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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과 달> 리뷰 : 이별 뒤에 남겨진 이들이 알게 되는 것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11. 1.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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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과 달>

이별 뒤에 남겨진 이들이 알게 되는 것

 

사랑하는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남겨진 이에게 낫기 어려운 깊은 상처를 남기기 마련이다. 민희(유다인) 역시 죽은 남편 경치(정영섭)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그의 더 많은 기억이 서린 고향 제주로 향한다. 한편, 혼자 키운 아들이 곧 성인이 되는 경치의 첫사랑 목하(조은지)는 헤어진 지 오랜 시간으로 이미 경치에 대한 미련 따위는 손톱만큼도 남지 않았을 것 같지만, 경치와의 추억이 깃든 장소에 꽃과 나무를 가꾸는 것으로 보아 여전히 경치를 잊지 못하고 있다. 이미 떠난 자를 잊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의 삶 속에 꽁꽁 잡아 둔 두 여인은 마치 그 남자의 기억만이라도 독차지하려는 듯 치열하게 다투고, 그 다툼은 경치가 남긴 유산과도 같은 목하의 아들 태경(하경)에 대해 마치 소유권 분쟁이라도 하듯 옮아간다.

 

두 여자의 입장이 모두 나름대로 이해는 된다. 민희의 입장에서 하필 서로 다투고 집을 나가서는 그 길로 세상을 떠나버린 경치가 자신에게 남겨준 것은 잘난 유품 몇 가지와 죄책감뿐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첫사랑에게는 결혼도 전에 아이를 안겨주었다. 경치가 애 낳는 걸 극도로 싫어해 그로 인해 다툼의 원인이 되었던 민희에게는 배신감이 밀려올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민희는 갈등하고 방황한다. 사랑의 결실로 경치와 결혼에 이르렀으나 막상 그가 죽은 뒤에 남은 사랑이라는 감정은 더 이상 확인할 수 없는 추상적이고 일방적인 추정에 불과할 뿐, 현실에서 죽은 이의 속마음을 확인하고 증명할 방법이 없다. 그런 차에 사랑의 육화 된 결실로 아들을 소유하고 있는 목하에게 당신은 다 갖고 있잖아, 나는 하나도 없는데라고 절규하는 모습을 부질없는 집착이라 비난하기는 어렵다.

 

목하는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경치와 헤어졌고, 혹시라도 경치의 부모님이 알면 아이를 빼앗길까 봐 노심초사하며 홀로 아이를 키우고 살아왔다. 정황상 경치와의 이별은 받아들였으나 경치를 향했던 마음을 완전히 거두었다기보다는 그와의 아들 태경을 대체자로 세워 그 사랑을 대신했을 가능성이 크다. 목하가 태경의 이성 교제에 보이는 반응은 더 없이 쿨해 보이지만 그의 진로와 관련해서는 보수적인 시각과 엄격한 태도를 보이는 것에서, 아들의 실패를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물론, 목하의 이러한 심리는 보편적인 부모의 그것일 수도 있으나, 사랑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서 적어도 이것만은 잃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로 쪽이 더 가까워 보인다. 그런 와중에 경치를 차지했던 민희가 나타나 태경의 지분을 차지하려 하거나 태경과의 관계에 개입하려 하니 목하가 분노를 터뜨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렇게 민희와 목하는 각자의 입장에서 과거에만 존재하는 경치를 빼앗기 위해 각자 태경의 양팔을 잡아당기듯 다툰다. 마치 태경만 차지하면 경치를 독점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듯한 두 여인은 점점 첨예한 대립으로 향한다. ‘가슴이 뻥 뚫린 채로 태어났다는 태경의 태생적 결핍은 경치의 부재에 상처받은 또 다른 남겨진 자이지만 그의 마음까지 헤아리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그들의 다툼이 장시간의 팔씨름(머리끄덩이 잡기가 아닌 팔씨름이 맞다!)을 거치며 분위기가 반전된다. 대결을 위해 마주 앉은 두 사람의 대화는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고 민희는 태경이 잡아 온 물고기를 놓아주듯 과거라는 부질없는 집착에서 자유로워진다. 한 남자를 사랑했던 두 여자는 떠난 이를 낮에도 같이 바라볼 수 있는 달로 여기기로 한 듯하다. 이로써 두 사람도 자유를 얻고 태경도 자신의 길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이 이상한 영화는 드라마인 듯, 코미디인 듯 엎치락뒤치락하며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진지하고 심각할 것이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실제로는 어처구니없고, 뜬금없이 웃기고, 심지어 뭔가 발랄한 느낌이다. 솔직하고 직접적인 표현들로 경쾌하고 재미있게 전개되는 영화를 보고 있자면, 포스터에서 미소를 머금은 두 여자들의 표정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관객 리뷰단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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