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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거미> 리뷰 : 거룩을 뒤집어쓴 치졸한 살인마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3. 2. 24.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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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거미>

거룩을 뒤집어쓴 치졸한 살인마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

 

<성스러운 거미>를 통해 감독이 전하고자 했던(혹은 했을지도 모를) 메시지는 필자에게는 위와 같은 문구로 자리 잡았다. 서글프게도 혐오가 만연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에게 감독이 선사하는 이야기는 분명 비판의 시선으로 날카롭다. 동시에 어딘가 모르게 체온에 가까운 따스한 기운이 느껴진다. 따뜻한 피가 흐르고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만이 내뿜을 수 있는 양가적 상태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성스러운 거미><경계선>(2018)으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을 수상한 알리 아바시 감독의 신작으로 2000년대 초반, 실제 이란에서 벌어진 연쇄살인 사건을 바탕에 두고 있다. 20008월부터 다음 해 7월까지 마슈하드(이란의 두 번째 도시이자 시아파 무슬림의 성지(聖地)로 꼽히는)에서 16명의 성 노동자 여성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은 사이드 하네이라는 39세 남성으로 경찰에 체포된 뒤 자신은 신의 뜻으로 불경한 행위를 일삼은 이들을 심판하는 성전(聖戰)-‘지하드라고도 불리는-을 치룬 것이라고 주장했다. 해당 사건은 알리 아바시의 내면에 깊게 자리 잡아 이란을 떠나 덴마크에 정착한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감독은 살인이라는 끔찍한 범죄를 방조하고 심지어 명예거룩이라는 이름으로 추앙하는 이란 사회의 병적인 종교적 신념과 부조리에 대하여 영화를 매개로 폭로하기로 한 것이다.

 

영화의 플롯은 단순하게 비쳐진다. 영화는 크게 나누어 본다면, 여성 저널리스트 라히미(자르 아미르 에브라히미)거미로 불리우는 연쇄 살인마를 추적하는 전반부와 연쇄 살인마 사이드(메흐디 바제스타니)가 경찰에 붙잡힌 후 벌어지는 법정 안팎의 갈등을 다룬 후반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부는 추적 스릴러 장르에서 관객이 기대하는 박진감과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어두운 골목, 홀로 걷는 여인, 뒤따라오는 그림자 그리고 갑작스러운 죽음이라는 과정을 카메라는 전후방에서 배우를 따라 함께 걸으며 긴장되는 순간을 차곡차곡 담아낸다. 압권은 프롤로그에서 벌어진 이름 모를 여인의 희생에 관한 부분이다. 영화의 시작은 여인이 치장하는 모습을 비추면서 펼쳐진다. 그녀의 신체는 울긋불긋한 멍들와 생채기가 가득하다.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여인은 화려하고도 음산한 마슈하드의 밤거리에서 성매매를 한다. 일을 마친 뒤, 잠시 마약에 취해 고단한 마음을 달래는 듯 보이는 여인. 다시 그녀는 성관계를 원하는 또 다른 누군가를 따라 그의 집으로 향하는데, 그곳에서 여인은 목이 졸려 살해당한다. 비정하게 여인을 누르는 남자의 무뚝한 손 아래에서 발버둥 치는 여인의 발이 너무도 애처롭다. 이윽고 여인의 몸부림은 사그라들고 핏줄이 가득 선 그녀의 두 눈이 화면을 가득 메운다. 이렇게 영화는 살인마에게 희생된 여자의 하루를 조명함으로써 포문을 연다. 자연스레 관객은 희생자에 대한 안타까움과 동시에 범인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야기에 빠져든다.

 

그런데, 영화는 범인의 정체를 감추려 하지 않는다.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관객은 사이드라는 남성이 연쇄 살인을 일삼고 있음을 알게 된다. 더욱이 그가 건축업을 종사하며 단란한 가정을 책임지고 있으며 참전 병사로서 제대로 활약하지 못한 것에 대한 응어리가 남아있다는 것까지 사이드에 대한 많은 정보를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상 그를 추적하고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전에 전달받는다. 이러한 서사는 영화가 장르적 재미를 구사하기에 앞서 사회의 잘못된 관습과 편견을 스크린을 통해 드러내는 것에 힘을 싣고 있기 때문인다. 때문에 라히미가 누가 범인인지 찾아나서는 과정을 축조해나가는 것보다 사이드가 성 노동자 여성을 살해하는 진짜 이유를 알아내는 것에 감독의 무게가 더욱 실려 있다. 사이드는 장면 곳곳에서 사회 정화 사명을 외친다. 신의 가르침대로 살지 않는 부정한 이들로 인해 세상이 병들고 있다며 울부짖는다. 바른 세상을 위해 자신이 나서서 죄 지은 자들을 청소하겠다는 사명에 불타는 사이드의 결의에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사이드는 그저 영웅이 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치졸한 인간이다. 조수석에 앉아 전쟁이 끝난 걸 개탄하는 그의 분노에 공감하기란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다. 영웅이 되려는 방식이 살인이라니, 심지어 자신보다 약한 여성이 그 대상이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체포된 사이드가 법정에서 죄를 다투면서 관객은 더욱 아연실색한 상황을 마주한다. 살인자의 가족이라는 멍에로 주변으로부터 온갖 비난과 멸시로 고통받을 줄 알았던 사이드의 가족은 (법정 판결과는 별개로) 이웃과 지지자들로부터 응원과 격려를 받는다. 사이드의 아들 알리(마스마 탈레브)에게 너희 아버지는 옳은 일은 한 것이라며 공짜로 물건을 챙겨주는 가게 사장의 말에 도무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라히미와의 인터뷰에서 사이드의 아내 파티마(포로우잔 잠시드네자드)는 사이드가 가장으로서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에 대해 호소한다. 진심으로 남편을 옹호하는 파티마의 눈물 섞인 얼굴을 보며 안타까움 위로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임을 느낀다. 영화는 사형을 선고받은 사이드가 교수대 앞에서 말로를 맞이함으로써 끝을 맺는다. 목전에 다가온 죽음 앞에서 난장을 부리고 괴성을 지르던 사이드의 민낯보다 더욱 인상적인 건 그의 아들 알리의 변화이다. 체포된 아버지로 주눅 들어 있던 소년의 모습은 잠시였다. 누구보다 아버지의 편에 서서 그의 범죄 행위를 옹호하고 지지하는 소년의 밝게 빛나는 눈동자를 보며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이렇게 혐오와 신념이 전승되고 있음에 허망하기까지 하다. 헌데, 라히미의 캠코더에 잡힌 꼼지락대던 알리의 발가락에서 일말의 수치를 느낀 건 기분 탓일까? 자랑스레 아비의 살인과 시체 유기 과정을 재현하고는 있지만 숨길 수 없는 속내가 소년의 발가락에서 드러난 것일 수도 있다는 작디작은 가능성에 희망을 걸어보고자 한다.

 

-관객 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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