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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이스 인 러브> 리뷰 : 좋아하는 마음을 어떻게 미룰 수 있을까요?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10. 2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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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이스 인 러브>

좋아하는 마음을 어떻게 미룰 수 있을까요?

 

<아나이스 인 러브>는 아나이스의 연인들에 관한 영화다. 아나이스는 얼마 전 라울과 헤어졌다. 라울과 함께 살았던 곳에 혼자 남게 된 아나이스. 지인을 축하해 주는 자리에서 우연히 다니엘을 만나게 된다. 다니엘은 아나이스에게 첫눈에 반한다. 아나이스는 다니엘과 만나지만, 깊은 관계를 지속하지는 못한다. 그러다 아나이스는 다니엘과 동거하는 에밀리에게 자꾸만 마음이 끌리게 된다. 이 영화는 아나이스가 상대방에게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유를 설명하기보다, 사랑에 빠진 아나이스의 감정과 욕망을 표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아나이스는 늘 사랑을 찾아 뛰어다닌다. 삶에서 오로지 사랑만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집세가 몇 개월이나 밀려서 집주인이 집에 찾아와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나이스를 한참이나 기다린 집주인에게 헤어진 라울 이야기를 하고, 한 침대에서 오랫동안 지낸 부부에게도 사랑이라는 게 존재하는지 궁금해한다. 논문을 지도하는 교수에게도 마찬가지다. 교수는 학회 진행 업무를 아나이스에게 맡긴다. 하지만 아나이스는 귓등으로 듣고 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에밀리에 대한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는다. 하울의 말처럼 아나이스는 불도저처럼 보인다.

 

삶은 내가 계획한 대로 움직인다기보다 세계가 만들어놓은 운명의 길을 따라가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때때로 든다. 그럴 땐 무언가를 해 낼 수 있다는 의지를 한 발자국 미뤄두고 나의 욕망과 감정을 들여다본다. 아나이스처럼. 아나이스는 무모할 정도로 자기가 원하는 사랑을 향해 돌진한다. 집세는 몇 달째 밀렸고, 논문은 완성하지 못하고 있고, 엄마는 암이 재발하였고. 이런 불안한 현실에서 아나이스에겐 사랑이라는 감정은 사치가 아니다. 오히려 아나이스를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 된다.

 

자신의 집은 외국인 관광객에게 임대해주고, 다니엘의 별장으로 찾아가는 아나이스. 아나이스는 다니엘과 에밀리가 같이 살고 있는 공간에 처음 들어가게 된다. 아나이스는 에밀리를 알지 못한다. 다니엘이 전화를 하고 있는 사이에, 아나이스는 비에 젖은 머리를 말리려고 드라이기를 찾으러 욕실로 간다. 에밀리의 립스틱을 집어 든다. 아나이스는 에밀리의 화장품과 흔적을 보고 에밀리를 상상한다. 그리고 미묘한 감정을 느낀다. 어떤 공간은 그 사람의 얼굴을 떠오르게 한다. 다니엘은 레바논으로 떠난 아들의 방으로 데려가 아나이스와 사랑을 나누려고 한다. 다니엘은 아나이스를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에밀리와 함께 사는 지금의 삶을 변화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현관 크기가 아나이스 집 전체만 한 별장에서 다니엘은 창고처럼 쓰고 있는 좁은 방 크기만큼만 아나이스에게 내어준다. 다니엘의 삶에 아나이스가 차지하는 비중이다. 아나이스는 참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온다.

 

아나이스는 에밀리에게 점점 빠져든다. 동경하는 에밀리에게 자신을 투사하여 동일시하는 것으로 시작된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에밀리에게 느끼는 감정이 시작된 계기가 아나이스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보고 싶고, 어루만지고 싶고, 껴안고 싶은 지금의 감정이 더 중요하다. 욕망 앞에서 너무도 순수한 사람.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상대방에게 약점을 보인다 하더라도, 진심을 들키게 된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시선마저도 아나이스의 욕망을 미루지 못한다. 아나이스는 끊임없이 에밀리를 향해 달린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

 

아나이스는 에밀리와 바닷가에서 사랑을 나눈다. 이 장면은 다니엘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안정된 삶을 지키기 위해 아나이스와 사랑을 나누기 위해 좁은 방으로 이끌었던 것과 대조된다. 드넓은 백사장과 해변에서 아나이스와 에밀리는 오로지 자신들의 감정에만 집중한다. 사랑은 지속적이라기보다, 순간적인 것에 가까운 것. 익숙하고 편안하기보다, 영감과 자극을 주는 것. 아나이스와 에밀리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후 20일 동안 만나지 못한다. 에밀리는 사랑의 정열을 짧게 느낀 것으로 만족하고, 그 감정이 금세 사그라들까 봐 두려워, 사랑하기를 멈춘다.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겨두기를 바란다. 주저하는 에밀리를 향해 아나이스는 다시 한번 손길을 내민다. 좋아하는 마음을 어떻게 미룰 수 있을까요?

 

-관객 리뷰단 장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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