡들은 그냥 다 암기해서 치고, 거의 모든 곡을 금방 잘 외워요. 한 두세 번만 연습하면 그냥 통째로 다 말고 조금 탁월한 능력은 좀 있습니다.

 

관객5 : 그러면 저도 그렇게 음악을 좋아하는데, 그런 식이라니 마음이 아프네요.

 

정관조 : 음악을 좋아하죠. 그런 생각이 들어요. 천재냐 아니냐에 대해서 어머니랑 저랑 한 번 좀 논쟁이 붙은 적이 있는데, 저는 천재라고 하고 엄마는 아니다. 내가 이렇게 온갖 걸 다 쏟아부어서 내가 만들어낸 거라고 하는데 둘 다 맞다고 생각은 들어요. 악기를 두 가지를 하잖아요. 사실 굉장히 어렵고. 또 손도 이렇게 막 되고요. 그리고 러시아에서 공연하기 전에 되게 못 부는 부분이 있었잖아요. 조가 바뀌어서. 조가 안 맞는 악보를 보고 자기가 그 조를 바꿔가지고 불었거든요. 근데 그게 바로 되기가 쉽지는 않거든요. 그런 부분들을 여러 가지 봐도 어느 정도 능력은 있겠구나. 그 엄마의 노력이 더해져서. 대답이 잘 됐나요.

 

관객6 : 반갑습니다. 동해에서 왔는데요. 개인적으로 정관조 감독님은 제가 20년 넘게 지켜 봐왔습니다. 제가 보면서 항상 느끼는 거는 꿋꿋한 인내심은 한 곳만 바라보고 가는 그 힘은 어디서 났는지 상당히 궁금하고요. 예전부터 많은 노력으로 뭔가 좀 풀리지 않을까 이런 예감을 했었는데 꼭 이번 영화가 대박이 터져서 좀 삶이 좀 풍족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일동 웃음) 친한 동생인데 하여튼 건강 잃지 말고 좋은 영화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정관조 : 감사합니다. 저의 친한 형인데요.

 

김영우 : 투자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도 우리가 나눠서.

 

정관조 : 어제 성호를 만나서 성호야 영화 망했다”, 제가 만 명 조금 안 된 것 같은데 영화 망했다그러니까 안 망했어요그러더라고요. 단 한 분이 보셔도 감동을 받으셨다고 하면 영화는 성공한 게 아니겠습니까라고 스스로 위로하고 있습니다.

 

김영우 : 워낙 베테랑이시니까 잘 하시겠지만 이렇게 이제 개봉 주 그리고 그다음 주에 극장에서 만나고 그 이후로 또 작은 영화들 만날 수 있는 방법들이 많이 있어요. 주변에 이야기 좀 해주시고, 아까 말씀하셨던 것처럼 이렇게 관심 있는 사람들하고 직접 만날 수 있는 그런 다양한 공동체 상영이나 이런 것들을 할 수 있으니까.

 

정관조 : 신영극장에 예매를 하시면 신영극장에서 계속 영화를 걸어주실 겁니다.

 

김영우 : 신영극장에서 많이 봐주시면, 더 많은 기회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우리 감독님을 쭉 한번 이렇게 밀어보는 걸로 (웃음) 투자의 가치를 확인하는 걸로 해보겠습니다.

 

관객7 : 감사합니다. 장애인 가족을 10여 년 넘게 찍는다니 정말 어려운 일이신데요. 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영화를 보면서 어머니의 교육 방식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어머니의 열정으로 인해서 한 장애인이 사회에서 기회를 얻기 위해서 어머니가 밀알이 되신 거잖아요. 그러느라고 아버지도 가시고 건기 외롭게 살고요. 그리고 10년을 넘게 찍으시면서 장애인 가족이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 복지제도도 있는데, 어떤 제도들이 어떻게 이 장애인들을 케어하면 (좋을까), 감독님이 생각하실 때 이런 제도는 꼭 있었으면 좋겠다? 장애인 하나가 사회에 남아서 사회 속으로 들어오기 위해서 이렇게 한 가정이... 성호 군은 기회를 얻었지만 모든 가족이 너무 외롭게 살았잖아요. 이거를 해결하기 위한 혹시 방안이나 제도를 생각하시는 게 있으신지 듣고 싶습니다.

 

정관조 :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이라 사실 사회를 고발하거나 어떤 제도나 대안을 만드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 제가 말씀드리기가 조금 그렇고. 제가 생각하는 거 우리 똑같이 대해주면 되거든요. 그냥 똑같이. 사실 제가 우리 선생님들이 저희한테 질문을 하셨을 때 제가 잘 못 알아듣잖아요. 제가 바로바로 알아들으면 좋겠지만 잘 못 알아들으면 사실 저는 계속 알아들을 때까지 여쭤봅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게 예의라고 생각이 들고 그분이 말씀하신 뜻을 끝까지 제가 알아듣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왜 그러냐면 제가 2006년인가 2007년에 뇌병변 장애인이 계셨어요. 촬영을 하고 있는데. 조금 어린 친구였죠. 친해져서 하는데 이렇게 얘기하는 건 그냥 저 개인적인 이야기니까 혹시 뭐 다르게 오해해서 들으시면 안 됩니다. 뇌병변 장애인이다 보니까 말을 알아듣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잘 걷지도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흉내를 내면 안 되는 거죠. 가서 말을 못 알아듣는데 제가 그냥 알아듣는 척을 했어요. “, 알았어.” 근데 이 친구가 갑자기 뭘 집어 던지고 막 너무 화를 많이 내는 겁니다. 그래서 선생님한테 여쭤봤어요. “선생님 얘 왜 이래요?” 이러니까 방금 PD님이 못 알아들으셨는데도 알아들으신 척했잖아요.” 그때 굉장히 큰 반성을 하고 많이 느꼈습니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것들을 많이 더 하면 좋겠죠. 가령 우리가 수어를 배운다든지 그런 노력을 할 수도 있고. 많이 접해보면 또 잘 들립니다. 여기 성호 씨가 하는 말 웬만한 거 다 받아 적었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알아듣기 위해서 노력하는 자세도 좀 필요하지 않을까. 그다음부터는 그 친구가 상당히 좀 힘들었습니다. 제가 왜냐하면 계속 다시 물어보고 이랬거든요. 한 마디를 더 알아듣고 한마디를 알아들을수록 그 사람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돼요. 그래서 나중에 정말 말 몇 마디 안 나와도 알아들을 수 있는 지경이 됐거든요. 저는 제도 같은 건 잘 모르고 우리가 알아들으려는 노력. 건기 씨도 그러지 않았습니까. 어디에서 들어가야 되는 걸 수차례 물어본 후에 결국 어디에서 들어가는지 알아내지 않았습니까. 그러면서 뭔가 통하는 그런 크나큰 경험을 했잖아요. 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힘드시겠죠. 여러 번 말씀하시려면 힘드시겠지만, 그런 태도를 가진다면 우리가 조금 더 같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김영우 : 감사합니다. 더 많은 이야기가 있겠지만 저희가 시간이 좀 없어서요. 영화 완성되고 나서도 기사를 검색해 보니까 작년에 콘서트도 따로 여시고 그 이후로 뭔가 계속 같이 기획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가족들의 근황이 좀 궁금하기도 하고요, 시간이 꽤 지났으니까. 작년 콘서트도 굉장히 좋은 의도로 좋은 기획을 하셨던데. 계속 이렇게 활발하게 콘서트를 하고 계신 거죠?

 

정관조 : 성호 씨가 음악을 계속하는 것이 이 작품의 본질이지 않을까. 저는 성호 씨 음악을 워낙 좋아하고, 제가 가장 찐 팬이라서 성호 씨 음악의 매력을 많은 사람들이 좀 느꼈으면 좋겠어요. 제가 느꼈던 것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해서 기획을 했고. 작년에 코로나도 심하고 그래서 많이 놀았어요. 그 모습이 조금 안타까웠고. 마침 서울시향에 계시는 바이올리니스트께서 같이 하고 싶다고 하셔서 듀엣을 했는데 성호 씨한테 많이 배웠다고 하시더라고요. 서울시향 수석이신데.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렇게 느끼는 분들이 하나하나씩 늘어나는구나. 내가 틀린 게 아니었어, 그런 생각. 그래서 잘 지내고 있고 건기 씨는 그냥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일동 웃음)

 

김영우 : 오늘 이렇게 영화 보시고 주변에 소문 좀 더 내주시고. 그래서 우리 신영극장에서도 더 상영 있으니까 좀 더 많이 볼 수 있도록 그러면, 또 감독님도 모시고 아니면 나중에 기회가 되면 우리 문제의 건기 씨까지 불렀다가 한번 질의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정관조 : 쉽지 않으실 거예요. 저도 보기가 굉장히 어려운데요. 3대가 덕을 쌓아야. (웃음)

 

김영우 : 저희가 한번 노력은 해보는 걸로. 되게 긴 시간이었는데 다시 한 번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작업 계속 이어나가고 계신 우리 감독님에게 응원의 박수 드리면서 자리 마무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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