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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어 수업> 리뷰 : 잊힐 뻔한 이름들에게 기대어 만든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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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12. 17.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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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어 수업>

잊힐 뻔한 이름들에게 기대어 만든 언어

 

1942년 겨울, 나치에 점령된 프랑스 북부. 나치 친위대가 유대인들을 트럭에 태우고 어딘가로 향한다. 어디로 왜 향하는지도 모르는 트럭 안에 주인공 (나우엘 페레즈 비스카야트)’이 있다. 옆 사람은 오랫동안 굶주렸는지 질에게 먹을 게 있냐고 물어본다. 주인집에서 훔친 페르시아어로 된 초판본 페르시아 신화를 보여주면서 질의 샌드위치와 바꾸자고 한다. 샌드위치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가치가 있다면서. 트럭의 또 다른 유대인은 책을 훔쳤다는 소리를 듣고 도적질하지 마라라는 유대교 율법 중 하나를 읊는다. 랍비인 아버지를 둔 유대인인 질에게 페르시아의 신화와 다른 종교의 역사를 담은 책이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 게다가 율법을 어기고 훔친 책이다. 죽음의 그림자가 엄습해오는 와중에도 율법을 말하는 사람이 있고, 초판본의 값비싼 가치에 대해 말하는 사람도 있다. 질은 율법이나 값비싼 가치를 저울질하는 대신 배고픈 사람에게 자신의 샌드위치를 내어주는 사람이다.

 

친위대 대위 코흐(라르스 아이딩어)’는 수용소에서 페르시아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찾고 있다. 그에게는 계획이 있다. 전쟁이 적어도 2년은 더 갈 테니, 페르시아 단어를 매일 4개씩 외운다고 하면 전쟁 중에 2,920개의 단어를 배울 수 있게 된다. 쓰는 것은 할 필요가 없고, 대화만 할 수 있으면 된다. 어느 날, 코흐에게 자신이 페르시아인이라고 주장하는 수감자가 수용소로 들어온다. 수감자는 페르시아어로 쓴 페르시아 신화를 보여준다. ‘아버지가 페르시아어로 뭔지 묻는 코흐에게 바바라고 말한다. 질은 우연히 샌드위치와 바꾼 책으로 총살을 면할 수 있었고, 우연히 아버지가 페르시아어로 바바라는 것을 알게 되어 살아남았다. 그리고 수용소에서 페르시아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코흐 앞에 서 있다. 그는 살기 위해 레자 준이라는 이름을 지어내 페르시아인 행세를 한다. 코흐는 질이 여전히 미심쩍지만 페르시아어를 듣도 보도 못했으니 준의 입에서 나오는 것만이 유일한 페르시아어이자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통로이다. 그 날부터 코흐와 질의 가짜 페르시아어 수업이 시작된다.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자신이 겪었던 실제 경험을 토대로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썼다. 수감자들에게 가장 절망이었던 것은 자기가 얼마나 오랫동안 수용소 생활을 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수형 기간은 불확실했으며, 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삶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사람은 인생의 계획을 세울 수조차 없다. 수감자들은 삶의 의지를 잃었으며, 그 앞에 닥치는 모든 일들을 무의미한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코흐는 계획을 갖고 틈이 날 때마다 페르시아어를 열심히 외운다. 페르시아어를 배워서 전쟁이 끝나면 동생이 있을지도 모르는 테헤란으로 가서 독일 식당을 차리겠다는 목표와 꿈을 이루기 위해서. 수용소에는 전쟁 끝에 살아남아 삶에 대한 희망과 강한 의지를 내뿜는 어떤 인간이 있었지만, 다른 한편에는 삶의 끝을 알 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에 지배되어 의지가 꺾인 채 미래를 계획할 수조차 없었던 인간들도 있었다.

 

언어는 음성과 의미의 결합이다. 하지만 그 결합에는 어떤 법칙이나 필연적인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언어 사용자들끼리의 약속으로 인해 정해진다. 질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가짜 소리들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소리에 독일어의 의미를 마구잡이로 연결시킨다. 그리고 질과 코흐, 둘만의 약속으로 가짜 페르시아어가 완성된다. 2,000개 이상의 단어를 모두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펜이 없는 질은 막사에 들어와 남들이 잠을 자는 시간에 죽음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기도문처럼 가짜 페르시아어를 끊임없이 읊조린다. 어느 날, 코흐는 질에게 수용소에 입소하는 사람들의 명부를 기록하라고 명령한다. 질은 명부를 반듯하게 기록하다가 사람들의 이름을 따서 가짜 페르시아어의 소리를 만들어낸다. 이후로 질은 수감자들에게 배식을 하면서 수감자들의 번호가 아닌 이름을 묻는다. 이름을 듣고 그들의 이름에서 소리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름 주인의 생김새와 성격을 토대로 소리에 의미를 부여한다. 수감자들의 이름과 생김새, 성격으로 새롭게 창조해 낸 언어를 들으며 나치 친위대 코흐 대위는 참 멋진 언어야라고 말한다.

 

질은 살아남기 위해 페르시아인 레자 준이 되었다. 그리고 페르시아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코흐의 의심을 피하고 총살을 면하기 위해서 수용소에 있는 수감자들의 이름을 빌렸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주방에서 재료를 손질하고 있던 질은 창밖을 바라보다가 간부에게 두들겨 맞는 자코모를 바라본다. 그의 형 마르코가 자코모를 감싼다. 그때, 오로지 죽음을 모면하기 위해서만 생을 연명하고 있었던 자기 자신을 깨닫는다. 질은 코흐에게 음식을 받아 막사로 숨겨와 마르코에게 음식을 건넨다. 마르코는 동생에게 음식을 먹인다. 그는 덕분에 동생이 살았다고 고맙다고 말하면서 질에게 당신이 죽으면 동생이 죽는다고 말한다. 질은 운 좋게 다른 사람의 생을 빌려 자신의 생을 연명할 수 있었고, 자신을 대신해 죽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인간의 결정, 그것이 특히 생사와 관련된 문제일 때 얼마나 그것이 불확실한 것인가를 깨달았다고 빅터 프랭클은 말한다. 그러면서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고도 했다. 질은 위기에서 자신을 구해주고 죽음에 이른 마르코를 대신해 자코모를 지켜주기 위해 행동한다. 자신이 가는 곳이 죽음으로 향하는 곳인지 하루라도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인지 그들은 알지 못한다. 질은 조금 더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곳으로 자코모를 보낸다.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이동 행렬에는 자코모 대신 질이 있다. 뒤늦게 코흐가 질을 발견하고 그를 빼낸다. 코흐는 질에게 이름 없는 사람들 틈에서 죽으려고 했냐고 묻는다. 질은 이름이 없는 건 당신이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간에게 삶의 의지는 살아있는 것으로만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는 운명의 굴레 속에서도 고통을 자각하고 누군가를 위해서 자기를 내던지는 행동 또한 삶의 의지다. 질은 결국 살아남아, 자신이 빚진 사람들의 이름에 기대어 만든 가짜 언어 덕분에, 나치가 태워버린 명부에 적힌 2,840명의 성과 이름을 빠짐없이 또렷하게 호명하고 기억해 낸다.

 

-관객 리뷰단 장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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