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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리뷰 : 색이 지워진 자리를 메운 보다 진한 상징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0. 5. 7.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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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 흑백판

색이 지워진 자리를 메운 보다 진한 상징

 

기생충이 흑백판으로 편집되어 재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걱정된 부분은 우려먹기식 상영으로 인해 처음의 감동을 퇴색시킬 수도 있다는 점이다. 포장만 바뀌었을 뿐 알맹이는 그대로라면 관객에게 적잖이 실망을 안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극장 관람을 하고 나면 이러한 염려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색을 인식하는 감각들의 수고가 줄어든 만큼 다른 감각들이 이전보다 더 많은 일을 담당하여 영화를 관람하는 동안 새로운 인상을 느끼게 한다.

 

영화는 계급 갈등에 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려낸다. 봉준호 감독은 계단의 이미지를 내세워 현대사회에 이르렀음에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계급의 차이를 보여준다. 그리고 폭우햇볕의 이미지를 대비하여 계급 간의 격차로 인해 만들어진 비극을 극대화한다. 영화가 흑백판으로 편집되고 이전보다 나아진 점은 영화 서사에서 사용된 이런 상징적 요소에 전보다 집중하면서 극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장면을 통해 기택(송강호)네 가족이 처한 계급적 상승과 하락을 보여준다. 상승의 이미지를 보여준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기택이 박사장(이선균)네 거실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는 신이다. 문광(이정은)을 박사장네 집에서 쫓아내려는 기택네 가족의 계략의 성패가 바로 기택이 오르는 계단의 끝에서 결정된다. 계단을 오르는 단순한 장면 하나만으로 기택의 가족이 계급 상승을 위한 희망을 쟁취하는 장면을 긴장감 넘치게 보여준다.

 

하강의 이미지에서 기택과 기우(최우식)와 기정(박소담)이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다. 한밤중에 박사장네 집을 빠져나온 그들은 퍼붓는 비를 뚫고 원래의 집을 향하여 내려간다. 계단에 멈춰선 기우의 발아래로 흐르는 빗물의 이미지는 기택네 가족의 희망이 산산조각이 나버렸음을 암시한다. 도착한 집은 이미 물난리에 잠겨버리고 기택네는 본래 가지고 있던 보금자리마저 빼앗긴다. 윤택한 일상을 누리려다 본래의 일상마저 잃어버린 이들에게 남겨진 것은 비극적인 결말뿐이다.

 

무섭게 퍼붓던 한밤중의 비가 그치고 비추는 아침햇살은 이상하리만큼 맑고 따뜻한 기운을 내뿜는다. 명암만으로 표현된 햇빛의 느낌은 색감이 있을 때보다 더욱 진하게 느껴진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햇볕이 가장 따사로운 한낮에 벌어진 칼부림을 부리는 장면으로 그려낸다. 감독은 가장 따뜻한 분위기 위에 가장 잔혹한 상황을 그려내었다. 이러한 부조화는 비극의 잔혹함을 극한까지 끌어올린다.

 

영화 <기생충>은 색감을 지닌 버전을 먼저 개봉한 후에 색감을 제거하여 이번 영화를 선보였다. 흑백편집을 통해 영화 안에서 줄거리의 익숙함과 색의 부재가 주는 어색함이 결합하여 이전과 또 다른 감상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원래의 색을 알기에 구태여 모르는 색감을 상상할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덕분에 영화가 지닌 상징과 서사의 흐름에 집중할 수 있다. 영화가 애초에 흑백판으로만 나왔다면 결코 느낄 수 없었을 감동이다.

 

-관객 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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