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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리그> 리뷰 : 여전히 남은 인생의 후반전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10. 15.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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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리그>

여전히 남은 인생의 후반전

 

누군가에겐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꼭 이루고 싶은 일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지긋지긋하고 벗어나고 싶은 굴레일 수 있다. 전자에 해당하는 일이라면 누구든 생업과는 별개로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불타는 열정을 발휘할 것이다. 반대로, 후자에 해당하는 일에는(어쩔 수 없이 그 일을 계속 하고는 있지만) 기회만 온다면 당장에 일을 때려치우리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대충 시간만 때우기 십상이다. 주어진 여건에 감사하며 현실에 충실할 것이냐, 아니면 자신만의 꿈을 좇으려는 열정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할 것이냐. 만약 현실엔 만족 못하면서 허황된 꿈에 허우적댄다면 그건 최악이다. 실로 정답이 없는 보통사람들의 영원한 숙제인 이 소재는 수많은 성장영화에서 사골처럼 우려내고 있다. 그럼에도 다양한 시각과 방법을 통해 고민을 거듭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유한한 삶을 보다 값지게 만들고 싶은 바람의 자연스러운 발로일 것이다.

 

그 흔한 우리들의 현실 모습을 축구라는 친숙한 소재에 젊은 감성을 입혀낸 <선데이 리그>는 깨알 같은 유머 속에 광대한 깨달음이 아닌, 소소한 변화와 성장에 대한 얘기를 꾸깃꾸깃하게 내민다. 일단, 영화의 오프닝에 쓰인 메인 테마곡으로 그룹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의 독수리를 선택한 것부터 예사롭지 않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라는 쿠바의 세계적인 음악 그룹에서 이름을 따온 이 그룹 자체가 나약한 사나이들의 식어버린 청춘과 그로 인한 궁상에 치를 떨던 아티스트 조까를로스를 구심점으로 그의 의지에 동의하는 여러 음악인이 모여 있는 정열의 누아르 마초 밴드를 표방하고 있다. 재미를 추구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화두를 노래하는 밴드와 이 영화의 결이 매우 닮았다. 게다가 노래 독수리의 가사 또한 영화 내용과 찰떡같이 들어맞으니 감독이 음악의 선정까지 치밀한 계산을 했을 것이다. 물론, 꿈보다 해몽일 수도 있다.

 

진작에 국가대표의 꿈을 포기하고서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축구판을 떠나지 못하고 그 언저리에서 작은 부스러기나 주워 먹고 버티듯 사는 준일(이성욱). 그의 시계는 부상으로 선수를 그만두던 그 날에 멈췄고, 모든 문제는 그때 그 부상 탓으로 돌리며 좀처럼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가족에게도 축구 클럽에도 책임감과 열정 같은 걸 찾아볼 수 없으니 양쪽 모두에서 그가 존재할 이유에 회의를 품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런 준일에게서 뭐 하나라도 배워보겠다는 열정만 가득할 뿐 현실은 미천한 실력인, 별 볼 일 없는 아저씨들의 만남은 서로에게 나약한 껍질을 깨고 세상에 나서는 계기를 만든다. 인생의 전반전을 이미 아쉬움 가득하게 살아냈지만 축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후반전을 준비하는 철수축구단의 모습은 준일에게 잊고 지냈던 축구에 대한 열정을 되살리고, 다시 준일의 그 열의가 그들의 깊은 패배의식과 열등감을 깨뜨린다.

 

다행히 영화가 이러한 준일의 변화를 핑계로 행복한 결말로 직진하는 안일하고 뻔한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 이미 너무 높게 쌓아버린 그의 잘못된 시간들에 대한 청구서는 가족의 법적인 해체로 냉정하게 이어진다. 자신이 어릴 때 어머니께 아버지와의 이별을 종용했던 기억을 망각한 대가가 부메랑으로 본인에게 돌아온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준일은 이 시점부터 오히려 가장 밝고 생기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의 발목을 단단히 잡고서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만들던 과거라는 족쇄를 드디어 끊어내고 미래를 향해 걸음을 내디뎠기 때문이다. 물론, 살다 보면 또다시 깊은 태클이 들어와 쓰러지고 다치기도 하고, 때론 패배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 준일은 웃으며 벌떡 일어나 옷에 묻은 흙을 툭툭 털고 다시 힘차게 뛸 수 있는 유연하지만 단단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는 걸 알기에 그의 앞날이 한껏 기대된다.

 

전반전의 졸전으로 이미 승패가 결정됐다고 낙담하며 후반전을 포기할 것인가? 패배의 두려움에 휩싸인 철수축구단을 향해 충분히 역전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하며 가던 길을 돌리는 준일의 모습이 우리에게 말한다. 아직 열정을 불태울 인생의 후반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관객 리뷰단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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