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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겟돈 타임> 리뷰 : 폴이 만난 혼돈과 차별로 가득한 시간, 아마겟돈 타임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12. 7.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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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겟돈 타임>

폴이 만난 혼돈과 차별로 가득한 시간, 아마겟돈 타임

 

인종개념은 자연의 질서가 아니라, 유럽인들의 식민화 역사 과정에서 인간이 만들어 낸 분류 체계였다. 침략자 유럽인의 눈에 식민지의 원주민들은 비유럽인이면서 피식민자들이었다. 유럽인의 시선으로 식민지에서 발견된 몸의 다양한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그들은 인종개념을 만들고 피부색과 얼굴색으로 인간을 분류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인종 간 위계를 만들어낸다. 인종을 뜻하는 영어 ‘race’16세기에 등장한다. 엄윤옥은 낙인찍힌 몸에서 스페인어 ‘raza’가 동물의 혈통이나 품종을 가리키는 뜻이었지만 1611년에 편찬된 최초의 스페인어 사전에는 무어인이나 유대인 혈통을 가진 사람을 조롱하는 단어도 포함된 뜻으로 쓰였다고 했다. 기독교도가 지배하던 시기에 유대인은 추방당하거나 개종해야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개종한 유대인에 대한 의심은 기독교인 자신들과 유대인이 애초에 핏줄자체가 다르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유대인의 몸에서는 특유의 냄새가 난다는 기록까지 있었다. ‘raza’는 남유럽으로 확산되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그리고 영어 ‘race’에도 영향을 주었다. ‘인종은 학살과 파괴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그 과정에서 인간이 자신과 다른 생김새와 신념의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인식하는지 보여준다. <아마겟돈 타임>은 공립학교를 다니는 유대인 폴 그라프와 흑인 조나단 데이비스(죠니)’가 살고 있는 1980년대 뉴욕 퀸스의 가을을 세심하게 담아낸다.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에서 출발한 <아마겟돈 타임>은 유년 시절에 살았던 집과 다녔던 학교를 실제와 가깝게 영화 속에 구현했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와 흡사하게 만들어진 공간 안에는 80년대 뉴욕의 상실과 혼돈을 고스란히 소환하는 인물들이 살아 숨 쉰다. 그 중심에는 폴 그라프(뱅크스 레페타)가 있다.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폴은 할아버지 세대 이전에 유대인이 겪었던 핍박과 추방의 역사를 할아버지의 말을 통해서만 체험한다. 식탁에 모여 앉아 이모할머니가 나치 이야기를 할 때에도 폴은 장난을 치며 웃는다. 폴의 할머니에게는 교육이 중요하기 때문에 지금의 공립학교가 학급 인원 통제가 안 되고 흑인들도 온다면서 폴이 다니는 학교를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폴의 아버지는 온수기를 수리하는 배관공이다. 그는 직업 때문에 누구에게도 존중받지 못했다고 하면서도, 폴의 단짝 친구 죠니(제일린 웹)에 대해 어떤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그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가난한 친구라고 말하고, 중국 음식을 주문하는 폴을 말리면서 칭챙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욕망을 뒤쫓았으며, 성공으로 가기 위한 문은 좁은데 사람들은 모두 그 문을 향했다. 모두들 앞만 보고 내달리던 시기였다. 폴을 둘러싼 세계는 진보와 보수의 충돌, 유색인종의 혐오, 냉전 시대의 핵전쟁 가능성까지, 그야말로 서로 다른 생김새와 신념끼리 부딪치는 대혼돈의 시간들이었다.

 

폴과 죠니가 학교 화장실에서 몰래 마약을 하다 선생님한테 걸리고, 그 뒤로 폴은 사립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다. 폴은 그때부터 다른 세계를 마주하게 된다. 사립학교 등교 첫날, 폴은 프레드 트럼프라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트럼프 집안은 사립학교의 후원자이고, 미국의 엘리트 특권층이다. 트럼프는 폴에게 이름을 묻고 폴의 이름이 이상하다고 말한다. 폴의 할아버지가 자신이 유대인이기 때문에 면접에서 떨어진 이야기를 폴에게 들려줄 때, 폴은 그런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사립학교에 들어서자마자 폴은 비유대인인 백인 남성의 시선을 통해 유대인이 겪어야 하는 차별적 시선과 사회적 위계를 경험하게 된다.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폴은 유대인이 아니라 자신을 부자라고 말하고, 엄마는 학부모 위원회 회장을 맡고 있어서 죠니에 비해 특권을 가진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사립학교에서 폴은 비유대인인 백인 엘리트 집단 속에서 차별을 겪게 되는 유대인으로 위치하게 된다.

 

폴은 넥타이 때문에 질식할 것 같지만, 학교는 폴에게 전통을 따라야 하고, 사회의 리더가 될 의무가 있다고 강요한다. 폴은 그곳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니고, 가끔은 도망치고 싶다고 말한다. 모두가 사회에 나가 엘리트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곳에서, 폴은 자신의 손을 그리고 우주선을 그린다. 친구들은 시험공부는 안 하고, 손을 그리고 있는 폴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폴이 체육시간에 죠니와 이야기를 나누자, 친구들은 죠니를 깜둥이라고 부르며, 집에도 놀러 왔냐고 묻는다. 폴은 죠니와 친한 사이는 아니고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알던 애라고 둘러댄다. 손을 그리고 있는 이유를 물었을 때도, 죠니와의 관계를 물었을 때도, 폴은 타인의 시선 때문에 솔직하게 대답하지 못한다. 혼란스러운 폴에게 할아버지는 행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생은 늘 불공평하다. 내가 누리는 행운은 남의 불행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주어진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것밖에 할 수 없지만, 폴에게는 차별과 불평등을 겪었던 과거를 잊지 않을 수 있는 선택지가 있다. 폴이 멀리 허공을 바라본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빈집과 교실의 빈 공간을 카메라가 응시한 뒤 뒤로 빠지며 한 발자국 멀어져 간다. 그러한 움직임과 시선은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회에서 다른 속도로 살아가고자 하는 폴의 의지로 비친다. 또한 성공과 엘리트주의에 경도된 공간에서 순응하는 삶을 살기보다, 행동하고자 노력하는 폴의 발걸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관객 리뷰단 장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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