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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평남녀> 리뷰 : Happy ever after의 진짜 이야기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5. 10.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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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평남녀>

Happy ever after의 진짜 이야기

 

이영진 대리의 삶은 평평할 날 없는 비포장도로다. 꾸미지 않는다며 결혼 중매 회사에서 거절당하고, 아이디어가 회사의 결에 맞지 않는다며 무시 받고, 눈치가 없어 언니한테도 치여 순탄하게 달리지 못해 항상 피곤하고 속상하다. 편히 몸 누일 곳이 없는 동네북 처지라고나 할까.

 

하지만 영진(이태경)의 모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하는 것이 아름답다. 매번 승진이 되지 않을지라도 꾸준히 디자인 2팀을 이끌어나가고, 아이디어를 쏟으며 밥 먹을 시간을 아껴가며 일에 매진한다. 그런 그의 앞에 영진의 자리를 당당하게 꿰찬 낙하산 과장 준설(이한주)의 모습이 마냥 곱게 보일 리 없다. 이는 영화 초반에 이 대리의 모습을 지켜봐 온 관객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영화는 준설에게 서사를 부여해 그가 왜 낙하산이 되었는지, 그의 과거는 어떠했는지 풀어 준설이란 캐릭터에 입체감을 불어넣는다.

 

준설 또한 만만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어머니에 의해 강제로 기부 입학하여 학교를 다니고, 그 속에서 무시당하며 따돌림당하고, 지금, 이 순간도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낙하산으로 취직하는 등 평평하긴커녕 무엇 하나 스스로 이뤄내지 못한 채 살아온 것이다. 평평하지 못했던 두 남녀가 만나 눈이 맞고, 만난 지 이틀 만에 사랑에 빠진 그들은 오래 함께하자며 사랑을 속삭이고, 이제야 비로소 평평한 나날들을 걷는다. 보통의 영화라면 "서로 사랑하는 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끝을 맺겠지만 '평평남녀'는 다르다. 김수정 감독은 전작 <파란 입이 달린 얼굴>처럼 <평평남녀> 여성 이야기 속에서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과 한국의 계급사회 속 차별과 불평등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오히려 단순히 사랑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지 않고 평평하게 다진 사랑을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 건지 낱낱이 고발한다.

 

영진은 준설을 만나면서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일에 대한 정확한 이해도조차 부족했던 준설에게 호의로 베푼 자료는 저작권 의식이라고는 한 톨만큼도 없는 준설에게 그대로 도용당했고,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다녔던 과거와 달리 준설이 말하는 "여자답게" 화장하고, 하늘하늘하고 화려하게 치장된 옷을 입으며 준설의 이상형에 맞게 연기한다. 그와 연애를 이어 나갈수록 영진의 본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하다. 중간마다 웃음이 터질만한 장면과 대사들도 있고, 이리저리 통통 튀는 각본에 눈을 뗄 새 없이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러나 관객들은 보는 내내 묘한 불쾌함이 들 그것이라 생각한다. 감독은 영진이 변해가는 모습, 준설이 영진에게 행하는 말투, 행동을 보여주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웃음을 섞어 보여준다. 관객들이 어째서 이 장면들이 불편하게 느껴지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주연 배우들의 연기도 한몫을 톡톡히 해낸다. 이태경, 이한주 두 배우의 연기는 관객들의 일상에 녹아있는, 마치 내 옆 직장 동료를 연상케 할 만큼 수수하고 자연스러워 몰입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무뚝뚝한 영진을 연기하는 이태경 배우의 감정 표현과 툭툭 짜증이 오르게 하는 이한주 배우의 현실 연기는 정말 어디선가 영진과 준설이 살아있을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관객들은 영진의 미래가 걱정될지도 모른다. 그에게 주어진 시련은 너무 큰 것에 비해 영진의 힘은 너무나도 약하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에게 영진은 이젠 나를 위해 열정을 쏟아보려고 한다며 꿋꿋하게 일어선다. 영진의 내레이션에서 관객들은 비록 러닝 타임 내내 고구마를 잔뜩 먹었으나 물 한 잔을 받으며 극장을 나설 수 있다. 회사를 관둔 33세 미혼 여성 앞에는 순탄치만은 않은 가시밭길이 늘어져 있어도, 그럼에도 이영진을 많이 걱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이제 스스로 당당하게 일어서는 법을 아니까,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걸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관객 리뷰단 서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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