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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얼굴> 리뷰 : 니얼굴을 그리는 은혜씨의 얼굴에서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7. 7.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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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얼굴>

니얼굴을 그리는 은혜씨의 얼굴에서

 

은혜씨를 처음 알게 된 건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통해서였다. 은혜씨는 영옥(한지민)의 쌍둥이 언니인 영희로 출연했다. 극 중에서 영희는 조현병을 앓는 다운증후군 장애인이다. 평소에는 시설에서 지내고 영옥을 보기 위해 제주도로 여행을 온 상황에서 드라마는 장애인 가족과 살아가는 영옥의 입장에 몰입하도록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필자는 제주도 마을 풍경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녹아든 영희 역의 은혜씨가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다. <니얼굴>이라는 영화로 다시 만난 은혜씨는 영희라는 캐릭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림 그리는 것과 춤추는 것을 좋아하고 특유의 재치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습이 말이다. 다만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영희는 영옥이 보고 싶을 때마다 그림을 그렸다면, <니얼굴>에서 그림은 세상과 소통하는 은혜씨만의 언어다.

 

<니얼굴>은 발달장애인 은혜씨가 작가로 성장하는 과정에 집중한다. 은혜씨는 미술학원에서 청소하며 돈을 벌다가 아이들이 그림 그리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옆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은혜씨의 엄마인 장차현실은 향수 광고 모델을 따라 그린 은혜씨의 그림을 보고 은혜씨의 재능을 발견한다. 장차현실은 은혜씨의 시선으로 그려낸 선과 명암이 정형화되지 않아서 비상하다고 한다. 뜨개질을 하며 집에만 있던 은혜씨는 엄마의 권유를 통해 집 밖으로 나오게 된다. 평일에는 복지센터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문호리리버마켓에서 캐리커처를 그리며 바쁜 나날을 보낸다.

 

영화는 주로 문호리리버마켓을 배경으로 진행되지만 지루하지 않다. 그곳에는 사랑스러운 은혜씨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뭘 그리는 거냐고 물으면 니얼굴이라고 호탕하게 답하는 은혜씨 앞에서 수많은 얼굴들이 미소를 짓는다. 예쁘게 그려달라는 말을 원동력 삼아 캐리커처를 그리는 은혜씨로부터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사람들 역시 은혜씨의 손을 거쳐 탄생한 그림을 보며 활력을 얻는다. 사진 찍은 것을 보면서 종이에 스케치하는 은혜씨의 손과 얼굴을 자주 클로즈업하여 보여주는데 어떤 선이든 신중히 긋는 모습과 예쁘게 그릴 방법을 고뇌하는 모습을 통해 은혜씨가 얼마나 섬세한 작가인지 알 수 있다. 여름에는 아이스 커피를 마시며 더위를 견디고 겨울에는 반 장갑을 끼고 꽁꽁 언 손을 녹여가며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서는 책임감이 느껴진다. 속도가 느린 자신을 탓하며 투덜거리고 인기가 골치 아프다며 한탄하는 장면은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특히 은혜씨만의 재치와 솔직함으로 리버마켓의 다른 셀러들과 나누는 대화가 무척이나 유쾌하다. 멋있는 것을 보면 멋있다고 말하고 신나는 순간에는 춤을 추는 매사에 솔직하고 시원시원한 은혜씨를 보고 있자면 러닝타임이 짧게 느껴진다. 은혜씨를 담기에 86분은 모자라다.

 

그러나 이 짧은 시간에도 숨겨진 맥락을 포착하면 마냥 외면할 수만은 없는 현실이 있다. 은혜씨가 평일에 하는 복지센터 일은 28년 만에 처음으로 얻은 직장으로 장애인이 쉽게 일할 수 없는 노동 현실을 보여준다. 어느 순간 짧아진 장차현실의 머리도 장애인 노동권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허핑턴포스트와 함께한 인터뷰*에 따르면 장차현실의 머리가 짧아진 이유는 청와대 앞에서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발달장애인 돌봄과 노동 관련 예산을 확대해달라고 요청하는 시위에 참여했기 때문으로 드러난다. 따라서 청소 노동자가 아닌 예술 노동자로 출근하는 후반부 장면은 상징적이다. 니얼굴을 그리는 은혜씨의 얼굴, 그리고 수많은 은혜씨의 얼굴에서 계속해서 미소를 띠게 하려면 제도적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 많다. 우리도 장애인과 함께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출처: https://m.huffingtonpost.kr/entry/jung-eun-hye-please-make-me-look-pretty_kr_62beb9e1e4b0a21d84252a4b?utm_id=naver

 

-관객 리뷰단 박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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