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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 리뷰 : 이 땅에서 배운 것을 지키려는 소녀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3. 2. 7.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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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

이 땅에서 배운 것을 지키려는 소녀

 

기후변화의 증후(분명히 징후가 아니라 증후!)가 일상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최근 가팔라진 기온 상승의 추세와 그로 인한 자연재해나 생태계의 변화를 전 세계적으로 빈번하게 목도하고 있으며, 삼한사온과 같이 오랜 세월 우리가 알고 있던 기후의 주기를 따지는 것이 더 이상 의미가 없을 정도로 자연 현상은 점점 혹독하고 예측 불가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인간이 만든 환경 파괴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구의 고유한 기후 변화 주기에 의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인지 현재 인간의 능력으로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자연이 손상되고 온난화가 가속되고 있다는 것에는 큰 이견이 없을 듯하다. 특히 툰드라 지역 같은 독특한 기후대에 나타나는 극적인 변화는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그곳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가 탄생하게 되지 않았을까.

 

혹한의 자연환경에서 살아온 툰드라 지역 예이츠 부족은 자연의 순리에 협응하며 순록의 피와 살로 살아왔다. 순록을 잡아 그 피를 마시기 전에 경건한 의식을 거행하는 장면에서 그들의 자연과 삶에 대한 태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사춘기를 겪는 그리샤(이윤지)처럼 이곳에도 변화의 파고가 닥쳐온다. 붉은 곰(이용녀)으로 상징되는 자연과 더불어 평온한 삶을 살고 있는 그리샤의 가족과 부족은, 이 지역 출신이지만 붉은 곰에게 자신의 가족을 잃었다고 생각하며 복수를 꿈꾸는 사냥꾼과 아예 자연을 지배할 대상으로 치부하는 연방군 대위로 인해 그들의 삶에 위협을 느낀다. 우려대로 붉은 곰은 쫓기고 상처 입으며 그를 구하고자 하는 그리샤까지 난관에 봉착한다. 이것은 마치 자본의 탐욕적이고 파괴적인 개발과 그것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시민단체들의 현실 다툼을 스크린에 투영하는 듯하다.

 

총과 차로 상징되는 문명의 이기를 앞세운 사냥꾼들은 거칠 것 없이 자연을 휘저으며 기어이 붉은 곰을 쓰러뜨리고 숲의 주인이 될 듯하고, 그에 반해서 숲과 붉은 곰은 무기력하고 곧 파괴될 것만 같이 위태롭다. 그러나, 자연이 가진 위대한 힘은 결코 악한의 탐욕에 정복되지 않고 종국엔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그 과정에서 나약하고 어린 꼬마 계집에 불과해 보이는 그리샤의 대지에 대한 사랑과 그것을 지키려는 의지가 자연의 본성을 깨우며 다시 생명의 불꽃을 지펴내는데 큰 역할을 한다. 특히, 붉은 곰과 그리샤의 대화 중 “(열매가)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이 땅의 것을 가져간 만큼 이 땅에 되갚아야 한다”, “나는 이 땅을 살아가며 이 땅에서 배운 것을 지켜 나가겠습니다. 하늘과 땅을 잇는 사람이 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붉은 곰과 그리샤의 대사는 인간과 자연의 공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깊은 울림을 만들어낸다.

 

콩쥐 팥쥐(1977)’ 이후에 우리나라에서 거의 반세기(45)만에 만들어진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평가받을 만한 영화이다. 제작에만 33개월가량 걸렸고 한 장면을 촬영하는데 평균 8시간이 소요됐다고 한다. CG를 최소화하기 위해 10개의 세트를 직접 만들어 69분의 영화를 만들어 냈다니 그 무모하리만큼 굳은 뚝심이 놀랍기만 하다. 덕분에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가득한 따뜻한 영화가 만들어졌다. 여기서 따뜻하다는 표현은 영화의 배경이 툰드라 지역이라 온통 눈보라와 설경이 주를 이룬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꽤나 낯선 일이다. 그것은 아마도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이기에 표현이 가능했던 순록이나 이끼의 부드러운 질감과 환상적인 색채를 펼치는 오로라, 그에 더해 눈의 결정체가 살포시 내려앉는 장면까지, CG로는 도무지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다움이 가득하고 전달하는 메시지 또한 따스하기 때문이리라.

 

2100년까지 탄소 배출량이 0으로 감소하더라도 툰드라의 겨우 30% 정도만 보호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를 보도한 기사를 보았다. 피땀으로 이 영화를 만든 박재범 감독은 우리 모두가 그리샤가 되어 이 지구의 본성을 되찾는 기적을 만들어 내기를 소망하지 않을까.

 

-관객 리뷰단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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