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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 연인> 리뷰 : 다시 일어나 다음 발걸음을…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12. 7.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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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 연인>

다시 일어나 다음 발걸음을

 

얼마 전 개봉한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와 자연스레 비교가 되는 영화이다. 두 영화 모두 딸과 엄마의 관계가 관습적으로 그려오던 모습은 아니다. 두 영화 속 엄마는 친딸이라 하더라도 더 이상 무조건적인 헌신을 하며 자신의 인생을 바치지 않는다. 아니, 한술 더 떠 자신의 사랑을 잡기 위해 필요하다면 딸 정도는 기꺼이 등 돌리는 쪽을 선택한다. ‘모성이라는 굴레와 억압에 고뇌하고 좌절하면서도 끝끝내 가정을 지켜내고 그에 더해 자식에 의해 자신의 인생을 보상받으려는 지난날의 엄마상을 두 여성 감독은 더 이상 영화에서 답습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듯하다. 그 무엇보다도 내 감정에 충실하고 내 행복을 위해 세상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태도다. 물론 그것이 자신의 딸에게는 고통을 안겨주는 결과로 작용하는 행위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엄마 모두 자신이 원하던 목적지에는 이르지 못한다. 친딸에게 모질게 대하면서까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사랑은 결실을 맺을 듯 아주 가까이 다가오지만 한순간에 손가락 사이로 다 흩어져 사라지고 만다. 마치 그들의 인생에 이성과의 사랑은 결코 허용되지 않을 운명 같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타인에게서 찾는 그 사랑으로 나를 채우고 행복을 꿈꾸는 일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를 보여주는 듯도 싶다. 그들이 그랬듯 사랑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가정도 버릴 줄 알았던 남자들이 결국엔 본래의 가족에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도 아니라면, 자신을 옭아매는 구습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에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그 이후의 길에 대해서는 아직 답을 찾아가는 여정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에 반해 두 영화에서 딸의 태도는 사뭇 다르다. 한쪽은 늘상 거절당하면서도 엄마의 사랑에 집착하며 그 채워지지 않는 욕구로 인해 원망하고 증오하면서도 좀처럼 그 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의존한다. 자신의 부족한 모든 면이 엄마 때문이라는 원망에 사로잡혀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하는 그는 서른이 다 되도록 온전히 홀로 서지 못하고, 타인과의 제대로 된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다. 또 다른 한쪽인 이 영화의 주인공 유진(황보운)은 아직 주민증도 나오지 않은 어린 나이지만 집 나간 엄마에게 매달리기보다는 과감히 세상에 발을 내디디며 홀로서기에 나선다. 일과 사랑 모두에서 거침이 없는 그는 실패의 두려움 대신 온 세상이 손만 뻗으면 나를 중심으로 돌 것이라 생각하는 듯, 막연한 자신감으로 충만해 보인다.

 

18살의 유진은 전단지를 돌리다 마주친 학교 친구가 시비를 걸어도, 손님이 공연한 트집으로 자신을 주눅 들게 해도 위축되기보다는 눈 부릅뜨고 더 세게 맞받아쳐서 이겨내는 쪽을 택한다. 사랑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이 관계를 주도하려 하고 자신의 솔직한 감정과 욕구를 나이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감추거나 억누르려 하지 않는다. 그의 눈은 카페에서도, 영화관에서도 늘 분주하다. 다른 연인들이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며 마치 학습하고 실습하듯 행동으로 옮긴다. 마음이 움직이면 그 흐름대로 사랑의 대상도 스스럼없이 바꾼다. 반대로 상대가 나를 그저 욕망을 채우려는 대상으로 이용하려 한다면 냉정하게 돌아서 쓰레기 더미까지 뒤집어씌운다. 엄마가 상대를 기다리고 의존하는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당돌함마저 느껴진다.

 

특히 유진과 그를 둘러싼 10대의 모습은 이 영화가 기존의 영화들과 같은 문법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점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낸다. 그들의 진짜 감정과 표현을 드러내지 않는 식으로 돌려 말하거나 사회적 규범에 어긋나면 무조건 일탈로 몰아가는 모습은 이 영화에서 볼 수 없다. 오히려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고 끌리는 이성을 적극적으로 유혹하려는 모습은 자신의 감정과 욕구에 솔직한 것일 뿐, 그것이 스스로의 삶을 아무렇게나 내던지는 방종의 길로 흐르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영화는 어른들이 재단한 흑과 백의 논리와 정해진 길에 순응하기보다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 일단 가보고 그것에 오류가 있다면 시행착오로 받아들이며 다시 새로운 길을 걸어보는 쪽을 선택한다.

 

좋은 사람들과 시작한 사회생활은 순조롭게 풀리고 사랑의 설렘에 웃음만 가득할 것 같았던 유진에게 첫사랑의 그 달달한 시간은 짧고 훨씬 고통스러운 순간이 겹쳐서 닥쳐온다. 특히 어긋난 사랑의 감정이 마치 연쇄적으로 비극을 몰아오는 듯한 상황은 유진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결말로 치달으며 그를 완전히 주저앉힐 것만 같다. 그럼에도 손 내미는 사람이 있고 그 손을 서로 잡으며 다시 일어나 앞을 바라본다. 한 뼘 더 자라고 더 튼튼해진 마음으로 유진은 다시 발걸음을 내디딘다. 앞의 영화에서 서른이 다 된 그 딸은 늦었지만 엄마를 완전히 벗어남으로써 홀로서기를 시작하고, 이 영화의 유진은 엄마를 이해하고 보듬으면서 진정한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세상이 호락호락하지는 않지만 두 딸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진짜 인생을 살아 보기로 한다.

 

-관객 리뷰단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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