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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지는 밤> 리뷰 : 이별, 그리움, 그리고 위로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10. 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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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지는 밤> 리뷰

이별, 그리움, 그리고 위로

 

좌우로 나뉜 두 영화 속 풍경이 지면을 맞대고 길게 펼쳐진 영화의 메인 포스터는 하나가 된 두 영화의 이미지를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김종관 감독의 1<방울소리>는 마치 달의 뒷면이 가질 법한 어둠과 스산한 느낌을, 장건재 감독의 2<달이 지는 밤>은 태양의 빛을 받은 달의 앞면이 연상되는 밝고 생기로운 느낌을 보여준다. 무주 산골의 달이 질 무렵이라는 소재에서 두 감독이 끌어낸 삶과 죽음이라는 화두를 각자의 방식으로 스크린에 풀어낸 이 한 편 같은 두 편의 영화는 언뜻 이질적으로 보이면서도 그 안에 공유하는 공통의 정서가 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

 

1<방울소리>에서 대사는 매우 절제되고 대신 회화적 이미지로 가득하다. 해숙을 연기하는 김금순의 섬뜩한 연기와 기괴한 분위기는 관객이 모든 감각기관을 곤두세우고 스크린에 빨려 들어갈 듯 집중하게 만든다. 그것은 공포물이나 잔혹물과는 다른 독특한 긴장감과 흡입력을 갖는데, 참으로 묘한 것은 대사가 없는 그만큼 관객에게 넓은 사유와 상상의 공간을 펼쳐 놓는다는 것이다. 다음에 늘어놓는 필자가 지어낸 이야기들이 마치 영화 속에서 실제로 봤던 것으로 착각될 만큼 상상의 가지를 치며, 영화의 서늘한 정서가 온통 마음을 사로잡는다.

 

해숙은 딸 영선(안소희)을 집에 남겨두고 떠났다. 남들이 손가락질하지만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게 해줬던 무당질도, 누추하지만 두 모녀의 몸과 마음을 뉘게 하던 보금자리도 다 버리고 떠났다. 삶의 그 어떤 행위도 모두 의미를 잃어버린 세상으로부터 그는 잊히기로, 그리고 그도 세상을 잊기로 했다. 그러나 정작 영선만은 보낼 수 없어 차라리 보지 않는 쪽을 택했다. 영선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홀로 남았다. 스스로 세상과 이별을 고했으나 영혼만은 차마 엄마와의 작별을 하지 못하고 머물러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해숙은 드디어 집으로 돌아와 딸의 흔적을 살피고 마지막으로 함께 하는 잠을 청한다. 달이 질 무렵에 일어난 그는 초를 켜고 방울을 흔들며 딸을 부르기 시작한다. 달이 지는 시간이라면 귀신도 물러가야 할 시간인데 그는 오히려 그 시간에 딸 영선의 영혼을 부른다. 아마도 이제는 영선을 완전히 놓아줘야 한다는 결심을 한 듯하다. 어렴풋이 영선의 혼이 보이기 시작하자 그는 집을 나서며 앞장을 선다. 홀로 남은 영선은 지난 추억을 떠올린다. 엄마와의 대화, 자신의 마지막 모습과 오열하던 해숙을 떠올리던 영선도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길을 따라나선다.

 

달이 지며 어둠이 걷히고 세상이 밝아오지만 불에 탄 만복 식당 앞의 거리는 오히려 더 서늘하고 쓸쓸하다. 각자 그 거리를 지나 해숙과 영선은 버스정류장에 나란히 앉는다. 해숙은 불쑥 죽은 나무 둘레에 핀 꽃 얘기를 중얼거린다. “죽은 건 죽은 거지. 그래도 그 꽃이 참 예쁘더라.” 해가 떠오르며 물러가는 어둠과 안개와도 같이 영선은 아무런 말도 없이 홀연히 사라진다. 이젠 해숙이 홀로 앉은 그곳엔 떠난 이와 남겨진 이의 그 끝 모를 아픔이 고요하고 짙게 내려앉는다. 마치 진혼곡인 듯 흐르는 첼로의 선율과 달도 없는 그믐밤과 같은 암전의 여운은 그 헛헛함과 처연함으로 스크린을 무겁게 채운다.

 

1부의 이야기가 마치 잠든 치킨집 사장이 꾸는 한여름 밤의 꿈인가 싶은 아련한 느낌을 남기며 이어지는 2부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는 더욱 모호하다. 민재(강진아)와 태규(곽민규)는 세상을 떠난 이들과의 조우를 경험한다. 하지만, 1부에서와는 사뭇 다르게 섬뜩하거나 서늘하지 않고 오히려 그리움과 따뜻함이 느껴진다. 때로는 우스꽝스럽고 뜬금없기까지 한 그리운 이들의 영혼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지금 내 곁에도 그 누군가가 사랑 가득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에 빠져들기도 한다. 1부에서 받았던 죽음과 이별에 대한 깊은 슬픔과 상처는 2부의 따뜻한 시각으로 위로받는다. 마음 한켠이 허전해지는 이 가을, 다 지난 이별의 기억이 되살아나도 자연스러울 이 가을, 그리움과 외로움에 위로를 건네는 영화를 만난다.

 

-관객 리뷰단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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