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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요소> 리뷰 : 작은 요소에서 희망을 발견하게 되는 영화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3. 1. 13.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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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요소>

작은 요소에서 희망을 발견하게 되는 영화

 

남편(이승훈)은 어쩔 수 없이 아내(박서은)의 집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남편은 그 집에 1원도 보태지 않았으니, 엄밀히 말해 아내의 집이 맞을 것이다. 엄마 생신 상을 손수 차려 드리려고 남편은 시장에 간다. 장을 다 보고,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하지만 이미 엄마는 형네 가족과 제주도에 있다. 엄마 집에서 자고 오려고 했던 남편은 갑자기 갈 곳이 없어졌다. 그래서 발걸음을 아내의 집으로 돌린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낯선 남자의 구두가 있다. 아내의 외도를 목격한 남편은 뒷걸음질 쳐 허겁지겁 집을 빠져나온다. <희망의 요소>는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두 부부의 일상을 다룬다.

 

둘 사이에는 대화라고 보기 어려운 말들만이 오고 간다. 부조금을 달라고 하거나, 싱크대를 고치라고 하거나, 세탁물을 부탁한다거나. 카메라는 말이 오가는 순간마저도 두 인물을 한 프레임 안에 두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을 의도적으로 차단한다. 조응하지 않는 시선은 아내가 남편을 집에 놓여있는 무생물을 대하는 태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생의 감각을 잃어가고 있는 남편에 대한 비유처럼 느껴진다. 싱크대에서 올라오는 악취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는 아내. 아내는 남편에게 냄새가 안 나냐고 물어보지만 그제야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한 남편. 남편은 자의건 타의건 집에 갇혔고, 집은 남편 몸뚱이의 일부분이 된 듯하다. 싱크대 수리를 끝내고 집 밖에서 큰 소리를 목격하고도 남편은 모른 체하고 싱크대에 코를 박고 냄새만 확인한다. 그의 주의는 오로지 아내만을 향해 있기 때문에, 바깥 세계에 대해 환기시키지 못한다.

 

남편이 가사노동을 하는 동안에도 아내는 남편과 정리할 궁리를 한다. 형태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말라비틀어진 부부의 관계는 이상의 날개속 어떤 문장을 떠오르게 한다. “우리 부부는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인 것이다. 나나 아내나 제 거동에 로직을 붙일 필요는 없다. 변해할 필요도 없다. 사실은 사실대로 오해는 오해대로 그저 끝없이 절뚝거리면서 세상을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남편은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고도, 아무런 대응도 못하고 집에서 도망친다. 아내는 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가 자괴감인지 죄책감인지 모를 눈물을 흘린다. 남편은 거리에서 버티다가 결국 자신의 이부자리 위에 도로 눕는다. 다음 날, 어김없이 남편은 아침을 차린다. 아내는 처음으로 식탁에 앉아 남편이 차려준 밥을 먹는다. 그들은 서로에게 어떤 논리나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남편은 외도의 흔적이 남은 아내의 침구를 발로 문대서 빨거나, 상간남의 구두가 있었던 현관을 깨끗이 청소할 뿐이고, 아내는 고해성사하듯 남편 앞에 앉아서 여태껏 먹지 않았던 밥을 먹는다.

 

감정은 어떤 포즈’(이상, 날개에서). <희망의 요소>는 인물들의 표정이나 대사로 극을 이끌고 가지 않는다. 어떤 포즈, 극 중 인물들의 신체의 논리를 켜켜이 쌓아가며 부부의 일상과 관계의 변화를 보여준다. <희망의 요소>의 오프닝은 아내의 발로부터 시작된다. 부부의 얼굴은 보여주지 않고 오로지 아내의 발과 남편의 손만이 화면에 보인다. 마사지해 주려는 남편의 손길을 뿌리치는 아내의 발이 보이고, 아내는 남편에게 방에서 나가라고 한다. 어떤 일상의 감각은 표정이나 말보다 등이나 손발이 더 적확하며, 조금씩 무너지는 관계의 징조는 표정이 아니라 몸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전화를 하는 아내의 방문으로 조용히 가는 남편의 까치발. 전화 소리를 엿듣는 남편의 뒷모습. 펜으로 원고 쓰면서 희망의 요소를 발견하려는 남편의 손. 파편화된 신체를 통해 우리는 인물들의 감정과 변화를 감지해낸다.

 

남편은 아내의 외도 이후, 집에 더 이상 머물러 있지 않고, 떠나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이야기로 쓴 소설 희망의 요소을 식탁 위에 올려둔 채. 남편이 집을 떠나고 1년이 흐른다. 남편은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아내가 남편을 찾아온다. 1년 동안 부부가 서로 연락을 하며 지냈는지 영화는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1년 뒤, 집을 벗어나서 마주한 부부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프레임 밖에서 단절된 채 서로를 마주한 적 없던 남편과 아내가 한 화면 안으로 들어온다. 식당에서 마주 보고 술잔을 기울이거나 노래방에서 붙어 앉아 서로를 끌어안는다. 아침을 한 침대에서 맞이한다. 둘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영화는 보여주지 않는다. 지난 감정에 대해 나눈 대사를 영화의 외화면으로 밀어둔다. 대화가 끝나거나 시작되기 전의 침묵하는 두 사람의 순간을 오랫동안 응시한다. 영화는 조금씩 무너지는 관계의 징조처럼 회복되는 관계의 징조도 표정이나 말이 아니라 파편화된 신체의 논리로 드러낸다.

 

우리는 누구나 조금씩 나쁘고, 조금씩 선하며, 조금씩 이기적이다. 그리고 희망과 불행은 휘몰아치는 거센 파도로 오는 것이 아니라 조용한 파문에서부터 비롯된다. 우리의 일상의 감각은 알아차리지도 못할 만큼 작고 미묘해서 타인에게서 조금씩 멀어지거나 가까워진다. 먹지 않던 아침밥을 먹기 위해 식탁에 앉는 일, 오랜만에 펜을 들어 그리운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일, 돈을 벌어서 아내와 횟집을 가는 일, 남편이 요리하는 소리를 들으며 침대에서 눈을 뜨는 일. <희망의 요소>는 일상에 파편화된 요소들로부터 희망의 파문이 감지되는 영화다. 아내는 남편에 편지를 쓴다. 오빠의 손을 미치도록 붙잡고 싶었다고, 뿌리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오프닝에서 부부는 각자의 신체를 뿌리치지만, 엔딩에서는 서로의 손과 발을 마주하고 꼭 붙잡는다. 손발이 맞지 않은 채 걸어가는 숙명을 가진 부부에게서 영화는 희망의 요소를 놓치지 않는다.

 

-관객리뷰단 장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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