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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식당> 리뷰 : ‘인간’답게 ‘평등’하게 살기 위해서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4. 26.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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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식당>

인간답게 평등하게 살기 위해서

 

최근, 장애인 이동권과 관련된 이슈가 연일 화제에 오르고 있다. 출근길 지하철역을 점거하고 이동권 보장 시위를 벌인 장애인들이 논란의 중심이 된 것이다. 이 목소리는 21년간 이어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완벽하게 해결되지 못한 채로 남아있다. 불편함을 토로하는 시민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 모 정치인은 SNS를 통해 이와 같은 시위는 비문명적 시위라고 비판하며 공권력의 개입까지 거론하기에 이른다. 장애인 복지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그저 비판만을 일삼으며 차별을 정당화하는 이 사회가 과연 옳다고 할 수 있을까.

 

영화는 교통사고를 당해 장애인이 된 청년, 재기(조민상)의 삶을 그린다. 카메라는 사고를 당하기 이전 재기의 모습을 구태여 보여주지 않는다. 교통사고 직후 시작된 재기의 삶을 중점적으로 뒤쫓으며, 그에게 닥친 부당한 사건과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해 토로한다. 재기는 휠체어와 주변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함에도, 장애등급 5급을 판정받는다. 5급은 경증에 해당하는 등급이다.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이 숫자 하나가 그의 새로운 삶에 번번이 방해 요소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중증 장애인이 경증에 해당하는 5급 판정을 받게 될 경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불편함을 겪게 된다. 경증 판정자는 전동 휠체어와 지팡이를 지원받을 수 없고, 활동 보조인을 지원받을 수 없다. 장거리 이동에 필요한 장콜(장애인 콜택시)도 부를 수 없다.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데, 재기의 경우 중증 장애인이 경증 등급을 받았기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는 일도 어려워진다. 경증 장애인을 원하는 곳에는 재기가 맞지 않고, 중증 장애인을 원하는 회사는 중증 등급이 있어야 회사가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기에 재기를 채용하지 않는다 한다.

 

어려움을 겪는 재기의 앞에 또 다른 장애인 병호(임호준)가 나타난다. 병호는 장애인 복지 제도를 잘 알고 이를 잘 이용할 줄 아는 인물이다. 취직할 수 없는 재기가 론볼 선수가 되어 돈을 벌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고, 등급 재판정을 위한 행정 소송을 돕는다. 하지만 이 모습이 어쩐지 수상하다. 병호의 말을 찰떡같이 믿는 재기는 그가 시키는 대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월세로 나가야 할 돈을 병호의 유흥을 위해 사용한다. 표면적으로 병호는 재기를 위해서 자기가 노력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재기의 상황은 점점 더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뿐이다. 이는 사회적 약자는 무조건 선()할 것이라는 생각을 깨는 부분이다.

 

다큐멘터리가 아닌가 싶은 정도로 이 영화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장애인의 삶에 대해 속속들이 고발하고 있다. 지금까지 비장애인으로 살아왔던 재기가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되어 겪게 되는 삶은 최소한 인간답게 살길 바라는 그의 희망을 무참히도 짓밟는다. 달릴 수 있는 사람이 2급 판정을 받고, 걷지 못하는 사람이 5급을 받는 아이러니 속에서, 장애인 사회 안에서도 권력관계는 존재한다는 사실 속에서, 재기는 끊임없이 再起(재기)하기 위해 발버둥 친다. 재기에게는 큰 욕심 없이 남은 가족과 인간답게 살겠다는 목표 하나만이 존재할 뿐이다.

 

영화는 법정에 선 재기의 모습으로 시작하여, 다시 법정에서 이야기하는 재기의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감독이 처음과 끝을 법정으로 선택한 이유는 아마도, 장애인에게 필요한 복지가 무엇인지 이 사회와 정책결정자들이 다시 한번 고민해 보길 바라는 마음에서일 것이다. 그저 문턱을 낮춰달라는 것, 지하철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해달라는 것과 같은 요구들은 어찌 보면 누군가에게는 당연할 수 있는 사소한 일상을 장애인들도 평등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들일 것이다. 정책적으로도, 인식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 평등하게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하루빨리 오길 바란다.

 

-이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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