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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산 너머> 리뷰 : 그 이야기의 시작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0. 5. 7.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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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산 너머>

그 이야기의 시작

 

부모님의 따스한 품에서 가난하지만 평화로운 유년 시절을 보내던, 막내아들 수환(이경훈)은 옹기장수인 아버지(안내상)의 병환을 계기로 인삼 장수가 되어 효도하고 싶어 한다. 수환의 어머니(이항나)는 아픈 남편을 대신해 행상을 하며 생계를 책임지지만 그 길은 아프고 고통스럽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성당에서 사제서품식을 보게 된다. 고된 길 끝에서 본 숭고한 의식은 죽은 남편의 말을 떠올리게 하며 어머니를 변화시킨다. 또한, 수환의 일상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된다. 생전에 아버지가 말했던 마음 밭에 대해 설명해주며 천주님의 자식이 되어달라는 어머니의 말에 수환은 갈등한다.

 

영화는 크게 가족과 사람들 속에서 해맑고 순수하게 유년 시절을 보내는 수환의 모습을 담은 전반부와 가족이 떠난 뒤, 홀로 자신과 신앙에 대해 고민하며 길을 찾아가는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의 카메라는 수환이 가진 세상에 대한 열망과 호기심을 천진하고 재미있게 보여준다. 장터에서 아이의 시선에 따라 빠르게 패닝하며 주변을 보여주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어머니의 치맛단을 잡을 때까지 계속된다. 통통 튀는 음악과 함께, 호기심 가득하지만 어머니의 품 안에서야 안심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여준다.

 

더불어 앞선 것만큼이나 중요하게 비추는 것은 부모님의 삶과 신앙에 대한 고민이다. 영화 도입부, 장대하고 유유히 흐르는 강가에 옹기를 진 사람들이 일렬로 지나간다. 그 모습을 먼 하늘에서 아름답게 비추던 카메라는 인물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짐 진 아버지의 고단한 얼굴을 드러내어 보여준다. 흡사 순례자들처럼 계속해서 힘들게 이어가던 부모님의 걸음은 수환에게까지 이어진다. 천주교도로 박해받았던 선조들의 고난의 역사는 옹기장수인 아버지에게 이어지고, 그 짐을 함께 짊어진 어머니와 어머니의 뜻에 순응하는 형 동한(정상현)에게, 종래엔 후반부의 수환에게까지 전해진다.

 

고향은 자신이 포근하게 느끼는, 마음이 가는 곳이라는 어머니의 말처럼, 저 산 너머에 있는 신학교로 가는 길은 수환에게 고향으로 가는 길이 된다. 후반부의 카메라는 자신의 마음이 가는 고향을 향한 수환의 걸음을 따라간다. 전반부와는 다르게 땀을 뻘뻘 흘리며 그 산을 넘는 수환의 모습은 먼저 그 길을 걸었을 사람들의 고난을 떠오르게 만든다. 어떠한 박해와 고난 속에서도 신앙을 놓지 않고 기도하던 천주교도에게 고향은 곧 천국이지 않을까. 줄곧 어린 수환의 뒤를 따라가던 관객은 산을 넘어 자신의 앞에 펼쳐진 넓은 세상을 함께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 9, 그 어린아이가 옹기 안에 가족들의 얼굴을 그려놓고 자신을 비추는 신의 따스한 빛에 이끌려 세상 밖으로 나온다. 엔딩에 이르러 고 김수환 추기경의 임종을 기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몽타주해 보여준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 더 낮은 곳으로 빈자들 곁에 함께 했던 그의 행보는 이 어린아이의 발걸음에서 시작되었다. 이 영화는 원작의 따뜻한 느낌을 잘 살려 따스하게 보여주고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간 고 김수환 추기경을 다룬 다큐멘터리는 있었지만, 전기 영화는 이 영화가 처음이다. 감독이 이 시작의 순간에 집중했듯이, 또 어떤 이가 고 김수환 추기경을 떠올리며 그다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낼지 궁금해진다.

 

-관객 리뷰단 박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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