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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년의 기다림> 리뷰 : 3000년이 지나도 변함 없이 소중한 것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3. 1. 24.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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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년의 기다림>

3000년이 지나도 변함 없이 소중한 것

 

(Djin. 이드리스 엘바)이 작은 병에 갇힌 채로 3000년이나 벗어나지 못하게 된 것이 실은 사랑에서 말미암은 것이었다. 그가 흠모했던 시바 여왕이 솔로몬 왕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자 진은 사랑을 잃은 것도 모자라 좁은 황동병에 담겨진 채로 바닷속 깊이 유폐되었다. 그리고 그가 다시 자유의 몸이 되기 위해서는 병을 소유한 자의 세 가지 갈망을 충족시켜야 했다. 언뜻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해결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숙제일 듯하다. 누구든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을 단지 병을 조금 문지른 대가로 손쉽게 얻을 수 있는데 도대체 거절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게다가 소원을 이뤄주면 진 자신의 저주도 벗어나는 일이니, 요구하는 이나 그것을 들어주는 이나 어느 한 쪽도 손해 볼 것이 없는, 아니 양쪽이 모두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최고로 유쾌한 거래조건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실제로는 이 단순한 상황이 늘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 병의 주인은 파멸하고 세 가지 소원을 다 들어주지 못한 진은 다시 병 속에 갇히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한다. 그 이야기들을 가만히 보면 늘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첫 소원은 대개가 가장 절실하고 순수한 갈망을 이루는 것에 사용된다. 덕분에 그 첫 소원을 이룬 자는 더 이상 갈망할 것이 없어 보일 정도의 만족감으로 행복이 넘쳐 흐른다. 그러나, 그 행복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고 이내 더 큰 욕심이 끓어올라 탐욕에 가까이 다가간다. 어쨌든 약속은 약속이니 진의 능력으로 두 번째 소원을 이루지만 그 소원을 바랐던 자들은 더 이상 행복하긴커녕 오히려 더 큰 욕망에 괴로워하다 자멸의 길로 빠져들곤 한다. 덩달아 진도 한 가지 소원만 더 들어주면 저주에서 풀려날 수 있는 운명의 탈출구 앞에서 좌절하기를 반복한다.

 

문제는, 하필 이렇게 행운이 불운으로 바뀌는 이야기의 패턴을 누구보다 잘 꿰고 있는, 이야기에 관한 것이라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서사학자 알리테아(틸다 스윈튼)의 손에 진이 소환됐다는 것이다. 알리테아는 여러모로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서 스스로도 자신의 현재 삶에 만족하며 더 바랄 것이 전혀 없다고 아예 소원 성취의 길에 발을 떼는 것조차 거절한다. 3000년 동안 실패를 거듭해오곤 했으나 이렇게 시작조차 할 수 없는 난감한 상황은 처음인 진은 자신의 지난 일들을 늘어놓으며 알리테아가 소원을 말하기를 종용한다. 이것이 마치 진이 세헤라자데가 되어 <천일야화>를 들려주듯 알리테아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게 된 사연이다. 지금까지 늘 조연이었던 램프의 정령이 주인공이 되고 우리가 알고 있던 얘기들을 엉뚱한 상상을 덧붙여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것이 바로 이 <3000년의 기다림>이다.

 

원작 나이팅게일 눈 속의 진(The Djinn in the Nightingale’s Eye)’을 바탕으로 20년을 벼르고 별러 자신의 딸과 함께 완성했다는 이 영화는, 조지 밀러감독의 기존 작품들과 결이 다를 뿐 아니라 램프의 정령을 소재로 한 이전의 어떤 영화와도 구별된다. <매드 맥스>로 대표되는 그의 영화가 폭주하는 쾌감과 스릴의 매력을 보여줬다면 이 영화에서는 환상적이고 매혹적인 미장센과 아름다운 음악이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특히 솔로몬 왕이 악기를 연주하며 시바 여왕의 마음을 흔드는 장면은 스크린 밖의 관객조차 그 마력에 온통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여성이 영화의 이야기를 주도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진에게 소원을 비는 인물들은 모두 여성이며 진의 저주가 끝을 맺게 되는 것도 여성에 의해서다. 진의 도움으로도 자신을 속박하는 상황을 벗어나지 못했던 지난날은 그 시대를 살아낸 여성들의 아픔으로 보인다.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오른 감독이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소재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3000년의 시간 속에서도 인간에게, 심지어 정령이라 할지라도 사랑이 있어야 다른 모든 것이 빛날 수 있다는 평범하지만 불변의 진리를 다시금 확인한다.

 

-관객리뷰단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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