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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다> 리뷰 : 어미돼지의 울음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7. 20.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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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다>

어미돼지의 울음

 

영화의 감독 빅토르 코사코프스키는 어린 시절 친구였던 돼지가 요리로 식탁에 오른 걸 보고 채식주의자가 됐다고 한다. 필자는 십여 년 전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라는 책(멜라니 조이 지음)을 읽고 나서 육식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하지만, 그 후로도 관련 책을 몇 권 더 읽으면서도 여전히 육식을 끊지 못했고, 지금은 <먹히는 자에 대한 예의>라는 책(김태권 지음) 제목 정도의 지점에서 육식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인간의 곁에 함께 해왔으나 반려동물이 된 개와 고양이는 가족으로서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반면, 돼지와 닭, 소는 그저 가축으로, 생명이 아닌 마치 태생부터 식품인 것처럼 치부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영화는 자연 다큐멘터리에서도 잘 다루지 않는 인간에 가장 가까이 있고 흔해서 관심조차 받지 못하는 가축들의 일상을 스크린에 가득 채운다. 어떠한 설명이나 음악도 삽입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삶을 향한 몸짓과 소리를 날것 그대로 담아낼 뿐이다. “흑백은 주인공들의 외형보다는 그 안의 영혼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만든다고 느꼈기 때문에 영화를 흑백으로 촬영했다는 감독의 말처럼, 관객은 거의 매일 내 식탁에 오르는 그 동물들을,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태어나 어디서 자라는지 궁금해하지도 않았던 그 돼지와 닭, 소의 내면까지 들여다보는 것처럼 그저 바라본다. 그리고 그들이 살아내는 삶의 모습 속에서 마치 그들과 정서적 교류를 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돼지 군다는 십수 마리의 새끼를 가진 어미다. 아직 눈도 뜨지 못한 갓 태어난 새끼들이 어미젖을 차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모습과 그들에게 젖을 내어주고 누워 힘겨운 듯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군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상투적인 단어로는 도무지 표현할 수 없는 생명과 모성의 존엄함에 숙연한 마음이 된다. 바깥나들이를 나서 새끼 돼지들도 신나게 장난을 치며 뛰어놀고 군다 역시도 느긋하게 진흙목욕을 즐기는 한가롭고 평화로운 장면에 미소가 번지는 것도 잠시,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맹렬히 어미젖을 찾는 새끼들의 성화에 군다는 또다시 모로 누워 자신의 젖을 내놓는다.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도 더 줄 것이 없음을 미안해하는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닭의 모습은 어쩌면 더욱 인상적이다. 좁은 케이지의 문을 열고 조심스레 나오는 닭들의 신중한 움직임과 특히, 다리 하나가 없이도 외발로 장애물을 넘어서 앞으로 나아가는 닭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원래 닭이 저런 생물인가 싶어 생경하기까지 하다. 머리는 잘려 나가고 털이 죄다 뽑힌 뽀얀 알몸 상태이거나, 조각조각 잘려 두꺼운 튀김옷을 입고 어느 부위인지도 구별할 수 없는 상태로만 보아왔던 닭이 살아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에는 일종의 기품이 서려 있기까지 하다. 과연 저런 동물이 알 낳는 기계로 살거나, 2개월도 채 못 살고(우리나라에서는 사료값 절감 등 여러 이유로 영계 위주로 거래가 된다) 고기로 직행하는 일이 온당한 일이란 말인가.

 

소는 심지어 협력과 지혜를 발휘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서로 나란히 서되 각자 반대 방향을 바라보며 꼬리를 흔들어 상대의 머리에 끈질기게 달라붙는 골칫거리 파리를 쫓아준다. 인간의 이기심을 돌아보게 하는 그 모습은 꽤나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도 카메라를 응시하는 그 크고 맑은 눈망울, 실제로 소의 눈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느껴봤을 그 순수하고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혀끝을 감싸는 육즙 가득한 살점의 맛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리던 내 모습과 주머니에 들어있는 그들의 피부로 만든 지갑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그에 더해 인간이 젖을 짜내기 위해 거의 1년 내내 임신과 수유 상태를 유지하게 만드는 젖소와 어미젖을 빼앗기고 울부짖는다는 송아지의 서글픈 이야기도 연달아 떠올라 심장이 따끔따끔하다.

 

영화에서 어찌 보면 평화로워 보이는 동물들의 세계에 인간의 존재는 전기 울타리에 닿아 비명을 지르며 놀라는 군다의 모습이나 종종 들려오는 자동차 엔진 소리로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에 그것은 아직 젖도 완전히 떼지 않은 군다의 새끼들을 모조리 실어감으로써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상실감을 안겨준다. 내리는 비에 기분이 좋은 듯 하늘을 향해 코를 실룩거리며 빗물을 받아먹던 그 귀엽고 사랑스러운 새끼 돼지들은 영문도 모르고 어디론가 끌려간다. 느닷없이 새끼를 몽땅 빼앗기고 이리저리 맴을 돌며 절규하듯 꽥꽥거리는 군다의 모습에 무거운 마음을 추스르고 극장을 나선다. 진짜 당장에 고기를 끊어야지이번엔 정말로.

 

-관객 리뷰단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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