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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 리뷰 : 부디 나를 더욱 사랑하기 위한 아픔이었기를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10. 12.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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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

부디 나를 더욱 사랑하기 위한 아픔이었기를

 

승화(昇華), 영화 <성덕>을 관람하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이다. 승화란 사전적 의미로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는 일을 일컫는다. 덕후(팬을 지칭하는 다른 표현)의 아니, 성덕(성공한 덕후)의 삶을 누렸던 감독 오세연의 자전적 이야기에서 이토록 건설적인 단어가 떠오르다니, 낯설지만 신선하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연예인 성범죄 사건의 중심에 나의 우상이자 나의 오빠인 그가 존재하였다는 사실은 충격이라는 단어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런데 나의 스타(였던 누군가)를 향한 원색적인 비난으로 가득할 줄 알았던 영화에는 오히려 연대와 위로와 사랑으로 가득하다. 감독이 카메라를 들고 자신과 같은 동지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모든 장면은 나를 사랑하는 힘을 얻고, 그 힘으로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는 힘을 채우는 과정으로 느껴진다. 나의 추억과 사랑을 더럽힌 나의 스타(였던 누군가)를 향한 분노와 증오를 연료로 자신을 돌아보는 기폭제를 만들어 세상에 선보이는 감독의 단단하고도 굳건한 심지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는 감독이 누군가(혹은 무언가 또는 어딘가)를 찾아 나서는 여정으로 짜여 있다. 여느 추적(?) 다큐멘터리가 그러하듯 감독은 자신의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 나선다. 주목할 점은 감독의 물음표가 범죄자가 된 스타를 흠모해온 감독 스스로와 감독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 그녀의 친구들에게 찍혀 있다는 것이다. 카메라의 시선은 오롯이 그녀들이 그날 이후 어떤 변화를 맞이했는지에 향해 있다. 나의 별이었던 그들이 벌인 추악한 행위를 마주해야만 했던 한때의 열성적인 팬들은 더 이상 그들을 오빠라고 부르지 않는다. 대신 그들이 벌인 범죄에 대한 무자비한 비판과 경멸에 찬 눈빛만을 건넨다. 팬들의 사랑으로 거머쥔 부와 권세로 여성의 권리를 함부로 짓밟고 성적 유린을 일삼았던 그들에게 남은 애정 따위는 없어 보인다. 내가 사랑했던 건 스타 그 자체, 가 아니라 스타의 이미지였다는 한 여성의 자기 고백을 곱씹어 본다. 세상의 수많은 이들이 우상화하는 존재들이 지닌 힘이 바로 그 이미지부터 기인하고 있다는 현실에 새삼 서늘함을 느낀다.

 

그런데 굿즈 장례식을 치르려고 한 날, 굳건하게 세워진 줄 알았던 그녀들의 분노와 증오가 갑작스러운 요란을 겪는다. 오랜 시간 팬으로 활동하며 보아온 앨범과 기념품 그리고 친필 사인의 흔적들로부터 한때 스타였던 그들의 반짝이던 그 시절이 절로 떠오른다. 차갑게 굳어버린 심장을 비집고 옛 추억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그 순간, 그녀들의 청춘을 함께 보낸 그들을 살짝 그리워한다.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와 떠나가지 못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담아낸 어느 가요의 노랫말처럼 추억의 무게는 끌어내지 못할 만큼 무거운 법이다. 과거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은 쉽사리 그녀들에게 떨어지지 않으며 베어낼수록 더욱 엉겨 붙는다. 이러한 감정의 동요를 마주하며 감독과 그녀의 친구들은 미워하지만 마냥 미워하지 못 하는 자신들의 약한 마음과 사람의 됨됨이(그러니까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지 않을 만한)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 과오에 대하여 자책과 약간의 자기혐오를 경험하는 듯 보인다.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을 끌어안은 채 감독은 다음 여정으로 박근혜 찬양 집회를 선택한다. 촛불이 끌어내린 정권의 수장을 아직까지 각하로 옹립하는 모임에 참가한 사람들은 말 그대로 무조건적인 지지와 사랑을 외치고 표현한다. 각하의 이름 세 글자를 적는 것만으로 마음이 아파 눈물을 흘렸다는 어느 이의 간증이 조금 많이 불편하여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명백한 잘못을 저지른 이를 무조건적으로 감싸고 옹호하고 추앙하는 집단의 맹목으로부터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만 떠오른다. 감독도 집회에 참여한 집단이 자신과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고 여기는 듯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열렬한 지지가 스타를 향한 팬의 사랑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은 그녀의 마음에서 안쓰러움으로 묻어난다. 한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과 그 마음을 오롯이 내어준 자신을 향한 세간의 시선이 언제고 같은 곳을 바라보지 않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감독이 그날의 사건 이후 기록해온 시간들은 결국 나를 돌아보고 나를 치유하고 그리고 다시 나를 사랑하기 위한 여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누군가의 팬이었다는 사실이 수치가 되어버렸지만 한때 그를 사랑했던 자기 자신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기를 바라는 감독의 마음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영화의 말미, 감독이 정의 내린 성덕(성공한 덕후)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떠올려 본다.

 

성덕이란, 나의 스타에게 특별한 인상을 남기는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스타를 오래도록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

 

감독의 내레이션 위로 보이는 무수한 응원봉과 카메라의 플래시가 단상에 선 스타들을 밝히고 있다. 지상에 선 스타가 반짝일 수 있는 이유는 오롯이 스타를 사랑한 팬들이 그 아래에서 밝히는 불빛 덕분임을 팬들이 사랑하는 스타가 꼭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 괜스레 가슴이 울렁인다.

 

-관객 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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