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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쓰는 영화비평 2] 여행의 끝과 시작 - 이지은

SPECIAL 기획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0. 2. 23.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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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2019년 11월과 12월 동안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에서 진행한 "처음 쓰는 영화비평" 워크숍 수강생의 글을 모은 비평집에 실린 글입니다.


<우리집>(윤가은, 2019)

여행의 끝과 시작

/ 이지은

 

우리 밥 먹자, 얼른 든든히 먹고 진짜 여행 준비하자.” 하나(김나연)는 그동안 기다린 가족여행을 떠나지 않고 유미(김시아), 유진(주예림) 자매와 해변을 다녀온다. 그리고 돌아온 하나는 진짜 여행을 준비하자고 한다. 하나가 가족과 떠나게 될 진짜 여행은 무엇일까?

 

하나의 가장 큰 고민은 다툼이 잦은 부모님이다. 하나의 집은 편안하고 머물고 싶은 공간보다는 갈등이 일어나는 곳에 가깝다. 하지만 하나는 집과 가족을 모두 소중하게 여기고, 지키고 싶다. 하나는 어릴 적 갔던 여행을 떠올린다. 거실 탁자 위 바닷가 앞에서 찍은 가족사진은 하나가 기억하는 행복했던 순간이다. 하나는 가족여행을 통해 부모님의 관계를 회복하고 집을 지키고 싶다.

 

하나는 집 안에 머무르기보다 고민을 해결하고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장소로 길을 나선다. 가족 식사 시간을 위한 장보기, 가정의 불화를 상담하는 대신 도서관에서 책 찾아보기 등 작은 여행을 통해 채워지지 않는 결핍을 메꾸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 길 위에서 하나는 유미와 유진을 만나게 된다. 하나는 가족에게서 찾을 수 없는 안정감과 소속감을 타인인 유미의 집에서 얻게 된다.

 

하나의 노력 끝에 가족여행 일정이 잡힌다. 도시락을 열심히 싸고 여행을 준비하지만, 그 끝에는 행복한 가정이 아닌 부모님의 이혼이 예정되어 있다. 절망과 충격에 충동적으로 집을 나간 하나는 유미와 유진에게 간다. 자신을 필요로 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곳을 향해 간다. 하나는 가족여행 대신 유미와 유진을 위해 여행을 제안한다. 그리고 떠난 진짜 여행길에서 하나는 예상치 못하게 그동안 숨겨온 진심과 현실을 마주친다.

 

보리 해변에도 도착하지 못하고 핸드폰도 방전된 상황에서 유미는 하나에게 화를 낸다. “집에서 기다렸으면 됐잖아! 이게 뭐야?” 하나도 억울하다. 유미에게도 가족들에게도 하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피하지 않는다. 그런데 항상 하나만 마음을 졸이고 눈치를 본다. 하나는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왜 나한테만 그래?” 하나는 행복과 정답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여행의 끝에 오히려 진심을 얘기하고 깨닫는다. 화를 냈어야 했던 모든 상황에 인내하고 고민을 털어놓지 않고 떠돌기만 했던 자신의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하나는 모든 것을 다 자신이 책임질 수 없고 그것을 감당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정점은 하나와 유미, 유진이 상자로 만든 집을 부수며 하는 말이다 이런 쓸모도 없는 건 왜 만들어가지고 진짜!” 환상이 담기고 현실을 부정하는 상자 집은 여행에서 쓸모없는 무거운 짐에 불과하다. 여행은 다시 현실로 돌아와 지낼 용기를 얻는 잠시의 휴식이다. 가족여행 한 번으로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는다.

 

우연히 누군가 버리고 간 텐트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는 하나와 유미, 유진은 편하고 즐겁다. 텐트 안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세 사람은 이제 어느 장소에 있더라도 이 기억을 떠올리며 쉴 수 있다. 아이들은 말한다. “여기 우리 집 할까?” 서울로 돌아온 하나와 유미, 유진은 이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유미는 하나에게 묻는다. “언니는 계속 우리 언니 해줄 거지? 우리가 이사 가도?” 하나는 답한다. “당연하지 언니는 계속 너희 언니 할 거야.” 혈연을 넘어선 새로운 가족이 하나에게 생긴다. 하나는 여행을 통해 진심으로 원했던 가족을 갖게 된다.

 

집으로 돌아온 하나는 요리책을 살펴보며 그동안 자신의 노력과 아픔을 추억한다. “우리 밥 먹자, 얼른 든든히 먹고 진짜 여행 준비하자.” 가족들은 하나의 등장에 놀라지만 당사자는 평온하다. 하나의 진짜 여행은 어쩌면 가족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 아닌 서로가 헤어질 준비를 하는 과정이 될 수도 있다. 하나는 이제 상황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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