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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미투> 리뷰 : 들어야 하는 목소리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10. 14.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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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미투>

들어야 하는 목소리

 

실로 험난한 세상이다.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시대라고는 하나 아직도 약자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제 속의 말을 꺼내지 못한 채 묻고 살거나, 속 시원히 꺼냈으나 폭력에 바스라져 간다. 제 의견만큼이나 혐오 역시 거리낌 없이 표출되는 사회이기에 더더욱 <애프터 미투> 영화는 한 구석에서는 환영받지 못하는 영화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 사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그들이 하는 말에 귀 기울여주어야 한다. 가해가 또 다른 피해를 낳지 못하도록, 피해가 또 다른 피해를 낳지 못하도록, 적어도 내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 중 하나라면 직접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 관심을 주어야 한다.

 

<애프터 미투>는 그런 영화다. 한창 불붙었었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며 한차례 폭풍이 휘몰아친 후 그 후엔 어떻게 고쳐 나가야 하는가에 대해 말해주기 위해 네 명의 감독이 모였다. 각기 다른 개성과 표현법으로 다른 듯 비슷한 이야기 네 개가 한 영화에 담겼다. 85분이란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이 들어가 있고, 또 다양한 이야기들이 모여 있다.

 

"여고괴담"은 서울 노원구 용화여고에서 일어난 '스쿨 미투' 과정이 경험자들의 목소리로 담겨 있다. 연기를 하는 배우도, 해당하는 상황을 묘사하는 장면은 없다. 오직 그림과 사진, 그리고 목소리가 극을 이끌어간다. 잘 보이지도, 잘 보이지 않지도 말고 그냥 보이지 말라는 소문이 만든 '괴담'은 학생들의 목소리가 모이고 모여 끝끝내엔 괴담 뒤에 있던 사람을 끌어낸다. 한솥밥 먹는 가족이나 마찬가진데 그러고 싶냐며 묻으려는 학교에 학생들은 'With you'라는 해시태그로 연대하고 방관을 멈춘다. 누구 하나가 용기를 내니 그 불은 순식간에 번져 학교를 뒤덮었다. 물론 용기를 낸 학생들은 이후 몰려올 수도 있는 후폭풍에 섬뜩함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같은 반 친구가 당했는데 모른 척했다는 것이 더 죄책감이 컸다고 말한다. 'With you'라는 글귀는 우리가 일상에서 겪었던 일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있음을 알리는 일종의 죄책감의 표출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용기 덕에 피해자는 더 이상 소문 뒤에서 홀로 아픔을 다스리지 않았고, 수년 동안 범죄를 반복해온 가해자는 교탁을 떠나게 되었다.

 

"100.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는 말 그대로 박정순 씨가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홉 살이란 어린 나이에 성폭력 피해자가 되었고, 현재 마흔아홉 살이 되었으나 자신이 당한 피해 사실을 털어놓기 시작한 건 9년뿐인 박정순 씨는 살기 위해 무던히 애쓰고 있다. 그는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노력했고 영상일기와 춤을 추는 방법으로 제 안에 있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타인에게 자신의 피해 경험을 내보이는 것은 자신이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차였다. 박정순 씨는 그가 태어난 고향이자 아직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이 현재의 자신을 좀먹게 하는 목포로 돌아가 저를 위해 말을 해보는 도전을 한다. 낡은 초가삼간으로 걸어가 준비한 마이크와 스피커를 연결해 대나무 숲에다 소리치는 그를 지켜보는 이는 아무도 없다. 오직 박정순 씨가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박정순씨는 가해자를 떠나지 못한 자신을 용서하고 아픈 자기 몸과 마음을, 살아가는 방법을 잊은 스스로를 용서한다. 저를 용서하는 박정순 씨를 비추던 장면은 전환되어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는 글귀가 화면을 덮었다가 사라진다. 박정순 씨는 멈춰 있던 자신을 재생하는데 성공할까.

 

"이후의 시간"은 반성폭력연대로 문화예술계에서 목소리를 냈던 송진희 작가와 남순아 감독, 마임 배우 이산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가 오롯이 있을 수 있었던 장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한 세 사람의 솔직담백한 말들이 인상적이다. 순전히 의지로 시작한 일은 누군가의 피해의 무게를 같이 느끼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저도 괴로웠고,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닫게 했다. 말하지 않는 게 분위기를 깨뜨리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금기가 풀리고 분위기가 전환되니 말하지 못했던 일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들은 그들과 함께하기 위해 하던 일을 중단하고 활동에 뛰어들었다. 그냥 작품을 좀 나중에 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활동가로서 이를 악물고 버틴 그들은 성폭력 사건 자체를 공동체가 다 같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말한다. 뒤엉킨 곳에 손을 뻗기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했지만 결국엔 닿았고, 지금도 뒤엉킨 문제를 함께 풀어가고 있다.

 

"그레이 섹스"는 앞의 세 이야기보다 더 깊은 얘기를 나눈다. 젊은 여성들이 남성과의 성관계 경험에서 있었던 일들과 그로 인해 어떤 불쾌감을 느꼈는지 토로하고 고백한다. 직접 얼굴을 드러내고 인터뷰를 한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는 그림으로 등장하거나 얼굴을 보이지 않은 채 속 이야기를 꺼낸다. 남자와의 관계에서 억지로 당했지만 이를 무마하기 위해 연애로 덮은 이야기,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자신을 성 욕구를 푸는 도구로 본 남자친구과 교제하며 받은 상처를 꺼낸 이야기, 서로 좋은 관계를 맺고 싶었으나 자신을 도구로 본 남자들을 보며 느꼈던 감정을 털어놓는 이야기, 관계를 허락하긴 했지만 그 때 당시 느꼈던 감정과 제가 처했던 상황이 교차되며 괴로워했으나 타인에게는 '결국 너도 섹스했잖아'란 대답을 들었던 이야기.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 솔직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였고, 당시 그들이 느꼈던 감정을 표현하는 그림들과 음향 효과가 인상 깊었다.

 

-관객 리뷰단 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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