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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어> : 심연의 해방을 위한 속삭임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7. 18.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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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어>

심연의 해방을 위한 속삭임

 

인간을 흔히 사회적 동물이라고도 한다. 사회를 구성한다는 것은 곧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세워진 온갖 규칙들을 체득하고, 그 규칙에 따라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는 태생적으로 지녔을 인간의 본성을 어느 정도 통제하여야 가능한 상태일 것이다. <큐어>는 사회의 규칙으로부터 봉인된 인간의 본심에 균열을 일으킨다.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사건은 심연에 묻어둔 인간의 본능을 건드린다. 마미야(하기와라 마사토)가 던지는 질문과 그와 대화를 나누는 인물들이 느끼는 당혹감은 직업과 이름으로 규정된 역할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진면목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리고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형사 다카베(야쿠쇼 코지)가 상황이 부여하는 압박에서 변모하는 과정은 그의 신념과 책임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음을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다. <큐어>는 그렇게 설령 그것이 사회의 규칙을 거스르고 현시점의 자신마저 거부하고 싶을 만큼 추악할지라도 인간이 지닌 내면 깊숙한 곳의 순수를 그려내고자 한다.

 

<큐어>에서 표현된 연쇄살인사건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그래서 더욱 서늘하고 잔인하게 느껴진다.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중년 남성이 침대 걸터앉은 매춘부의 머리를 둔기로 내리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에서 피로 덮인 몸을 물로 씻어내는 남성의 실루엣이 샤워 가림막 너머로 보인다. 남성의 행동은 기계적이고 무덤덤하다. 그의 얼굴에서 어떠한 감정도 읽을 수가 없다. 가림막에 맺혀 바닥으로 떨어지는 핏물만이 살인이 벌어졌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영화에서 다루는 살인들은 모두 가해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벌어진다. 공중화장실에서 한 남성을 살해하고 그의 인면을 벗기는 아키코(도구치 요리코)의 공허한 눈과 순경 오이다(덴덴)가 순찰을 나가려는 동료를 살해할 때 무표정한 상태는 이들의 살해에 결심이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오이다가 밝은 대낮에 허리춤에서 총을 꺼내 동료의 머리에 겨누는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 중 하나이다. 살인이 벌어지기 바로 직전에 오이다가 동료를 배웅하고 파출소 문 옆에 쓰레기를 내다 버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너무도 일상적인 모양새로 살인을 벌이는 오이다에게서 어떠한 불안도 초조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마미야는 영화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의 배후이자 시작점이다. 마미야의 첫 등장신에서 카메라의 시선은 영화상에서 마미야가 차지하고 있는 존재감의 질감을 대변한다. 어느 해변에서 (곧 아내를 살해하게 될) 남자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또렷한 상으로 비춘다. 그와 대비하여 마미야가 화면에서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마미야를 멀리서 흐릿한 상으로 담고 있다. 화면에서 사라지면 다시 마미야를 화면에 담기 위하여 또 다른 등장인물이 마미야를 따라가게 만든다. 마미야의 정체는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렵다. 그의 언행은 종잡을 수 없고 어떤 목적이 있는지에 대한 그 알맹이가 희미하다.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 얘기가 듣고 싶다.’라고 질문하는 마미야의 나른한 얼굴에서 불길하고 스산한 기운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의뭉스럽고 심지어 위험해 보이기까지 한 마미야를 경계한다. 하지만 이내 마미야가 내뿜는 알 수 없는 힘에 현혹되어 결국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마미야로부터 시작된 연쇄 살인 사건을 쫓는 형사 다카베는 점점 마미야에게 빠져들어 간다. 마미야가 설계한 살인 메커니즘과 최면 요법을 간파하고 마미야의 범죄를 추궁하는 가운데 아이러니하게도 다카베가 억누르고 있던 스트레스가 점점 폭발하기 시작한다. 마미야를 가둔 병실에 찾아가서 다카베가 벌이는 행패에 가까운 취조는 다카베가 외면하고 있었던 속내(범죄자에 대한 혐오, 아내에게 느끼는 버거움 등)를 끄집어낸다. <큐어>에서 다카베는 단순히 범죄를 쫓는 사람이 아니다. 다카베는 형사와 남편이라는 역할로부터 부여된 짐으로부터 벗어나길 원하고 있다. 영화는 소음의 전환으로 다카베가 처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아내 후미에(나카가와 안나)가 목을 매단 채 자살한 광경에 사로잡힌 다카베는 머리를 움켜쥐며 울부짖는다. 그런데 다카베의 음성은 들리지 않고,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다카베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소음(빈 탈수기가 돌아가는 소리)이 대신 공간을 채운다. 표출하고 싶은 마음조차 억누르고 있던 다카베의 분노는 마미야로 인해 해방되고, 다카베는 마미야가 그러했던 것처럼 타인의 심연에서 살의를 증폭시킨다. 다카베가 자행하는 범죄가 속박에서 풀려난 자유로부터 기인하였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뒷덜미를 서늘하게 만든다.

 

-관객 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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