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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즈 앤 올> 리뷰 : 거스를 수 없는 끌림에 대하여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12. 17.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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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즈 앤 올>

거스를 수 없는 끌림에 대하여

 

진정 매력적이고 아름다우나 동시에 너무도 기이하고 해괴하여 다가가기가 어렵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신작 <본즈 앤 올>을 통해 말하는 사랑과 본능에 대한 감상이다. 감독은 이번 영화를 두고 사회 주변부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 말한다. 덧붙여 불가능한 사랑, 사회에서의 권리를 박탈당한다는 것, 그리고 안식처를 찾고자 하는 꿈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감독은 어찌할 수 없는이라는 수식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카니발리즘(식인)을 소재로 은유하고 있는 테두리 바깥에 서 있는 사람들의 삶이란 불안과 고뇌와 고달픔의 연속이다. 자신의 본능을 알아차린 소녀 매런(테일러 러셀)과 매런 앞에 운명적으로 나타난 소년 리(티모시 샬라메)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두 사람이 나눈 감정은 인과적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니다.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끌림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은 소년과 소녀의 불완전성과 맞물려 여리디여린 감정을 증폭시킨다. 또 그러한 연약한 인간만이 휘둘릴 수 있는 사랑이라는 순수하고도 잔혹한 심밀한 감정은 화면 밖의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영화의 시작, 매런은 학교 음악실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다. 한 여학생이 매런의 곁에 다가와 앉아 매런을 파자마 파티에 초대하고, 매런은 아버지(안드레 홀랜드) 몰래 한밤중에 집을 나선다. 매런은 여학생과 함께 그녀의 집 거실에 나란히 누워 둘만의 대화를 나눈다. 여학생의 곁에 점점 파고드는 매런의 얼굴과 깊은 숨소리는 매런이 무언가에 취해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에서 벌어진 사건은 가히 충격적이다. 매런은 은색 반지를 끼고 있는 여학생의 검지를 입에 집어넣는다. 여학생의 비명과 함께 여학생의 으스러진 손가락이 화면 가득 채워지고, 입언저리가 피범벅이 된 매런은 여학생의 집을 뛰쳐나온다. 사람이 인육을 먹는 행위가 이토록 몽롱하고 매혹적으로 그려지다니, 경악과 약간의 배신감(?)으로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는 순간이다. 도입부에서 목도한 충격적인 광경은 앞으로 영화상에서 발생할 일련의 사건들을 예고한다.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매런이 그녀의 시작을 알아내고자 그녀의 어머니를 찾아 나서는 여정으로 영화는 본격적인 서사를 진행한다.

 

매런의 여행은 버지니아를 시작으로 자신의 출생증명서에 기록된 미네소타까지 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테이프에 남겨진 아버지의 마지막 메시지에 기대어 매런은 그녀의 근원에 다가가려 한다. 여정 중에 매런은 (영화상에서 이터(eater)’라 불리는) 그녀와 같은 본성을 지닌 두 남성과 차례로 만난다. 냄새로부터 매런의 존재를 알아챈 중년 남성 이터 설리(마크 라이선스)는 매런에게 접근하여 그녀와 함께 어느 독거노인의 시체를 탐식한다. 설리로부터 냄새로 동족을 알아차리는 법을 습득하고 함께 본성에 걸맞은 식사를 나누었음에도 매런은 설리와 동행하지 않는다. 설리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형언하지 못할 불길함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의 본능이 두려운 것인지 아직까지도 확신할 수 없지만, 아무튼 매런은 설리로부터 벗어난다. 이윽고 매런은 리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맞이한다. 리와의 만남은 외피만 두고 보면 사실 설리와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매런은 설리와 마찬가지로 리와 서로를 알아차리고 본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식인을 하는 일련의 과정을 보낸다. 그러나 매런의 눈에서 만남의 의미가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설리를 향한 매런의 시선에는 온통 경계와 혐오만이 가득했지만, 리를 향한 매런의 시선에는 호기심 그리고 연민과 애정이 묻어 나온다.

 

리와 동행을 시작하면서부터 매런의 여정은 본래 목적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 게다가 <본즈 앤 올>에서 그려내는 매런의 여정과 식인의 근원에 대한 단서는 불친절하고 지극히 단선적이다. 이는 분명 영화적 재미를 반감시키는 약점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치명적인 단점이 영화 전반에 흐르고 있음에도 영화는 끊임없이 관객을 끌어당긴다. 끌림의 중심에는 매런과 리가 있다. 매혹당한 관객은 매런이 모친을 찾아 나서는 것보다 리와 함께 보내는 시간 속에 번져가는 그녀의 내밀한 감정에 관심을 보이게 된다. 마음의 기울어짐은 시리얼과 팬케이크를 앞에 두고 서로를 흘긋흘긋 바라보는 매런과 리의 얼굴이 화면에 교차되어 나타나는 카페에서의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의심의 여지 없이 사랑이 피어오르는 순간을 바라보며 자연스레 이들의 다음이 궁금해진다. 그런 까닭에 매런이 친모가 수용되어 있는 정신 병원을 찾아가도, 그곳에서 두 손이 사라진(스스로 그것을 먹은 것으로 추정되는) 매런의 모친 자넬(클로에 세비니)과 마주하여도 그 상황이 그리 반갑거나 신선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매런에게 있어 엄청난 전환점이 될 순간임에도 말이다. 그보다는 매런과 리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진전될 것인지가 더욱 흥미롭게 느껴진다.

 

영화의 마지막, 광활한 대지 위에 상의를 벗고 있는 매런과 리가 화면 한가운데 앉아있다. 리를 뒤에서 껴안은 채 그의 등에 기댄 매런을 보며 제목이 말하듯 뼈까지 모조리 다취한 황홀함의 경지에 서 있는 매런과 리의 미래를 그려본다. 그 상상의 여지만으로도 영화를 보는 내내 감미로웠다.

 

-관객 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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