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 리뷰 : 파주출판도시의 색다른 문법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2. 5. 5. 18:12

본문

<위대한 계약: 파주, , 도시>

파주출판도시의 색다른 문법

 

22년 전 이맘때쯤, 위험한 계약이라고 불리는 위대한 계약이 성사되었다. 이상적인 책의 도시에 대한 갈망 하나로 출판인들과 건축가들이 협력해서 파주에 출판도시를 지으려는 계획은 실행 가능성이 없어 보였고 자칫 위험하게도 여겨졌다. 그러나 그들은 파주출판도시를 일궈내고 파주는 책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 문화가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한다. <위대한 계약: 파주, , 도시>는 그 과정을 다룬 영화다. 영화는 하늘에서 내려다본 건물의 모양들을 조합하여 위대한 계약글자를 표현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각 건물이 개별성을 유지하면서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모습은 공동성이라는 영화의 주제 의식과 닿아있다. 영화는 별도의 내레이션 없이 파주출판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힘썼던 인물들의 인터뷰로만 전개된다. 인터뷰 음성이 계속해서 나오지만, 자막이 없고 신문 기사나 사진 등의 자료들이 영상을 가득 채워 묵직하다. 역사의 무게를 받아들이기에 다소 버거울 수 있으나, 그들의 목소리에서 묻어나오는 열정과 집념은 스크린 너머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각자도생의 시대에서 잊고 살았던 가치들을 일깨워준다.

 

경제 발전을 위해 도시 계획이 한창이던 1970년 중후반대에 번듯한 공간에서 책을 만들겠다는 사명감으로 도시를 건설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당시 출판은 감시의 대상이자 하나의 운동 수단이었다. 예술로 인정받지 못하고 예술의 귀퉁이에 놓인다. 출판인들은 불온한 존재로 여겨지고 잡혀가기도 하지만 이들은 꾸준히 모인다. 좋은 책이 나라를 바로 서게 할 것이라 믿으며 책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한다. 이는 책을 만드는 공간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지고 글의 집을 짓고자 결심하는 계기가 된다. 흩어져있는 출판 시설들을 집단화하겠다는 희망은 억압 속에서 싹튼다. 출판인들과 건축가들은 번번이 난관에 봉착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바꾸며 파주출판도시만의 방식을 개척한다. 군사 지역인 파주에서는 건물을 일정 높이 이상으로 지을 수가 없다. 이 제한으로 인해 건물의 높이가 비슷해지고 오히려 이들이 추구하는 공동성에 부합하게 된다. 파주에는 습지가 전체적으로 퍼져있어서 어디를 메꾸고 남길지가 큰 논쟁거리였다. 습지를 최대한으로 메꿔서 땅값을 낮출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습지의 갈대를 보호하는 방안을 택한다. 풍경으로서의 건축을 제안하며 건물들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공동성에 대해 끊임없이 논의하며 누구나 중심이 될 수 있는 건축을 실현한다. 효율성과 이윤 창출을 중요시하고 어떻게든 건물을 높게 지어 더 돋보이려고 하는 요즘의 방식과는 확실히 다르다. 문제가 발생하면 구성원끼리 충분히 소통하고 공동체 의식에 기반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각자도생의 시대에서 보기 드문 파주출판도시만의 문법이다.

 

이는 도시가 세워진 후에도 적용된다. 출판사들이 하나둘씩 파주로 터를 옮기지만 도시라고 하기에는 여전히 삭막하다. 도시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사람들을 모으려고 가장 먼저 어린이들을 초대하여 행사를 개최한다. 노키즈 존이 늘어나 아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이 줄어드는 세태와 비교하면 어린이들을 위해 마을을 꾸미고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은 무척이나 인상 깊다. 이들은 계속해서 도시가 도시로 기능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고민한다. 거주 시설을 짓게 되고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를 이뤄낸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거나 모바일 기기를 활용하는 경우가 늘어나 활자의 중요성이 점점 낮아지는 시대가 도래한다. 이에 발맞추어 영화 단지를 조성하고 여러 예술 문화를 한 데 아우른다. 예술의 귀퉁이에 놓였던 출판은 여러 예술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파주출판도시는 경제난으로 서울에서 밀려난 예술가와 철새 등 다양한 존재가 상생하고, 통일 이후 남북의 활자와 영상을 교류할 것으로 기대되는 공간이 된다. 영화는 위대한 계약의 시초가 되었던 결의가 이루어진 북한산에서 파주출판도시의 미래를 조망하며 끝이 난다.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많지만, 자본의 논리와 반대로 가는 파주출판도시의 문법으로 빚어질 앞으로의 도시가 기대되는 건 왜일까.

 

-관객 리뷰단 박솔지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