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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사주> 리뷰 : 마침내 코르사주를 벗어던지고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12. 17.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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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사주>

마침내 코르사주를 벗어던지고

 

난 싫어 이런 삶 새장 속의 새처럼

난 싫어 이런 삶 인형 같은 내 모습

난 당신의 소유물이 아니야

내 주인은 나야

......

나는 날 지켜나갈 거야, 난 자유를 원해

 

-뮤지컬 <엘리자벳> ‘나는 나만의 것-

 

<코르사주>는 시종일관 자유(自由)를 이야기한다. 영화는 오스트리아의 황후 엘리자벳(빅키 크리엡스)을 통해 남에게 구속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바로 그 자유를 갈망하는 한 여인의 삶을 비춘다. <코르사주>의 감독 마리 크로이처가 그려낸 엘리자벳은 다채롭고 복잡하다. 1878, 마흔을 맞이한 엘리자벳의 한 해를 무대로 감독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그녀의 여러 면모를 화면 앞에 선보인다.

 

코르사주(Corsage)로 허리를 있는 힘껏 동여매고 치렁치렁하게 늘어진 긴 모발로 꾸며낸 머리 장식을 한 엘리자벳은 황후로서의 기품을 풍긴다. 고귀하고 아름다운 황후 엘리자벳은 공식 석상에서 핏기 없는 얼굴로 기절하고 곧바로 이어진 장면에서 사촌 루트비히(마누엘 루비)와 함께 쓰러지는 연기를 하며 키득거린다. 이 모습을 보고 관객은 고개가 갸우뚱거린다. 그리고 이내 깨닫게 된다. 이 영화는 엘리자벳의 숨겨진 무언가를 보여주려고 한다는 걸 말이다. 엘리자벳의 마흔 번째 생일 축하연, 그녀의 남편이자 황제 요제프(플로리안 타이트마이스터)는 아내를 향해 영원히 아름답길.”이라는 축사를 전한다. 황제를 비롯한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강요하는 엘리자벳은 꽃같이 인형같이 그저 미모를 뽐내는 장식품이다. 그저 아름답기만 하면 되는데, 엘리자벳은 결코 그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주변에서 바라본 그녀는 한없이 불안정하다. 남편을 향해 이죽대고 비아냥거리다가도 국제정세의 변화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황후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황제에게 요구하기도 한다.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멀리 여행을 나서며 황실을 벗어나 승마를 즐기고 다른 이들의 애정을 갈구한다. 요제프와 엘리자벳의 자녀 루돌프(아론 프리즈)와 발레리(로자 해야이)에게는 그녀의 이러한 행위가 대책 없는 기행으로 여겨지는 듯 보인다. 엘리자벳의 가족 중 누구 하나 그녀가 내민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지 않는다. 그들에게 엘리자벳은 아내와 어머니이기 전에 황후여야만 하기에 그녀의 자유를 향한 결핍을 이해가 아닌 교정의 영역에서 대응하려 한다. 기댈 곳이 없는 엘리자벳은 그저 외로움에 파묻힌다.

 

잘록한 허리와 풍성한 머리칼, 엘리자벳의 미()를 대표하는 두 가지를 <코르사주>는 족쇄처럼 바라본다.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엘리자벳은 극단적인 절식(얇게 썬 오렌지, 육수)과 코르사주로 몸을 옭아매고, 장발의 무게를 감내한다. 그런 엘리자벳이 마지막을 준비하며 그동안 자신을 옥죄여온 아름다움으로 벗어난다. 스스로 머리를 짧게 자르고, 코르사주로부터 벗어난 엘리자벳의 옆모습은 한없이 편안해 보인다. 사실 역사 속에 기록된 엘리자벳의 마지막은 1898, 60세를 맞이한 그녀가 익명으로 스위스 제네바에 여행을 떠났다가 이탈리아의 무정부주의자 루이지 루케니의 칼에 찔려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르사주>는 이러한 역사의 기록에 작은 반기를 들어 엘리자벳의 마지막을 그녀 스스로 생을 마감할 수 있게 상상을 더한다. 뱃머리에서 지체 없이 바다를 향해 몸을 던지는 엘리자벳을 보며 해방이라는 단어 외에는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자유를 쟁취한(혹은 쟁취하였을) 엘리자벳을 그리며 영화는 또 하나의 상상을 더한다. 초기 영화 카메라를 발명한 것으로 알려진 루이 드 프린스(피느간 올드필드)와 엘리자벳의 만남이라는 가정을 통해 엘리자벳의 인생 중 한 대목을 활동사진으로 기록한다. 엘리자벳은 마치 흑백 무성영화의 배우처럼 보인다. 동산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우스꽝스러운 몸짓과 표정으로 자신을 표출하던 엘리자벳, 그녀가 오롯이 자유로울 세상이 어느 곳엔가 존재하기를.

 

-관객 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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