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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어버드> 리뷰 : 정의 내릴 수 없는 감정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11. 30.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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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어버드>

정의 내릴 수 없는 감정

 

사랑이란 감정을 감히 어떻게 정의 할 수 있을까. 단순한 감정 중 하나로 치부하기에 사랑은 너무나 크고 다양하다. 각자마다 정의 내리는 것도 다르고, 당연히 성별도 국한되어 있지 않다. <파이어버드>는 이 당연한 사실이 통하지 않는 시대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평범하게 사랑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고, 그래서는 안 됐던 이들의 이야기다.

 

주인공 세르게이(톰 프라이어)는 같은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것은 전혀 이상한 일도 아니고, 혐오의 시선을 받을 일도 아니나 그가 살던 시대는 달랐다. 1970년 냉전 시대, 그는 소비에트 연방의 군인이었고, 당시 규율에 의해 동성애를 하는 자는 감옥에 투옥될 수도 있었다. 그가 자유롭게 사랑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군대를 벗어나야 했다. 하지만 손안에 물을 가둘 수 없듯 한 번 시작된 사랑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기 마련이다. 세르게이에게 로만(올렉 자고로드니)은 그런 존재였다. 사진 찍기라는 같은 취미를 가진 둘은 금세 친해졌고, 로만은 연기에 굶주려 있던 세르게이에게 우연히 발레 공연 <불새>를 보여주는 등 그가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아무도 응원해주지 않은 꿈을 지지해준 로만에게 세르게이는 자연스럽게 마음이 갔다. 로만 역시 세르게이의 취미를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그와 깊이 감정을 교류하면서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영화를 보면 볼수록 이 이야기가 실화라는 점이 놀라웠다. 카메라가 비춘 당시 군대의 모습은 폭언과 비방, 폭행이 난자한 곳이었고 특히 동성애자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억압이 심한 곳이었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은밀하게 마음을 키워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관객에게도 잘 전달이 되었다. 둘이 밀회를 나눌 때면 관람하는 가운데 괜히 긴장을 놓치지 않은 채 보게 된다. 감독은 실제 인물 세르게이를 만나 '정치가 아닌 사랑 영화를 만들어달라'는 당부를 들은 만큼 러닝 타임 내내 뜨거운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로만의 방에서 사진을 현상하는 장면은 아찔할 정도로 관능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붉은 방 안에 별다른 배경음악 없이 오로지 두 사람의 숨소리와 찰랑거리는 물소리만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몹시 덥고 뜨거운 열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후 두 사람의 관계 장면 역시 붉은 조명 아래서 한다는 점이 앞선 현상 장면을 떠오르게 하면서 한층 더 몰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듯이 이들의 사랑도 끝을 맞이해야 했다. 익명의 제보를 받고 평소 로만을 아니꼽게 보던 소령이 끊임없이 그를 감시했고, 급기야 둘이 있던 방을 불시 점검에 나서며 둘의 관계를 들킬 위기까지 가자 로만은 먼저 그에게 이별 아닌 이별을 고한다. 사랑보다 조종사로서의 커리어가 더 중요했던 그에게 이별은 필수 불가결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르게이는 함께 모스크바로 가 자신이 하고 싶어 했던 연기를 하며 로만과의 미래를 꿈꿨기에 그런 그의 선택에 깊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둘의 이별과 동시에 세르게이가 전역하며 영화는 한 차례 전환점을 맞는다.

 

사실 세르게이에게는 볼로댜(제이크 헨더슨)와 루이자(다이애나 포자르스카야)라는 절친한 친구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친밀한 관계의 루이자와 로만이 결혼하면서 세르게이는 절망한다. 그토록 사랑했고, 헤어지고 나서도 잊히지 않은 전 애인과 절친이 결혼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세르게이는 결혼식에 찾아가 로만과 단둘이 있는 자리에서 지금이라도 자신과 함께 떠나자는 제안을 한다. 하지만 로만은 자신의 이미 자신과 루이자 사이에 아이가 생겼다며 거절했고, 세르게이는 처절하게 비를 맞으며 로만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고자 마음을 먹는다. 그러나 로만은 사실 세르게이를 잊지 못했고, 모스크바로 일부러 발령받아 그를 만나러 간다.

 

본 글의 말머리에는 사랑은 너무나 크고 다양하다는 말이 있다. 왜냐하면 사랑에는 단순히 에로스적인 사랑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세르게이와 로만의 사랑은 억압받고 박해당하였으므로 다른 사랑 이야기보다 더 안타깝고 가슴 아팠지만, 그만큼 루이자가 안쓰러웠다. 그는 사랑하는 남자에게 가장 1순위로 사랑받지도 못했고, 그가 가장 믿고 친하다고 생각한 친구는 자신의 남편과 내연 관계였다. 세르게이는 루이자와의 관계, 그리고 둘 로만과 루이자 사이의 아이를 생각하여 선을 그으려 했지만 로만은 그 무엇도 놓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의 자기중심적인 행동에 결국 세르게이와 루이자 두 사람에게 지우지 못할 상처를 안기고 만 것이다. 정말 두 사람을 사랑했다면, 적어도 세르게이를 사랑했다면 둘의 사이를 갈팡질팡해선 안 됐다는 생각이 든다.

 

<파이어버드>는 사람의 가장 복잡한 감정인 사랑을 깊고 정열적으로 다룬다. 영화 안에는 모든 희로애락이 담겨 있고, 이성애가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영화계에 연출적으로, 각본적으로 잘 만들어진 소중한 퀴어 영화이기도 하다. 끝끝내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한 그들의 결말에 뒷맛이 씁쓸하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더욱 깊은 여운을 주는 이야기였다.

 

-관객 리뷰단 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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