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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쓰는 영화비평 2] 태풍이 다가온다 - 이지은

SPECIAL 기획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0. 2. 23.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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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2019년 11월과 12월 동안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에서 진행한 "처음 쓰는 영화비평" 워크숍 수강생의 글을 모은 비평집에 실린 글입니다.


<링링>(윤다영, 2019)

태풍이 다가온다

/ 이지은

 

왜 진아 혼자만 아버지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일까? 첫 번째 장면. 낚시터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는 가족이 등장한다. 계속 기다리며 짜증이 난 다른 가족들과 달리 진아(김주아)는 물에 직접 들어가 물을 휘저어 본다. 오직 진아만이 아버지의 세계에 관심을 표현하며 직접 경험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진아의 관심의 근원은 아버지의 부재가 주는 불안정감이다. 아버지가 가장의 역할에서 멀어질수록 가족들의 분위기는 불안정해진다. 가족들은 아버지를 존경 또는 애정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어머니는 쉬는 날 낚시터에 가는 아버지를 비난하며 다른 집안 가장과 비교한다. 게다가 짜증이 난 마음을 진아에게 화풀이한다. “네 아버지를 닮아서 이렇게 날 힘들게 하니?” 이 대사는 집안의 주체가 가부장임을 은연중에 강조할 뿐 적극적인 문제해결에는 관심이 없음을 보여준다. 편안함을 느껴야 하는 가정 안에서 진아의 내면을 흔드는 외부 원인의 정점에는 아버지가 있다. 진아만이 과감히 아버지의 세계에 들어가 자신을 힘들게 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결국 진아는 아버지 서랍 속 다이어리에 적힌 링링을 보게 되고 아버지의 바람을 의심한다. 진아는 가족의 해체를 막기 위해 움직인다. TV 속 일기예보는 태풍의 상륙을 예고하며 거대하고 불길한 기운이 진아의 가족을 향해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한다.

 

진아는 링링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한 추리와 추격을 시작하지만 쉽지 않다. 가족들에게도 도움을 요청하고 싶지만 아무도 진아에게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때 친구가 등장한다. 진아의 친구 또한 가족의 불륜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상황이다. 진아는 친구와 서로 고민을 털어놓으며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내려놓는다. 친구는 링링을 듣고 태풍의 이름을 떠올리며 얘기한다. “태풍이 왜 여자 이름인 줄 알아? 태풍이 여자처럼 온순해져서 부드럽게 지나가기를 바란 거지. 너 같으면 조용히 넘어가겠냐?” 아마 앞으로 다가올 태풍은 절대로 온순하지도 순순히 지나가지 않을 것이다.

 

링링의 실체는 태풍이다. 아버지는 낚시터에서 자위를 하고 있다. 아버지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낚시터로 향했던 것이다. 자위는 태풍까지 뚫고 가서 해야 할 만큼 삶에 필수적인 행동은 아니다. 또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야 할 주말에 자신의 욕구만을 채우는 것은 가장이 할 행동이라고 할 수 없다. 아버지는 가족을 위한 행동은 거의 하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 그곳에 가족을 끼어 맞춘다. 다시 첫 번째 장면. 낚시터 여행도 아버지 자신만 즐길 뿐 가족들은 지쳐있다. 아버지는 추억을 남기기 위해 가족들의 뒷모습을 찍는다. 그들의 표정을 보기보다 아버지가 원하는 장소에 있는 그들을 보고 추억으로 간직할 뿐이다. 진아의 가족은 그동안 평화로워 보였지만 심연에는 위태로움을 가지고 있었고 태풍을 만나 개인의 욕망이 폭발하며 무너지게 된다.

 

가부장제는 자연이 정한 법칙은 아니다. 여성이 온순하고 부드럽다는 것도 자연적인 법칙은 아니다. 태풍이라는 거대한 자연은 가부장제 아래 아슬아슬하게 평화를 유지하던 가족의 사회적 법칙과 제도를 날려 보내고 개인의 욕망만을 드러낸다. 벼락을 맞아 죽은 아버지. 아버지의 부재가 주는 불안정감은 사회가 만든 법칙에 불과하며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은 무기력하다. 진아는 아버지의 부재가 주는 불안정감과 정면으로 맞이하고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마지막 장면. 진아는 찢어진 치맛단 사이로 들어오는 남자들의 시선이 불편하다. 유골함이 깨졌다. 아버지의 부재가 주는 불안정감을 갑자기 완전히 털어버릴 수 없을 것이다. 손에는 재가 묻어있고 그 손으로 만진 치맛단에는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의 이름으로 지은 태풍이 절대 조용히 지나가지 않는 것처럼 변화의 흐름은 시작됐다. 태풍이 다가오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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