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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도터> 리뷰 : 그런 모성애는 없다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7. 29.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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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도터>

그런 모성애는 없다

 

바야흐로 여성 서사의 시대가 도래했다. 여성이 삶의 주체로서 자신의 욕망을 향해 나아가는 내용의 드라마나 영화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여성 캐릭터를 접할 수 있음에도 엄마라는 캐릭터는 여전히 틀에 갇혀있다.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모성애는 익숙하지만, 오로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아이를 맡기거나 자식을 버리는 행위는 낯설 뿐만 아니라 엄마로서 책임감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며 질책받는다. 그러나 <로스트 도터>는 자신의 욕망을 충실히 좇는 레다(올리비아 콜맨)를 통해 모성애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강요된 희생의 이면을 드러내며 모성애 신화를 박살낸다.

 

비교 문학 교수인 레다는 여름 방학을 맞이하여 그리스로 혼자 여행을 떠난다. 해변에서 책을 읽고 해수욕하며 여유를 즐기려고 하지만, 니나(다코타 존슨)의 가족이 등장하면서 레다의 평화에는 균열이 일어난다. 가족끼리 있고 싶으니 자리를 조금만 옮겨달라는 부탁에도 레다는 비켜주지 않는다. 니나는 꿋꿋하게 자신만의 느긋한 시간을 보내는 레다에게 관심을 둔다. 레다 역시 니나가 딸을 돌보는 모습에 시선을 빼앗긴다. 어느 날 니나는 딸인 엘레나를 잃어버리고 과거 해변에서 딸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는 레다가 엘레나를 찾아준다. 서로를 바라만 보던 둘은 이 사건을 계기로 대화를 나누게 된다. 레다는 니나를 통해 자신이 두 딸을 키웠던 시절을 떠올린다. 레다는 아이들이 우선인 엄마가 아니었다. 대학원생으로서 학업이 더 중요했고 잠시라도 공부할 틈을 주지 않는 아이들을 원망했다. 아이들에게 원망을 쏟아내기도 했으며 참다못해 아이들을 떠나 3년 동안 집을 나갔다. 레다는 딸들의 여러 개성 중에서도 자신을 닮지 않은 부분을 가장 좋아할 정도로 육아의 책임감을 끔찍한 부담으로 느꼈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과일 껍질을 길게 깎아 뱀처럼 만든 것을 갖고 노는 등 아이들과 함께 웃으며 장난치던 순간들을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떠나 지낼 때 행복했다고 말하지만, 울먹이는 듯한 표정에서 아이들을 향한 사랑과 증오의 양가적인 감정을 읽을 수 있다.

 

레다가 느끼는 일종의 죄책감은 인형을 통해 세심하게 드러난다. 레다는 엘레나의 애착 인형을 훔친다. 니나의 가족들이 인형을 찾느라 동분서주하며 전단지까지 돌릴 때 레다는 정성스럽게 인형을 돌본다. 과거 딸들에게 제공하지 못한 돌봄을 인형에게 대신하며 죄책감을 해소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밤마다 울려대는 등대 소리와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썩은 과일, 레다의 집에 갑자기 들어온 매미와 같은 사소한 자극들이 레다의 신경을 살살 긁으며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자아냈다면, 인형이 사라진 뒤부터는 레다를 둘러싼 배경이 완전히 적대적으로 바뀌며 긴장감이 고조된다. 레다가 인형을 훔쳤다는 사실을 들킬까봐 손에 땀을 쥐며 보게 된다. 한편 특정 인물에게는 인형을 숨기려고 노력하지 않는데, 이는 육아에 관한 죄책감을 누군가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후반부에 니나가 레다의 집을 방문하는 장면에서 관객들의 예측이나 기대는 전부 무너져버린다. 엘레나를 돌보느라 지친 니나가 이 감정이 지나가긴 하는 거냐고 묻자, 레다는 절대 지나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또한, 인형을 훔친 사실을 털어놓으며 그저 장난일 뿐이라고 자신은 원래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덧붙인다.

 

이로써 관객들의 움켜쥔 손에 남은 것은 박살 난 모성애 신화의 잔재뿐이다. 엄마에게만 요구되는 희생은 자식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만으로는 수행할 수 없으며, 기존의 미디어에서 다루는 모성애가 허상임을 깨달을 수 있다. 영화의 제목은 <로스트 도터>로 잃어버린 딸이지만,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돌봄 노동 속에서 딸을 잃지 않는다면 엄마가 자신을 잃어가는 막막한 현실을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출산과 양육의 경험이 없는 필자는 자식을 버리고 싶은 심정, 그리고 그런 생각에서 비롯한 죄책감과 자괴감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한다. 그런데도 인간은 돌봄을 제공하는 동시에 돌봄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며 지금도 어디선가 힘들게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로스트 도터>의 레다 같은 모성도 충분히 존재한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다. 당신이 나쁜 엄마여서 자식에게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에 대한 돌봄이 부족하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음을 강조하는 바이다. 따라서 여성 중심의 서사가 쏟아져 나오는 이 시점에 더 다양한 모성을 티비나 스크린에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관객 리뷰단 박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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