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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언덕> 리뷰 : 변화를 이끄는 바람의 힘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0. 4. 27.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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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언덕>

변화를 이끄는 바람의 힘

 

검은색 화면 위 바람 소리가 먼저 들려온다. 곧 흰 눈으로 덮인 산을 오르고 있는 사람이 화면에 등장한다. 연신 나부끼는 머리와 모자 털의 움직임이 소리를 통해 바람의 존재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더 이상 오를 필요가 없다는 듯, 언덕 밑에 멈춰 앉은 이의 뒤로 풍차가 보인다. 하지만 이상하다. 들리는 바람 소리 크기를 생각하면 풍차 하나 정도는 돌아갈 것 같은데 모든 날개가 멈춰있다. 그 모습이 멈춰 앉은 한희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영화에는 관계가 단절된 사람들이 등장한다. 자신을 그 공간 안에 머물 이유가 되어준 남편의 죽음을 계기로 고향인 태백으로 돌아가는 영분(정은경). 아버지를 잃었지만, 의붓엄마를 가까이하지 않고 아줌마라 부르는 용진(김태희). 친엄마를 그리워하고 희망차게 살려고 하지만 도무지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한희(장선). 그들은 각자 욕망하는 것은 다르지만 마치 태백이라는 커다란 빛을 따라 들어온 것처럼 햇빛모텔에 당도한다. 하지만 택시기사(김준배)의 말처럼 그들이 택한 장소는 겉보기에는 풍광이 좋아 보이는 곳이지만 실상은 유배지처럼 고립되어 있다.

 

특히나 친 모녀 관계였던 영분과 한희. 다른 모습으로 다른 생활을 하던 그들의 단절되고 상실된 관계를 회복할 기회를 주는 건 길과 다리다. 단절됐던 시간 동안 서로를 모르던 영분과 한희는 다리 위에서 서로를 발견한다. 처음 다리 위에서 한희의 명함을 본 영분은 다리 밑으로 명함을 던져 버리고 떠난다. 카메라는 그런 영분을 따라가지 않고 버려진 명함을 한참을 비추며 마치 버려진 한희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 장면은 영화 후반에 비슷하게 재현된다. 딸에게서 받은 또 다른 상실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미안함과 행복함. 그 복잡한 마음을 견딜 수 없어진 영분은 다시금 떠나기로 한다. 같은 다리 위 영분은 버리지 말라고 붙잡는 한희에게 그동안 자신이 가지고 있던 마음을 쏟아내며 떠난다. 카메라는 또다시 떠나는 영분이 아닌 남겨진 한희를 오래 보여주지만 도리어 영분이 남긴 울음 섞인 말들이 오래 전해진다.

 

자체만으로도 경계가 되고, 어디에서 어딘가로 건너기 위한, 또 무엇과 무엇을 이어주기 위한 다리는 영화 안에서 그 이어줌을 넘어서 방향성을 제시하고 변화를 이끈다. 처음 버렸던 명함을 다시 주우러 갔던 영분을 아는 관객은 후반부 같은 장면을 보면서 다시 만날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자신이 붙여 놓은 전단을 떼며 떠나는 영분을 쫓아 뛰는 한희의 거친 숨소리는 터져버리는 영분의 울음소리로 이어진다. 그리고 장면이 전환되며 영화 시작에 등장했던 자신이 좋아하는 그 산을 이번엔 마치 스스로 바람이 되어 거친 숨소리와 머리를 흩날리며 뛰는 한희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다 예전에 한희가 준 사진을 보고 그 산을 찾아가 앉아 있던 영분을 만난다.

 

그 둘은 비록 다른 시간이긴 했지만 같은 길을 걸어 서로를 생각하며 같은 곳에 도착한다. “두렵다고이전과는 다르게 같은 감정을 이야기하는 둘의 모습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숨을 토하는 모습으로 끝이 난다. 주인공들이 머뭇거리던 시간만큼 쌓이고 멈춰있던 그 둘의 관계가 바람이 통과하며 돌아가는 풍차의 날개처럼 변해가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관객 리뷰단 박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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