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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 이제는 정말, 안녕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10. 1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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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이제는 정말, 안녕

 

안노 히데아키는 또 한 번의 <에반게리온 시리즈>를 통해 무엇을 전달하려고 한 걸까? 극장에 입장하면서 떠오른 의문은 극장 문을 나선 지금까지 해소되지 않는다. 소위 구판(舊版)이라 불리는 90년대 후반의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극장판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서 보여준 결말과 2007년부터 시작하여 14년의 대장정을 마무리한 신판(新版)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4부작(, , , 다카포)이 엮어낸 이야기가 담고 있는 내용은 동일하다 보아도 무방하다. 하지만 관객들은 이카리 겐도의 인류보완계획을 그의 아들 이카리 신지가 저지함으로써 세상을 멸망으로부터 지켜낸다.’라는 이야기의 끝을 알고 있음에도 새로운 세기에 극장으로 향하였다. 이는 감독 안노 히데아키가 에반게리온을 통해 선사하는 새로운 무언가와 해소되지 못한 과거의 사건들에 대한 실마리를 얻기 위함에 있을 것이다.

 

한껏 기대를 품었건만 마지막 영화를 관람하고 난 후, 지루한 여정 속에 뜻하지 않은 숙제를 떠안은 피로감이 밀려온다. 빗대어 보자면, 즐거운 여행을 마치고 함께 한 동료와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나누었는데, 그 동료가 갑작스레 발을 돌려 자신에게 다가와 다시 처음부터 이 여행을 시작해보자 제안하는 듯한 당혹스러운 상황에 놓인 느낌이다. 크게 마음을 먹고 또 한 번의 여행길에 올랐으나, 감동과 기대는 예전에 미치지 않는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작화의 완성도가 상승했다고는 하지만, 색채의 뚜렷함과 다채로움이 발산할 수 있는 매력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였다. 심지어 에반게리온 기체와 전함들을 뒤덮은 명료한 색감은 그 정도가 과하여 촌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CG를 사용한 표현에서는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에디셔널 임팩트가 발동되는 장면은 가히 충격이다. (구작의 오마주로 보이는) 레이의 형상을 한 거대한 에바 이매지너리가 그 얼굴을 화면에 가득 채울 때 관객은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 불쾌한 골짜기) 현상을 경험한다. 발전된 CG 기술로 구현된 실제 인간인 듯 인간이 아닌 그 형체와 더불어 그 주위를 날아오르는 수많은 목이 잘린 나체들은 기괴함과 불편함만 흩뿌린다.

 

작화와 CG 같은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아쉬움은 서사에 비하면 작은 부분이다.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의 대미를 장식해야 마땅할 이번 작품은 앞선 시리즈인 큐(Q)에서 무자비하게 벌려놓은 사건의 전말(소위 말하는 떡밥)을 회수하는데 급급하다. 그리하여 감독은 등장인물들 특히, 빌레의 조직원들에게 해설사의 역할을 부여한다. 네르프의 인류보완계획을 저지하기 위해 결성된 반() 네르프 조직 빌레는 자신들의 정체성과 당위성을 주창하기보다 네르프의 계획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기 위해 존재하고 있다. 감독이 구축한 세계관을 안내하기 위해 등장인물들을 활용하고 있기에 그들의 존재감과 개성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주인공 삼인방(신지, 아스카, 레이)의 고뇌와 성장을 느낄만한 장면들도 이러한 세계관 설명 앞에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 신지는 그저 위축되어 있고, 아스카는 신지에게 화만 내고, 레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얼굴만 지을 뿐이다. 이러한 혼란 속에 서드(3rd) 임팩트로 끝난 줄 알았던 세계멸망의 위기는 포스(4th) 임팩트와 애디셔널(additional, 추가의) 임팩트까지로 이어진다. 이쯤 되고 나니, 감독이 진심을 다해 세상의 정화(혹은 멸망)를 기대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이다.

 

어찌어찌하여 신지가 레이의 죽음(LCL)을 계기로 각성하여 다시 초호기에 올라 마이너스 우주로 날아간 겐도와 13호기의 계획을 무산시키고, 겐도에게 사랑의 감정을 깨닫게 함으로써 세상을 멸망으로부터 구해낸다. 하지만 감동이 밀려와야 할 자리에는 어쨌든 결말을 보았다는 안도감만이 자리한다. 어떻게든 끝을 내야 한다는 감독과 제작진의 압박이 서사의 허술함을 메꿀 만한 여유를 주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뒤이어 밀려온다. 사실 안노 히데아키가 에반게리온의 세계관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바는 명백하고 간결하다고 생각한다. 너와 나 그리고 우리라는 관계 속에서 만들어가는 사랑과 신뢰. 그리고 이러한 관계를 긍정하기 위한 자기 자신에 대한 인정. 이토록 단순하고 아름다운 주제를 이처럼 복잡하고 다난한 세계관을 무대로 이야기하다니, 이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일 것이다. 다만, 처음에 맛보았던 안노 히데아키의 세계와 에반게리온의 강렬하고도 심오한 매력에 비해 새로이 구축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번 에반게리온 시리즈는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영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애매모호함만 남은 에반게리온과 이제는 정말이지 안녕을 말하고 싶다.

 

-관객 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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