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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소중한 사람> 리뷰 :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3. 2. 28.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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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소중한 사람>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

 

엘렌(비키 크립스)은 난치성 폐 질환으로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다. 아무도 죽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못한다. 이미 세상을 떠나 남아 있지 않은 사람이 되었거나, 아직 죽음을 겪지 않은 사람이거나 둘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 세상의 시간은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를 위해 흘러갈 뿐이다. 나는 여기에 분명히 발을 붙이고 삶의 감각을 아직 체감하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은 벌써 끝을 생각하느라 사라지고 남겨질 것들에 대해 걱정한다. 산 사람은 미안함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 임신한 것에 대해 입에 담지도 못한다. 그런 주변 사람들의 태도 때문에 엘렌은 죽음이 당장이라도 코앞까지 들이닥친 것만 같다. 아픈 엘렌 옆에는 연인 마티유(가스파르 울리엘)가 있다.

 

폐 이식 수술을 받으면 엘렌의 생존 확률이 높아진다. 마티유는 희망을 발견하지만, 엘렌은 쉽게 수술을 결정하지 못한다. 수술을 하면 엘렌이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 높아질 뿐 죽음에서 완전히 멀어졌다는 것은 아니다. 마티유가 바라는 건 엘렌과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은 것뿐이다. 마티유는 수술을 결정 못 하는 엘렌이 생의 의지를 놓아버린 것 같아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엘렌은 이식 수술을 받더라도 생과 사의 불확실한 갈림길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수술을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막으려는 마티유와 죽음에 가까워지려는 엘렌이 충돌한다. “산 사람은 죽어가는 사람을 이해하기 어렵다.

 

엘렌은 우연히 인터넷에서 시한부 삶을 담담하게 기록한 블로그를 발견한다. 죽음을 목전에 앞둔 사람에게 산 사람은 섣부른 위로를 건네곤 한다. ‘미스터라는 닉네임을 가진 벤트(비외른 플로베르그)가 쓴 글과 사진을 보면서 엘렌은 죽음에 가까워지는 시간에 동질감을 느끼고, 가본 적 없는 노르웨이를 간절히 그리워한다. 에밀리 아테프 감독은 "벤트는 어떻게 죽을지는 본인만이 결정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인물로 자유 의지를 절대적으로 신봉한다"라고 말한다. 엘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여태껏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 죽음만큼은 수술을 집행하는 의사나 살 수 있는 확률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내 손으로 결정하고 싶다. 그리고 벤트가 있는 노르웨이로 혼자 떠난다.

 

노르웨이로 떠나겠다는 엘렌을 마티유는 끝내 말리지 못한다. 마티유는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할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면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당연하다. 아픈 엘렌을 지켜주고 싶고, 최대한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은 마티유. 엘렌은 자신 때문에 마티유의 삶이 영향을 받는 것이 싫다. 하지만 마티유와 함께 꿈꾸던 미래에 이제 더 이상 자신이 없을 거라는 것도 슬프고 속상하다. 아직 서로의 곁에 있는데도 벌써 떠난 것같이 느껴진다. 벤트는 엘렌에게 죽는 사람은 당신이에요. 죽는 방식까지 남을 위할 건 없죠.”라고 말한다. 고통의 감각은 저마다 달라서, 어떤 사랑은 끝내 포개지지 못하고 평행으로 내달릴 뿐이다.

 

거대한 피오르드에 둥둥 떠다니는 작은 점,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고 발가벗은 채 헤엄치는 엘렌의 육체. 사랑하는 이의 간절한 소망도 뿌리친 채 자신이 원하는 것만 생각하기로 한 엘렌. 감독은 이 장면을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엘렌의 또 한 번의 탄생이라고 말한다. 탄생은 소멸과 맞닿아 있다. 소멸이 있어야 탄생이 있다. 죽음의 작은 점이 탄생의 씨앗으로 뒤바뀐다. 마티유도 엘렌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멀어지게 되자, 여느 때보다 가까워지는 두 사람.

 

-관객 리뷰단 장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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