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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아> 리뷰 : 혼란 속에서 돋아나는 길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3. 1. 13.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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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아>

혼란 속에서 돋아나는 길

 

"", 하고 울리는 커다란 굉음은 어둡고 고요한 극장 내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함과 동시에 영화의 막을 올린다. <메모리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의 원인을 찾아서 고군분투한다.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은 <메모리아>를 오직 극장에서만 공개한다고 밝힌 바 있다. 요즘 같은 OTT, 즉 인터넷을 통해 미디어를 소비할 수 있는 세상에서 보기 드문 포부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더라도 영화를 한 번 감상하고 나면 감독의 숨은 저의를 알아낼 수 있다. <메모리아>는 영화이기 이전에 그림 하나하나가 모인 거대한 미술품 전시와 같은 영화다.

 

<메모리아>는 배경 음악도, 대사가 그리 많지 않다. 대사가 꽤 등장하는 장면이 몇 존재하긴 하지만 희한하게 등장인물들이 말을 하면 할수록 묘하게 더 어려워지는 느낌이다.

 

제시카(틸다 스윈튼)는 어두운 새벽 집에서 잠을 자다가 엄청나게 큰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깬다. 하지만 처음엔 단순한 헤프닝으로 넘기려는 듯 여기저기 둘러보고 만다. 이후 병원에 입원 중이던 그의 여동생을 만난 후 그의 남편 후안과 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후 제시카는 후안의 소개로 들어가게 된 녹음 작업실에서 사운드 엔지니어의 도움으로 자신이 들었던 굉음을 구현해보기도 하고 그와 소리에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며 굉음의 정체에 대해 한 발짝 들어서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알고 봤니 그날 만났던 엔지니어는 원래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란다. 제시카가 말하는 인상착의와 그가 다녀간 녹음실에 엔지니어는 존재한 적이 없었고, 관객은 제시카와 함께 마치 꿈을 꾼 것만 같은 혼란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이후 제시카는 정신과 진료를 받으며 자신이 들었던 굉음에 대해 상담받는다. 의사는 그가 환청을 듣는 것이라며 진단했고, 신경 안정제는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 않고 오히려 중독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제시카는 결국 안정제를 처방받았고, 소리의 근원을 찾아 더 깊이 우거진 숲으로 다가간다.

 

여기까지 전재가 되면서 관객은 많은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여동생의 강아지 이야기, 여동생 남편의 시() 이야기, 엔지니어와 함께 나누었던 소리의 이야기까지. 이 중간에 제시카를 비롯한 다른 세 명의 등장인물 외 비 오는 날 어떤 부부와 아이의 외출 길이 담긴 장면도 등장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은 굉음을 찾는 데엔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인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씬들과 정적인 채로 이어지는 롱 테이크 장면들은 살짝 졸음을 유발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중 후반부에서 제시카가 만난 의문의 남자 에르난(다니엘 기메네즈 카쵸)와의 대화를 들어보니 아주 조금이지만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꿈을 꾸지 않는다는 에르난는 제시카가 또다시 굉음을 듣고 나서 만나게 된 사람이었다. 그는 숲속 냇가 근처에서 물고기를 손질하고 있었는데, 에르난이 말하길 세상 모든 진동은 돌과 같은 무생물 에게도, 사람과 같은 생물에게도 조금씩, 미세하게 축적되어 가고 있다 말한다. 에르난은 그 사실을 알고 나니 방랑 욕구가 생기지 않으며 자신의 기억을 난폭하게 헤집는 경험은 해롭다고 느껴 숲속에 거주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또한 그는 꿈을 꾸지 않은 사람이었으며, 궁금해하는 제시카에게 자신이 누워 잠을 자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마치 죽은 듯이 숨조차 쉬지 않으며 미동 없이 허공을 응시하는 에르난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꿈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인지, 짧지 않은 정적 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제시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굉음의 정체가 등장한다. 그리고 지진 소식을 전하는 뉴스와 함께 막을 내린다. 감독은 대체 영화를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 싶었을까? 카메라는 극이 흘러가는 내내 거의 움직임 없이 정적인 화면을 보여주고, 극장을 울리는 소리는 풀벌레 소리, 바람 소리 등 자연의 소리가 섞여 직접 자연 속으로 스며든 듯한 착각을 준다. 오히려 말이 없기에 우리는 영화를 계속 생각하게 된다. 에르난이 말했던 것처럼 모든 만물에 축적된 진동을 들으며 내가 있는 곳의 시공간이 흐려지고 스스로가 정확히 어디에 서 있는지 헷갈려서 제대로 서 있기 위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엔 인간의 호기심에서 시작되었지만, 마지막에는 끝을 알 수 없는 대자연의 웅장함에 길을 잃고 넋이 나가게 되는 영화. <메모리아>는 혼란스럽지만 그렇기에 온전할 수 있는 영화다. 굉음의 정체라는 영화의 시작과 끝을 담당한 설정의 정보를 정확하게 알고 나서도 끊임없이 의구심을 갖고 생각하게 만들어 오랜만에 생각의 늪을 헤엄칠 수 있다. 정보의 바다에 길든 우리에게 <메모리아>는 새로운 생각의 바다로 관객을 초대한다.

 

-관객리뷰단 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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