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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리뷰: 생활비가 빠듯한데 보일러를 아껴 써야 할까?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11. 5.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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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리뷰

생활비가 빠듯한데 보일러를 아껴 써야 할까?

 

평일 오후 아파트 옥상에서 정희(원향라)와 영태(박송열) 부부가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한다. 평일인데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이 지나가지? 직장에 안가나? 부부는 사람들이 궁금하다. 영태는 얼마 전 배달 노동을 하다가 오토바이 사고가 나서 일을 쉬고 있다. 정희는 강사 지원서를 보내긴 하지만 고용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부부는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실직 상태다. 대출 이자를 못 내거나, 식구들이 모두 모인 엄마 생신에 다른 자식들이 용돈을 챙겨드릴 때 자신들은 빈손인 무안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일상을 파고드는 불안함 속에서도 부부는 꼿꼿하다. “이번 달 생활비가 모자랄 것 같은데, 보일러를 아껴 쓸 걸 그랬나라고 말하는 정희에게 아니, 우리 삶의 질도 중요하니까라고 말하는 영태.

 

삶은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어딘지도 모르게 부단히도 흘러만 간다. 정희와 영태는 걷고 또 걸으며 일상의 이채로운 감각을 일깨워준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비가 오면 위험하니까 오늘 일은 쉬는 게 좋고. 어찌하지 못하는 삶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부부는 정주하지 않고 의연하게 하루를 단단하게 살아간다. 각박한 세상에 두 부부는 말없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서로를 부른다. 마음이 숭고할수록 타인에게 귀 기울이게 된다. 정희와 영태는 맨날 보는 얼굴인데도 서로의 의견에 동의하거나 존중한다는 뜻으로 악수를 건넨다. 그리고 말없이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감정을 전달하기도 한다.

 

우리는 교환경제 속에 살고 있다. 상품과 서비스에는 가치에 따라 가격이 매겨진다. 그리고 화폐를 매개로 재화를 교환한다. 대부분의 가치가 화폐로 결정되는 시대이지만, 정희와 영태는 돈으로 매길 수 없는 것에 더 골몰한다.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상호교환가치다. 영태는 명수(신원우)에게 카메라를 빌려준다. 믿는 선배이고, 처지가 비슷해서 거의 무상으로 빌려준다. 정희는 탐탁지 않지만 영태의 마음을 알기에 기다려 준다. 카메라를 빌려 간 명수가 영태에게 면접 자리를 알선해 준다. 영태는 면접을 보러 가지만, 일과는 무관한 질문을 하는 면접관이 마뜩잖다. 연락을 받지 않던 명수는 영태의 카메라를 제때 돌려주기는커녕 주인 허락도 없이 팔아버린다. 영태와 명수가 겪은 일에서 알 수 있듯이, 교환에 있어 모든 가치는 항상 등가 관계를 갖지 않는다. 상대에 대한 신뢰와 선의의 가치는 화폐와 달리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비등가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오늘도 버거운 일상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부부. 영태는 돈을 쉽게 벌 리가 없지라고 말한다. 정희는 돈 버는 게 무섭다라고 말한다. 정희와 영태는 커다란 물질적 욕심도 부리지 않는다. 비싸서 자주 못 사 먹는 회를 식탁에 올려놓고, 잔을 기울이며 이야기 나누는 어떤 근사한 저녁을 기대할 뿐이다. 박송열 감독은 영태에 대해 “‘네가 잘못했으니 나한테 사과해라고 말한 뒤 진짜로 사과를 받으면 괜히 미안해지고 마음 약해지는인물이라고 말했다. 인간의 선한 가능성과 서로 돕고 살아가야 하는 게 삶이라고 믿는 정희와 영태에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사람들은 부부의 선의를 이용하거나, 배신하거나 괴로움을 준다. 하지만 부부는 괴로움을 느꼈다고, 상대방에게 괴로움을 주지 않는다. 신산한 삶 가운데서 포기할 수 없는 가치를 끝끝내 지켜냄으로써 구원을 받는다. 그들이 경제적 어려움에 휘둘리지 않고 품위를 잃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의 엔딩 크레딧은 박송열 감독과 원향라 배우의 이름으로 가득하다. 실제 부부인 두 사람은 영태와 정희 부부를 연기한 데다가, 프로덕션의 거의 모든 과정을 도맡아 진행하였다. 제작지원이나 투자에 기대어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셀프카메라 방식과 가내수공업에 가까운 제작 시스템으로 영화를 완성하였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이야기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제작 시스템의 규모 안에서 정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부부의 일상 세계를 창조하였다. 이런 방식은 현실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영화 만드는 일을 통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선언에 가깝다고 느낀다.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태도를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의 정희와 영태라는 인물에 투영한다. 낮과 밤이 오는 것은 막을 수 없고, 더우면 겉옷을 벗으면 되고, 비가 오면 우산을 꺼내 쓰면 된다.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의 한계는 받아들이되 자신이 포기할 수 없는 가치는 기어이 지켜낸다. 오늘 하루도 단단하고 의연하게 살아가는 우리들.

 

-관객 리뷰단 장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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