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파도를 걷는 소년> 리뷰 : 하고 싶은 걸 해. 지금보다 나빠지지 않아.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0. 5. 18. 17:40

본문

<파도를 걷는 소년>

하고 싶은 걸 해. 지금보다 나빠지지 않아.

 

바라만 보는 것은 얼마나 답답한 일인가. ‘나라면 잘할 수 있을 텐데. 나라면 이렇게 움직일 텐데.’ 화면에 어딘가를 응시하는 주인공 김수(곽민규)의 얼굴만을 가득 담으며 그런 갈증과 그 속에서 오는 무기력을 보여준다. 바다로 둘러싸인 섬 제주에서 이주노동자 2세로 불법적인 일을 하며 살아가는 김수. 이주노동자 2세로서 그가 듣는 차별의 말들은 외모 비하부터 시작해 가는 곳마다 불쑥 튀어나온다. 일은 해도 되지만 눈에 띄지는 않게 하라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처럼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비슷해 보인다. 엄마를 따라 중국 하이난섬으로 가고 싶지만 돈이 없고,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 하는데 좁은 지역 사회에서 젊은 세대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영화 속 수는 종종 주먹을 꼭 쥐어 보인다. 아직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막막한 상황이지만, 그저 주먹을 쥐어 볼 수는 있다. 온 힘을 다해 무엇인가를 해보고 싶다는 의지가, 막연한 욕구가 엿보이는 순간이다. 수는 문제를 일으키는 꼴통으로 불리지만, 자신을 가족이라 말하며 소속감을 느끼게 해주는 갑보(강길우) 사장에게 의지한다. 하지만 그들을 둘러싼 좁은 사무실 안을 비추는 카메라만 보아도 그들의 결속은 사위가 막히고 답답하고도 강압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수와 함께하는 서퍼들은 다르다. 사방이 탁 트인 바다에서 평등한 눈높이로 서로를 바라보는 것. 그것이 수에게 그동안 무감각해져 있고 억눌렀던 감정을 풀어내 준다.

 

서핑에서 한 번 넘어졌다고 포기하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아무리 파도를 잘 타는 사람이라고 해도 맞지 않는 파도에는 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타야 잘 탈 수 있냐?”는 수의 질문은 매일 타야 한다는 해나(김해나)의 답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자신과 똑같은 질문을 하는 동생 필성(김현목)에게 수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자신만의 답을 전해준다. 그 질문은 어떻게 살아야 잘 살 수 있냐는 다른 질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아무리 힘을 써서 팔을 세게 저어도 때에 맞지 않으면 파도에 올라탈 수 없는 서핑처럼, 삶에 몇 번의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때를 기다려야 하는 순간이 있다. 수는 서핑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그런 여유를 발견하고 계속해서 바라보며 따라 하고 싶어 한다. 서퍼들의 도움으로 수는 서서히 여유와 즐거움을 찾아간다.

 

한 번의 위기가 지나고, 수는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듯 하이난섬에서 엄마와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더라도 자신이 겪은 경험은 사라지지 않는다. 수는 이제 바라보기만 하지 않고 서퍼들이 가득한 바다에 익숙한 듯 들어간다. 비록 영화 속 주인공이 더 이상 뒤로 물러설 수 없는 상황에서야 한 걸음 앞으로 나갈 용기를 얻는 것에 답답함을 느낄 수 있지만, 이를 통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젊은 세대와 주인공 수처럼 성장한 이주노동자 2세들에게도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지 않나 싶다.

 

전작 <내가 사는 세상>(2019) 에서 꿈을 좇는 젊은 세대의 어려움과 즐거움을 보여주던 감독은 여전히 젊은 세대들의 꿈과 희망, 그리고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상황에서 마주하게 되는 사회적인 문제에 집중한다. 이번 작품은 더 나아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이에게 잠시 쉬어가듯 여유를 가지고 바라보면 다른 길이 보일 거라고 따스하게 응원을 보내 준다.

 

-관객 리뷰단 박형순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