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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말했다> 리뷰 : 폭력에 순응하지 않기 위해 그녀들이 말했다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12. 7.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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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말했다>

폭력에 순응하지 않기 위해 그녀들이 말했다

 

2017105일 뉴욕타임스는 하비 와인스타인이 수십 년간 성추행 고발자에게 합의금을 지불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는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이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악용해 오랫동안 저지른 성폭력의 민낯을 낱낱이 파헤쳤다. 하비 와인스타인은 시스템과 사법체계 안에 교묘히 숨어들어 피해자들에게 침묵을 강요했다. 이를 통해 기사는 반복적인 패턴으로 성폭력을 끊임없이 저지른 범죄자를 어떤 제지나 처벌도 없이 방관한 할리우드의 구조에 대해서도 고발한다. <그녀가 말했다>는 뉴욕타임스 기자 메건 투히조디 캔터가 하비 와인스타인의 범죄를 다룬 기사를 취재하고 발행하기까지를 다룬 영화다.

 

영화는 1992년 아일랜드에서 시작된다. ‘로라 매든은 해변가에서 영화 촬영 현장을 마주하게 된다. 로라 매든에게 영화는 다른 세계를 마주하는 통로이자 설레는 꿈이었다. 하비 와인스타인은 그녀에게 정규직 일자리를 제안한다. 하지만 로라 매든은 무언가로부터 허겁지겁 도망치듯 겁에 질린 채 거리로 뛰쳐나온다. 권력의 정점에 선 하비 와인스타인은 업무를 빙자하여 사회 초년생 여성과 신인배우를 밀폐된 자신만의 공간으로 부른다. 메건 투히와 조디 캔터, 두 기자는 오랜 세월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린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하비 와인스타인은 자신이 저지른 성범죄를 법정 밖에서 합의금으로 무마해왔다. 피해자들이 겪은 육체적·정신적 고통은 너무나 또렷한데, 정작 가해자는 그 고통을 없던 일로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비밀 유지 조건을 내세워 침묵을 강요하기까지 했다. 거대한 권력 앞에서 피해자들은 속절없이 자신의 고통을 숨겨야만 했고, 법이 피해자인 자신 편이 아니라는 무력감에 목소리를 감추며 살아간다. 두 기자는 취재를 위해 피해자들을 찾아가지만, 자진해서 자신의 이름으로 기사화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라는 걸 자신들도 알고 있다. 하비 와인스타인 사건의 취재 과정을 담은 책 그녀가 말했다에서 저널리즘의 영향력은 특정성에서 나온다. , 이름, 날짜, 증거, 그리고 패턴이라고 말하며, 제보자들의 실명을 기사에 싣기 위해 노력한다.

 

피해자들은 기자가 가해자를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기사화되더라도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이 아닌 피해자에게 또 다른 낙인을 찍거나 살해 위협까지 받게 될지도 모르는 게 미디어의 속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기자는 사실의 언어로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피해자들의 실명이 절실히 필요하다. 침묵하는 피해자들에게 고통스러운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하고 말문을 열게 하는 일들은 기자들에게도 쉽지 않다. 취재와 기사를 쓰는 업무는 사무실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두 기자의 가족이 있는 집에서도 계속해서 이어진다. 취재를 하며 추악한 권력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두 사람의 평범한 일상에, 배우자와 자녀들과 보내는 시간에도 도청과 미행과 같은 위험이 파고든다. 영화는 두 기자를 거대 권력과 맞서 싸우는 영웅으로 그려내기보다, 자신의 자녀들은 폭력에 순응하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고뇌하는 평범한 소시민으로 그려낸다.

 

마리아 슈라더 감독은 무척 내밀한 것과 꼭 알려져야 하는 것 둘의 만남과 붕괴가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폭력의 트라우마가 아물지 않은 피해자들의 내밀한 증언과 하비 와인스타인의 범죄를 세상에 알리려는 기자들의 노력이 끊임없이 만남과 붕괴를 반복한다. 기자들의 노력과 여성으로서의 연대는 피해자들의 용기로 이어진다. 그녀들이 말한다. 기사에 자신의 이름을 써도 좋다고. 영화는 하비 와인스타인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며, 피해자들이 겪었던 고통을 화면에 쉽사리 재현하지 않는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부재하는 공간(호텔 로비와 욕실, 침실 등)을 보여주며 사건이 일어난 시간으로 관객을 데려간다. 인물이 부재하는 공간 안에는 피해자의 목소리와 그들이 겪었던 고통의 시간만이 공명한다. 개인이 겪었던 고초와 상처를 끌어안고 또 다른 피해자와 가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영화는 말한다. 내 목소리를 되찾고 싶어요.

 

-관객 리뷰단 장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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